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

앤 트루벡 · 人文学
2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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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여행자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작가의 집'을 소재로, 창작 공간을 우아한 사진에 담고 작가의 문학성을 예찬한 책들은 이미 여러 권 출간되었다.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는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 등 미국 현대 문학의 대표 작가 12명의 집을 방문하되, 작가의 집이 실제 작가의 삶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는지 찬찬히 뜯어본다. 원서의 제목처럼 '회의론자의 가이드 Skeptic Guide' 성격이 짙다. 숭배하는 순례기는 아닌 것이다. 문학 교수인 저자 앤 트루벡은 작가의 집이 실제 작가나 작품이 아니라 '기대되는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어떤 대가의 '문학 성지'에 대해서라도 과감하게 독설을 날린다. 저자는 사회가 진정 문화를 지원하고 싶다면, '작가의 집' 같은 돈이 많이 드는 물적 공간보다는 우리 시대의 가난한 작가들을 지원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작가의 집 12곳을 담백한 연필 스케치로 담아낸 한편, 책의 말미에는 현대 미국 작가 56인의 작가의 집 주소와 홈페이지를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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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訳者

目次

Chapter1 작가의 집이 풍기는 이해할 수 없는 매력: 에밀리 디킨슨 숭배자들 Chapter2 나를 다시 보고 싶거든 당신의 장화 밑창을 들어 보라: 『풀잎』의 시인 월트 휘트먼 Chapter3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 살아 있다고?: 마크 트웨인의 착한 시골 마을 Chapter4 이상을 꿈꾸던 작가들의 공동체: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작은 아씨들』의 루이자 메이 올컷 Chapter5 관광지 협잡과 역사 보존의 딜레마: 나쁜 남자 어니스트 헤밍웨이 Chapter6 다른 작가와 헷갈리는 『그대 다시 고향에 가지 못하리』의 토머스 울프 Chapter7 친환경 농장주로 기억되길 바란:『황야의 부름』의 잭 런던 Chapter8 30년간 홀로 집을 지킨 어머니: 요절한 흑인 시인 폴 로렌스 던바 Chapter9 부서지지 않을 정도까지만: 추리소설의 효시 에드거 앨런 포의 집 Chapter10 우리 동네 작가의 집을 찾아서: 찰스 체스넛, 랭스턴 휴스 감사의 말 / 옮긴이 후기 / 미국 작가의 집 주소록 / 주석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 메디치 ‘지식여행자 시리즈’의 제 1권 겉치레를 벗은 ‘현대 미국 문학’의 속살을 보다 ‘작가의 집’을 소재로, 창작 공간을 우아한 사진에 담고 작가의 문학성을 예찬한 책들은 이미 여러 권 출간되었다.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는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 등 미국 현대 문학의 대표 작가 12명의 집을 방문하되, 작가의 집이 실제 작가의 삶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는지 찬찬히 뜯어본다. 원서의 제목처럼 ‘회의론자의 가이드 Skeptic Guide’ 성격이 짙다. 숭배하는 순례기는 아닌 것이다. 문학 교수인 저자 앤 트루벡은 작가의 집이 실제 작가나 작품이 아니라 ‘기대되는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어떤 대가의 ‘문학 성지’에 대해서라도 과감하게 독설을 날린다. 저자는 사회가 진정 문화를 지원하고 싶다면, ‘작가의 집’ 같은 돈이 많이 드는 물적 공간보다는 우리 시대의 가난한 작가들을 지원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글쓰기는 돈이 너무 안 되며 일반에 공개된 집들을 유지하는 데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p.218) 물론, 『노인과 바다』를 읽고 현대 문학에 맛을 들이는 것처럼, 헤밍웨이의 아이다호 집에 가서도 그럴 수 있다. 저자는 매년 수십 만 명의 미국인이 작가의 낡고 음울한 집을 찾아 전국 곳곳을 다닌다고 조금 불만처럼 말하지만, 그와 대비되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부럽기도 한 불평이다.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는 작가의 집 12곳을 담백한 연필 스케치로 담아낸 한편, 책의 말미에는 현대 미국 작가 56인의 작가의 집 주소와 홈페이지를 게재했다. 이 책은 메디치미디어 ‘지식여행자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이 시리즈는 지식을 채굴하는 저자들의 현장감 넘치는 인문학을 내걸고 있다. ‘먹방’처럼 소탈하고, 조금 까칠한 ‘작가의 집’ 방문기 리얼리티 쇼가 대세다. 예쁘고 멋진 배우가 닭다리를 잡고 먹음직스럽게, 또는 우악스럽게 먹는 ‘먹방’ 프로그램은 시청률 고공행진이다. 배우들은 때로는 대중이 기대하는 포장지를 스스로 뜯어버리고, 볼이 미어터지도록 음식을 쑤셔 넣는다. 영악해진 대중은 그런 이미지 파괴를 즐기고, 그것이 배우의 인간적인 본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A Skeptic’s Guide to Writer’s Houses)』는 작가들의 집에서 라이브로 진행되는 리얼리티 쇼를 닮았다. 사회자는 까칠한 문학 교수 앤 트루먼이다. 저자는 작가의 집이란 ‘권위’와 ‘낭만’에 휩싸이지 않고, 그것이 진짜 작가의 존재를 얼마나 잘 표현했는지 깐깐하게 들여다본다. 이는 통쾌한 ‘기존관념 파괴하기’의 하나로 읽혀질 수 있다. 이 책은 작가의 집이 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지 알아보기 위해 미국 전역을 여행한 저자의 여정을 담은 여행기다. 작가의 집을 다루긴 하지만 다양한 작가나 지역, 시대의 어떤 대표적 단면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저자의 판단 아래 작품의 내용이나 개인적 인기 이상의 이야기가 존재하는 경우만을 선택해, 다분히 개인적인 동시에 조금은 색다른 문학 여행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때로는 ‘문학의 고전과 그 불만’을 주제로 다루고, 때로는 ‘사후 계획의 덧없음’이나 ‘후기산업도시의 경제 문제’를 주제로 다루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 이 책은 친절하지 않다. ‘어느 회의론자의 작가의 집 방문기’라는 부제에 걸맞게 때로는 회의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있다 헤밍웨이는 알려진 대로 여러 곳에서 거주했다. 저자가 처음 방문한 곳은 햇볕이 따듯한 플로리다의 키웨스트 집이었다. 키웨스트 관광객의 절반은 헤밍웨이를 보러 온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를 실어 날라준 택시 운전사는 “5년 내에 헤밍웨이의 집은 망할 거라고, 관리도 안 하고 에어컨도 없다”고 악담을 한다. 실제로 가보니 가짜 물건들이 헤밍웨이가 살았던 것인 양 연출하고 있었다. 물론, 헤밍웨이가 애정을 쏟으며 키우던 고양이들의 후손은 실컷 볼 수 있다. 이 고양이들은 헤밍웨이의 침대를 포함해서 금줄이 쳐진 소장품들을 마음껏 이용한다. 쿠바에 있는 헤밍웨이의 집 인근은 이 가난한 나라의 최대 관광지가 되었다. 여기서 헤밍웨이는 20년을 살면서『노인과 바다』를 썼다. 피델 카스트로는 헤밍웨이와 그 집에 관한 애정을 수시로 표현했지만, 미국과의 갈등으로 미국인의 방문은 금지했다. 그에 대한 보복인지, 조지 W. 부시는 이 집이 ‘보존 위기 장소’에 지정되었지만, 그것을 보존하는 데 “미국 돈이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어느 쪽인가? 쿠바의 집을 보존하지 않는 사람이 야만인인가, 카스트로가 압수한 물건들로 가득한 쿠바의 집을 도와주는 것이 야만인가?” 마크 트웨인의 집은 100% 동화 마을이다 “종종 작가의 집은 ‘실재’에, 역사적 정확성에 가까이 다가가려 애를 쓴다. 그런 복원이 괴이한 집착을 낳기도 한다. 역사적 복원이라는 것에 너무 매달린 나머지 … 허구를 사실처럼 보존하고 만다”고 저자가 지적했듯이, 마크 트웨인의 고향인 한니발 마을은 정작 작가의 집이 아니라 『톰 소여의 모험』의 톰, 베키, 허크가 살았던 곳으로 꾸며져 있다. 마크 트웨인의 집 울타리는 ‘톰 소여의 울타리’라는 푯말이 붙어 있고, 하얗게 칠해져 있다. 게다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역사 유적지’라는 팻말도 꽂혀 있다. 이것이 어떠냐고 독자들은 되물을 수도 있다. 기왕이면 소설 장면을 꾸며 놓으면 흥미롭지 않은가?  그러나 저자는 마크 트웨인이 오해되고 있는 작가라고 말한다. 헤밍웨이가 그를 “미국 문학의 아버지”로 추켜세운 것은, “미국의 모습을 잘 형상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에 대한 촌평을 끊임없이 했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은 가짜인 필명을 고수했던 것처럼, 분명한 인식 하에 소설에서 ‘가짜’의 세계를 구현했다. 그는 “곧이곧대로 듣고, 순진하고 반어법을 모르는 미국인의 성향을 조롱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이다. 『톰 소여의 모험』은 이것이 분명 허구라는 것을 알리면서 끝난다. “이렇게 이야기를 끝내도록 하자. 이것은 순전히 소년의 모험기이므로 여기서 멈춰야 한다.” 따라서 마크 트웨인의 집을 동화의 장소로 꾸미는 것은 작가와 작품의 성향에 위반된다고 한다. 문학적 열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놓기 위한, 영리한 결과물 이 책은 분명히 작가의 집에 대한 비판과 냉소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저자의 태도는 누그러진다. 문학에 대한 위선적이고 감상주의적인 태도를 지적하며 답답해하는 저자의 모습에 내재되어 있는 문학에 대한 열정이 그 반증이다. “사실 나는 20여 군데 작가의 집을 방문하며 목격한, 천재적 창작자의 자취에 바쳐진 숭배의 행위에, 숨죽인 공감의 표현에, 영적 탐구의 이야기들에 중독되었다”는 저자의 고백처럼 결국 이 책은 문학적 열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놓고자 하는 의도에서 쓰여진, 대단히 영리한 작전의 결과물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는 저자의 여정이 문학가들의 일생뿐 아니라 여행지에서 만난 관광 안내인과 함께한 방문객들, 그리고 저자 자신의 인생사까지 더해져 하나의 완성물로 귀결되는 것만 보아도 저자가 문학에 대한 냉소와 회의보다는 깊은 애정을 품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작가가 쳐 놓은 작전에 빠져드는, 아니 빠져 들어주는 것이야말로 이 책을 즐기는 가장 큰 재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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