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여성은 무엇으로 쓸까?
경험 또는 상상, 예측, 성찰과 교정은 우리가 무엇을 쓰든 본질적 도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재료들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컬럼비아 대학교 영문학과의 최초 여성 종신 교수로 1960년부터 30년 이상 재직한 캐럴린 G. 하일브런은 자신과 세상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모두 언어, 담론, 서사라고 말한다. 즉, 누구나 이미 쓰여진 것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서사로, 회자되는 담론으로 자신을 형성해나간다는 뜻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시작해 1970-80년대 미국과 세계로 퍼져 지금까지도 우리 사고 체계의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후기 구조주의의 영향으로 보이는 이 사유를 통해 보면, 여성은 한번도 씌어진 적이 없다. 여성이 서사의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일브런이 ‘여성 쓰기’에 관한 역사를 분석하고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자서전과 평전, 그리고 문학 가운데서 특히 ‘시’ 비평에 주목하는 이유다(16~17쪽).
여성의 삶은 어떻게 쓰여왔나?
여성의 탄생, 여성의 일상, 여성의 성장, 여성의 모험, 여성의 죽음… 이 모든 여성의 이야기는 세계에 어떻게 각인되어 있을까?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없다”고. 여성의 이상적인 운명이란 어떤 모습이었을까? 예컨대, 남성의 경우 탄생의 우연 또는 필연과 좌절, 모험과 도전, 성취에 이르는 무수한 서사들이 존재한다. 신화와 건국, 전쟁까지, 고뇌와 사랑과 배신과 우정까지. 여성의 경우엔 무엇이 허용되었나? 여성에게는 안전과 종결만이 주어졌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욕망도, 분노도, 모험도, 모델도 여성에게는 주어진 적이 없었다. 작품을 비롯한 문헌들, 인터뷰, 대화록, 서간 등 온갖 자료들을 동원해 기록되는 평전, 아니 스스로 써내려가는 자서전까지도 ‘여성의 경우’ 실제 삶과는 달랐다.
메이 사튼처럼 위대한 여성 작가조차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분노를 정신적 포용으로 탈바꿈시키는 회고록을 썼다. 이런 식의 미려한 회고록을 1968년 출간하고 메이 사튼은 스스로에게 완전히 낙담한 채 5년 후인 1973년에 『혼자 산다는 것』을 발표한다. 『혼자 산다는 것』은 이전까지 숨겨 왔던 인생의 고통을 진솔하게 꺼내놓아 여성 자서전의 분수령으로 꼽힌다. 이후, 버지니아 울프 『3기니』가 “분노의 어조” 때문에 폄훼당했듯 수많은 여성 작가가 스스로 진솔하게 자신의 삶을 쓸 때마다 여성적이지 못한 태도, 땍땍거리거(shrillness)나 거슬리는(strident) 말투 등 여성답지 못하다고 비난받았다. 저자가 보기에 이 모든 비난은 “페미니즘 이데올로기”를 향한 금지이자 여성에게 가능한 어떠한 권리도 부정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어떻게 살고 글을 써야,
다른 여성들이 이 글을 통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까?
그럼에도 저자는 1970년대 중반 이후로 세상으로 자신을 드러낸 훌륭한 여성 작가들의 분투와 변화를 찾아내 분석하고, 그렇다면 여성의 이야기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런 관점은 어떻게 정립될 수 있고 발전시킬 수 있는지, 여성의 텍스트가 어떻게 다음 세대의 여성에게 쓰일 수 있는지, 남성을 중심에 두지 않은 여성의 삶과 지위가 무엇으로 가능할지를 탐색해나간다. 일곱 개의 장은 여성 삶의 정체성과 역사를 정립하기 위해 새롭게 정의 내려야 하거나 제거해야 하거나 확장해야 할 실제 삶의 주제들로 연결된다.
1장에서 저자는 오직 백인, 중산층, 남성의 어조만 있는 세계에서 여성의 서사를 어떻게 써 내려갈 수 있는지 질문하고 고민한다. 새로운 여성의 삶을 형성할 때 중요한 두 가지 문제는 서사의 부족과 언어의 부족이다. 이 둘은 결국 ‘권력의 문제’라는 점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권력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정하는 힘”(57쪽)이며, 권력의 반대편에 있는 여성의 말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전복적인 힘을 내포하는 것은 아니다. 서사를 찾는 여성이라면, 여성을 향해, 서로를 향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럴 때에야 남성의 언어를 재각인하는 것을 멈출 수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여성의 서사는 어디에 있는가? “여성들이 ... 야심과 가능성과 성취에 대해 집단적으로 읽고 이야기하는 곳”(59쪽)에 있다. “여성 생애 서사가 존재할 조건은 딱 한 가지다. 여성들이 집 안에서, 남성들의 이야기 속에서 더 이상 고립된 삶을 살지 않는 것, 그 조건이 충족될 때 비로소 여성 서사가 존재하게 된다.”(60쪽)
아버지를 죽이고 여성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여성 삶의 예시로 가장 통속적인 장르인 추리 소설을 꼽고, 유명세를 떨쳤던 도러시 L. 세이어즈의 전기를 분석하는 2장은 성장과 모험 서사의 예를 여성이 어떻게 제시했는지, 그리고 그 여성 작가가 남성 전기작가에 의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그 모순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68쪽) “원하는 일을 찾을 수 없어, 돈과 옷과 휴일이 필요해”라며 고통스러워했던 세이어즈의 경력 초반기가, “결혼을 하지 못해 힘들었다”로 씌어진 전기의 대목이 한 예다.
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저자는 탁월한 여성 작가들의 ‘과거 해체 작업’들을 발견한다. 데니스 레버토프, 제인 쿠퍼, 캐럴린 카이저, 맥신 쿠민, 앤 섹스턴, 에이드리언 리치, 그리고 실비아 플라스가 그들이다. 한국에서 최근 10여 년간 활기차게 번역, 소개되고 있는 이 작가들은 미국의 70년대 페미니즘 운동과 확산의 열매이자 여성 서사가 열리는 최초의 문이다. 특히, 관념화된 가부장제, 남성성이나 부성이 아니라 현실적이며 실제적인 ‘아버지와의 관계’에 이 작가들이 얼마나 막대한 어려움에 직면했는지를 분석한다. “어머니는 여성 작가가 각성한 이후 애정으로 수용하는 관계가 되기도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어머니는 각성하지 못한 딸들을 그저 방치한다.”(87쪽) 이를 딛고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여성 간의 우정이다. 이로써 여성들은 에이드리언 리치가 말하는 “도약”, “짧고 놀라운 순간들의 연속”에 가 닿을 수 있다.
자꾸만 다른 색으로 덧입혀지는 결혼 이야기
이어, 결혼에 혁명이 가능하겠냐고 회의하는 저자는 여성 서사의 막다른 골목에 언제나 결혼이 놓이는 것과 정반대로 결혼 생활 자체를 중심에 놓는 소설은 거의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버지니아 울프와 레너드 울프, 거트루드 스타인과 앨리스 토클라스 등의 텍스트를 살피면서 가부장제와 로맨스의 언어로 덧칠된 텍스트가 해방적인 관계를 상상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점을 암시한다. 저자는 남편은 연인이 아니며, 연인과 남편을 동일한 사람에게서 찾으라는 사회적 강요가 많은 여성을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고 진단한다. 결국 연인이 남편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세심하게 조장하며 덕을 보는 것은 가부장제일 뿐이다(119쪽).
인기 없는 진취적인 늙은 여성이 되기 위하여
우정 또한 역사 이래 남자의 전유물이었다. 세계의 위험에 맞서도록 서로를 지원하고 격려하며 공적 생활의 고통과 복잡성까지 포괄하는, 힘과 역량을 부여하는 유대를 의미하는 남성의 우정은, 베라 브리튼와 위니프리드 홀트비의 수십 년간의 우정과 같은 증거, 맥신 쿠민과 앤 섹스턴의 작업들이 있음에도 가시화된 적이 없다. 마지막 7장에 이르러 저자는 여성의 말년을 논한다. 하일브런은 모든 여성이 여성에게 부여된 제한된 서사를 강력히 거부하고 삶을 스스로 통제하며 신념에 따라 살아가기를 강력히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