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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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의 지배적 담론은 늘 문제의 원인을 ‘정치의 과잉’에서 찾았다. 정치는 정치가나 정당의 권력욕을 실현하는 수단이자 장(場)이며, 늘 사회를 갈등과 대립으로 몰고 가는 부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의 축소를 주장하거나 혹은 국가 전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한에서만 정치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논리가 늘 동원되었다. 이리하여 우리 사회 모두가 “정치논리 배제, 경제논리 우선”, “전문가 우대”를 외치게 되었고, 선거에서의 후보 간 경쟁 역시 누가 더 “기업이 잘 되는 나라”를 만들 수 있고 누가 더 “일자리 창출”을 많이 할 수 있는가를 두고 판단해야 하는 문제처럼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 역시 마찬가지이다. 보수적인 진영이나 진보적인 진영이나 할 것 없이 “문제는 경제!”라고 하면서 스스로 정치의 문제를 없애는 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정치가 만들어내는 갈등 때문에 문제이고, 정치가 축소되면 민주주의는 화합과 통합의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 책의 대답은 단호하다.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 자유민주주의에서 ‘정치적인 것’이 축소되면 어찌될까? 그 경우 사회는 파괴적 결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왜? 정치의 세계는 갈등과 대립을 본질로 하는 데, 이러한 갈등과 적대가 정치의 영역에서 제대로 표출되고 대표되고 경쟁될 수 없다면, 그 에너지는 사회를 원초적으로 분열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익과 다원적 정체성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갈등과 적대를 다룰 수 없는 조건에서, 한편으로 누구는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하고 다른 한편 모두가 발전과 성장을 말하는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는, 이 책의 관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최악인 것이다. 정치 전선의 부재는 정치적인 성숙의 징후이기는커녕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공허함의 표현이며, 그런 공허함은 새로운 반민주적인 정치적 정체성들을 접합하려는 세력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허함과 반정치적 사유는 정치의 영역에 존재하는 경쟁자들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규정해 경쟁해야 할 반대자가 아니라 오로지 파괴해야 할 적으로만 인지하게 만든다. 자유민주주의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명확하게 분화된 입장을 둘러싼 집단 정체성의 구성, 그리고 실제적 대안 사이에서 선택이 가능한 정치적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이 책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의 원인은 정치의 과잉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정치의 과소 때문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일자리가 적고 성장이 덜 되고 복지가 안 되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경제의 문제로 환원되어 다뤄지는 일원주의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제가 아니라 여전히 정치가 문제의 중심이 있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반정치관이 무차별적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게 된 데에는, ‘신자유주의 극복론’에 매달려 있는 진보파들과 민주주의를 정치적인 것을 초월한 보편적 시민의 세계로 이해해온 시민운동가들의 책임도 있다고 말하고자 한다. 이 책은 중도와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둔 ‘반정치적’ 민주주의관이 기승을 부리는 시대에 ‘정치’, ‘정치적인 것’이 무엇이며, 민주주의 발전의 추동력인 갈등과 적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풍부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기획되었다. 정치적인 것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관련지어 생각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더 없이 중요한 지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