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인간의 관습에 지배되어 생명력을 잃어버린 세계 수백 년 이어진 증오 불신 해악 퇴폐의 근원은 무엇인가 영문학사 가장 뛰어난 이야기꾼 원숙한 사회비판! 셰익스피어에 비견되는 위대한 예술가! 찰스 디킨스는 첫 장편소설《피크위크 페이퍼스》를 쓴 이래 마지막 작품《에드윈 드루드의 비밀》을 채 완성하지 못한 채 병석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세계가 인정하는 영국소설문학의 일인자였으며, 오늘날도 영국소설가 가운데 가장 위대한 천재이자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대문호로서 인정받고 있다. 잡지편집, 낭독회, 연극 등 여러 분야에서도 재능을 발휘한 뛰어난 예술가이자 왕성한 활동가였다. 디킨스가 그렸던 세계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4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의 모국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에서 여전히 이어지는 수많은 문제와 희망을 담고 있다. 안개와 진창 투성이 사회를 향한 일침! 디킨스는 작가로서 원숙해져 가면서 사회제도나 조직.계급 전체로, 더 나아가 사회악의 근원으로 눈을 돌렸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황폐한 집》이다. ‘런던의 명물’인 안개가 온 도시를 어둡게 뒤덮고, 매연이 섞인 검은 비가 내려 거리는 진창으로 뒤덮인다. 그 안개와 진창의 중심에 있는 대법관 법정에서는 ‘잔다이스 대 잔다이스’ 사건 심리가 40년 가까이나 이어지고 있다.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루한 법정 공방으로, 소송 당사자 가운데 파산하거나 미쳐버리거나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소송은 손자 대까지 이어져 증오와 불신, 그 밖의 수많은 해악과 퇴폐의 근원이 되었지만, 소송 자체는 오리무중으로 빠져들어 그 결말은 어느 누구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이 ‘안개’와 ‘진창’은 템스 강 하류와 상류, 인근의 모든 주, 아니 영국 전역을 뒤덮는다. 끝을 알 수 없는 진흙탕 같은 소송이 진행되는 법정, 그리고 레스터 데들록 경과 레이디 데들록을 둘러싼 사교계, 에스더의 이야기가 그물처럼 촘촘히 엮여, 그 무렵 런던 상류사회와 법조계에 짙게 깔린 부조리를 비판한다. 두 시점으로 바라보는 사회악의 근원! 《황폐한 집》 전체는 작중인물인 에스더의 수기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쓰인 장이 교대로 펼쳐진다. 이 두 시점에서의 서술이 줄거리 전개에 따라 점차 교차하고 맞물리다가 끝에 가서 하나가 된다. 에스더의 수기는 착하고 감상적인 처녀 에스더가 일인칭 화자와 작중인물(주인공)을 겸하고 있다. 그녀는 옛일을 회상하며 자신이 관찰한 주변 사람들에 대해 들려준다. 다른 사람에 대한 서술은 자세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는 에돌리거나 숨기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되는 부분은 작가 디킨스의 시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무렵의 사회 현실을 냉소적으로 비판한다.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서술이 읽는 재미를 주는데, 영국사회를 은근히 비꼬는 듯 풍자하는 대목에서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시제가 현재형인 것은 역사적 현재라기보다는 시간에 구속받지 않는 보편성을 지닌 세계적 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웅대한 규모의 인간사회소설 대법관 법정과 상류사회는 둘 다 선례와 관습이 지배하는 사회, 즉 안개에 갇힌 세계이다. 이 세계를 구성하는 제도.기관.계급.인간은 발랄한 생명력과 본디의 기능을 잃고서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고 결국 전락하여 껍데기만 남는다. 이에 대한 비판을, 디킨스는 ‘잔다이스 대 잔다이스’ 사건의 직간접적 관계자가 걷는 운명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이 관계자들은 영국 사회의 정점을 이루는 상류사회.정계.관계.법조계에서부터 중류계급.하류계급 및 더 아래층의 빈민 부랑자에 이르는 등《황폐한 집》은 규모가 큰 사회소설이다. 그러한 작품에 중층적인 풍부함을 주는 것이 디킨스의 기교이다. 그중 가장 뚜렷한 것이 우의적.상징적 수법인데, 이를테면 앞서 말한 안개는 이윽고 더욱 짙은 안개가 되고, 비가 되고, 진눈깨비가 되어 전체적인 분위기를 무겁게 감싸고 좀먹은 영국의 병폐를 상징한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끌며 소송을 벌였건만 소송당사자 양측 모두 바라던 결과를 손에 쥐지는 못한다. 그 엉뚱하고 허무한 결말에 읽는 이는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더 나은 여성의 삶을 위하여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바람직한 여성관은 그저 순종과 겸손, 근면으로 집안 살림을 잘 이끌어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이 살아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당연히 그 이면에는 수많은 여성의 좌절과 희생이 뒤따랐다. 에스더는 의붓어머니에게서 “넌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았다”는 말을 듣고 크게 충격을 받아, 앞으로 자신이 짊어진 죄를 갚기 위해 친절을 익히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도록 노력하겠다고 결심한다. 그 뒤 에스더는 칭찬받는 데 자신의 존재 이유를 두고 지나치리만큼 집착한다. 이것은 그 무렵 여성들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으며, 한 가정 혹은 집안에 얽매인 삶은 여성의 창조적 능력을 억눌러 말살할 뿐이다. 이처럼 디킨스는 에스더의 이야기를 통해 그 무렵의 여성관을 비판하며 돌이켜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디킨스는 이처럼 고리타분한 여성상을 지적하는 것만으로 그치지는 않는다. 결혼까지도 그저 운명에 맡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으나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에 이르는 모습에서 디킨스는 옛 속박의 굴레를 벗어 던진 새로운 여성상의 모습을 내비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