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냉전

김려실 · 人文学/歴史
4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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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실의 . 한국전쟁 이후 분단국가 한국에서 문화외교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냉전적 공보정책이 한국의 사회문화 영역에서 작동하는 방식과 그 양상을 밝혀내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자체 생산한 지부이기도 한 주한미공보원은 분단국가 한국에서 1950년대의 전후 무상원조와 1960년대 개발원조의 성과를 홍보하는 영화들을 제작해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모델로서 한국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 책은 주한미공보원이 영화를 통해 미국의 냉전 이데올로기를 한국 사회에 정착시키고 미국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한편 냉전 근대국가 한국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기밀 해제된 미국의 방대한 문헌을 추적하며 꼼꼼하게 살핀다.

著者/訳者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문화냉전을 통해 냉전을 새롭게 이해한다 2017년 사드 배치 때부터 새로운 냉전적 대결 양상이 본격적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2018년 7월부터 개시된 미중 간의 무역전쟁은 2019년 현재 쉽게 해소될 기미가 보이는 않는 신냉전의 시기가 전개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하고 있다. 더욱이 신냉전의 무대가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재가동되고 있는 요즘,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냉전의 주요 무대였던 분단국가의 당사자로서는 냉전이 과거의 유물이 아니고 새롭게 변신한 모습으로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냉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필요성이 요청되고 있다. 『문화냉전: 미국의 공보선전과 주한미공보원 영화』는 한국전쟁 이후 분단국가 한국에서 문화외교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냉전적 공보정책이 한국의 사회문화 영역에서 작동하는 방식과 그 양상을 밝혀내고 있다. 냉전이라는 장기간 지속된 비평화 상태는 도처에 비군사적 전장을 형성했고 문화예술 영역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이 책에서 세밀하게 추적하고 있는바, 라디오 수신기 보급이 미진했던 1940~50년대, TV가 상용화되기 전인 1960년대에 걸쳐 주한미공보원 영화가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고 영향력 있는 미디어였다는 사실은 미국의 문화냉전 정책이 얼마나 주효했는지를 역으로 잘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미국 문화냉전의 전위대 주한미공보원(USIS) 『문화냉전』은 분단국가 한국에서 냉전을 유지하고, 미국의 냉전 정책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고, 미국의 이미지를 풍요와 자유의 나라로 각인시키기 위해 주한미공보원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주한미공보원은 국제교류 및 공공외교를 지원하는 업무 외에, 현지 여론을 조사하거나 정보를 수집해 미국해외공보처(USIA)에 보고하고 미군이나 CIA의 기밀 활동에 협조하기도 했지만, 표면적으로는 도서관 및 전시회, 음악회 프로그램 운영, 영어 교육, 풀브라이트 프로그램과 같은 교육 교환 사업, 미국과 관련된 문예·학술 활동을 진작하는 등 진일보한 문화냉전 전략의 최전선을 주도했다. 주한미공보원의 운영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선진적 출판, 방송, 영화 제작 설비, 공연과 전시 공간을 구비하고 현지에서 직원을 채용해 선전의 대상이 스스로 선전의 내용을 채우도록 했다는 점이다. 이렇다 할 근대적 문화시설이 없었던 한국에서 이와 같은 미국의 공보정책은 한국인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내 자연스럽게 미국에 대한 호감과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다. 냉전 선전을 로컬 문화와 결합시킴으로써 미국 정부의 선전기관이 선진적 문화기관으로 인식될 수 있었던 것이다. 주한미공보원 영화 역시 한국의 정치, 사회, 문화 등을 고려해 주제와 대상을 주의 깊게 선택, 미국에 대한 신뢰감을 구축했고 미국이 제시하는 냉전 근대국가를 한국이 도달해야 하는 보편적 가치로 표상했다. 주한미공보원 영화는 한국에서 어떻게 수용되었는가? 해방 이후 두드러진 한국 사회의 미국화(Americanization) 경향은 냉전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문화적 헤게모니를 구축하기 위한 미국의 문화냉전 정책이 주효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타자의 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은 수동적이기보다는 선망과 질시, 모방과 저항, 선택적 수용과 교섭의 과정이 역동적으로 교차했다. 1950년대의 전후 무상원조와 1960년대 개발원조의 성과를 홍보한 주한미공보원 영화는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모델로서 한국의 이미지를 표상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주한미공보원은 미국의 개발주의가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을 설득하기 위해 미국을 문화와 전통의 수호자로 표상한 영화들도 제작했다. 미국의 냉전 오리엔탈리즘이 한국의 냉전 근대와 한국의 전통 문화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통합하는 과제를 떠안은 것이다. 하지만 반세기 동안 지속된 냉전으로 문화적 접촉면이 넓혀짐에 따라 ‘의도치 않았던’ 상호교류의 결과가 발생하기도 했다. 따라서 냉전에 대한 연구는 주한미공보원 영화가 한국 국민에게 어떤 미국을 제시했는가 하는 질문뿐만 아니라 그것이 미국의 냉전 문화주의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 또한 쌍방향적으로 조명되어야 필요가 제기된다. 『문화냉전』은 미국이 제시한 미국 이미지와 미국 문화가 저항 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된 것은 아니라는 점, 또한 한국인이 미국적 가치와 미국 문화의 어떤 면을 선택적으로 수용했으며, 1950~60년대 한국 영화가 주한미공보원 영화와의 교섭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구축해갔는가를 한국과 미국의 자료, 특히 미국 정부의 기밀 해제된 광범위한 문서들에 대한 조회를 통해 짚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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