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정치사회학

곽송연 · 歴史/社会科学
2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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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5‧18 연구는 피해자 서사에 초점을 맞춘 것이 대부분이었던 데 반해 이 책은 ‘가해자’ 분석에 초점을 맞춘다. 5‧18 발생 당시부터 제기되었던 핵심적인 의문, “왜 쏘았니? 왜 찔렀니? 트럭에 싣고 어디 갔니?”에 대한 학문적 답을 구하고자 한 것이다. 즉 ‘그들은 어떻게 가해자가 되었고, 어떻게 학살에 참여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5‧18을 ‘정치적 학살’로 규정한다. 반공주의 등 배제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군부권위주의 엘리트들이 불특정 다수의 민간인을 희생시킨 학살 사건으로 본다. 이 또한 여타 연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각이다. 저자는 국가가 저지른 여타의 폭력과 정치적 학살 사건인 5‧18을 구분해 분석하면서 5‧18 연구사의 대표적 공백인 가해자에 대한 논의로 무게중심을 이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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レビュ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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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次

책을 펴내며 “왜 쏘았니? 왜 찔렀니? 트럭에 싣고 어디 갔니?” : 오월광장의 질문에 답하기 1장 그들은 어떻게 학살의 가해자가 되었을까? 1. 학살은 누가 저지르나?: ‘악마’와 평범한 군인의 경계선 2. 제노사이드 가해자의 행동양식에 비춰 본 한국의 경험 3. 5·18 가해자들은 어떻게 탄생되었나? 4. 여전히 숨겨진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2장. 대중은 왜 침묵했을까? 1. 대중의 지지 혹은 방관은 어떤 영향을 끼칠까? 2. 국가와 언론이 만든 적, 광주 3. 대중은 왜 외면했을까? 4. 반인권 범죄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3장. 학살 그 후, 진실은 어떻게 가려졌는가? 1. 국가의 공식 역사 만들기: 학살을 정당화하기 또는 망각하기 2. 방해하는 모든 것은 제거되어야 한다: 전체주의의 지배 원리 3. 국가가 창조한 신화: 망각의 정치와 지역주의 담론 4. 그날의 광장을 사유하기: 신화화된 공동체, 다시 읽기 4장. 학살은 왜 일어나나? 1. 격렬한 갈등이 학살을 부르는가? 2. 정치적 학살 이론과 5·18 3. 쿠데타, 사회적 갈등, 그리고 미국의 선택 4. 군부권위주의와 전쟁이 남긴 유산 5. 남은 문제: 끝나지 않는 학살을 직면하기 주 참고문헌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왜 쏘았니? 왜 찔렀니? 트럭에 싣고 어디 갔니?” 5.18 연구의 새로운 시선, 어느 학살에 관한 보고서 그들은 왜 시민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는가? 그때 왜 다른 지역 대중들은 침묵했을까? 학살 그 후, 진실은 어떻게 가려졌는가? 도대체 학살은 왜 일어나는가? 5‧18의 가해자, 그들은 누구인가? 1980년 5월 광주, 군인들이 느닷없이 시민들을 잔인하게 때리고 살해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도, 네 살배기 아이도, 만삭의 임산부도 대검에 찔리고 총탄을 맞아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총을 든 그들은 누구였는가? 바로 대한민국 군인이었다. 대한민국 군인이 대한민국 시민에게 총을 쏜 것이다. 도대체 왜? 당시 광주에서, 그 이후 내내 한국사회에서 계속 제기된 질문이었다. 도대체 그 잔인한 군인들은 누구이고, 왜 총을 쐈는가? 그들에게 총을 쏘라고 명령한 사람은 또 누구인가? 계엄군과 싸우던 광주 시민들은 당시 이런 질문도 던졌다. 광주에서 이렇게 피를 흘리며 싸우는데 다른 지역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는가? 《오월의 정치사회학》은 기존 5‧18 연구들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이 질문들에 답을 한다. 기존 5‧18 연구는 피해자 서사에 초점을 맞춘 것이 대부분이었던 데 반해 이 책은 ‘가해자’ 분석에 초점을 맞춘다. 5‧18 발생 당시부터 제기되었던 핵심적인 의문, “왜 쏘았니? 왜 찔렀니? 트럭에 싣고 어디 갔니?”에 대한 학문적 답을 구하고자 한 것이다. 즉 ‘그들은 어떻게 가해자가 되었고, 어떻게 학살에 참여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5‧18을 ‘정치적 학살’로 규정한다. 반공주의 등 배제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군부권위주의 엘리트들이 불특정 다수의 민간인을 희생시킨 학살 사건으로 본다. 이 또한 여타 연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각이다. 저자는 국가가 저지른 여타의 폭력과 정치적 학살 사건인 5‧18을 구분해 분석하면서 5‧18 연구사의 대표적 공백인 가해자에 대한 논의로 무게중심을 이전시킨다. 그리고 5‧18 연구사의 또 하나의 공백인 ‘다른 지역 대중이 침묵한 원인’도 분석한다. 여기에는 언론 등 엘리트 집단의 침묵과 동조, 군부권위주의 정권의 5‧18 왜곡과 망각의 정치가 큰 역할을 했다고 결론 내린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 구조의 단점으로 지적되어온 ‘지역주의 담론’은 5‧18 학살 가해자들이 지배 효과를 위해 만든 신화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책에는 크게 네 가지 질문이 제시된다. “그들은 어떻게 학살의 가해자가 되었는가?” “그때 왜 다른 지역 대중들은 침묵했나?” “학살 그 후, 진실은 어떻게 가려졌는가?” “도대체 학살은 왜 일어나는가?” 그들은 어떻게 학살의 가해자가 되었는가? 1) 학살이 정당하다고 확고하게 믿는 사람들: 이승만과 전두환 5‧18의 첫 번째 의문은 ‘가해자들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들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가?’이다. 보통 학살 연구자들은 가해자의 지위(지도자‧고위간부, 정규군, 준군사조직)에 따라 그들의 학살동인과 행동양식을 구분해 설명하면서 이들이 잔학 행위에 나선 원인을 밝힌다. “지도자·고위간부는 학살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정당하다’고 확고하게 믿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믿음에 따라 주저 없이 행동하는 부류다.”(20쪽) 그렇다면 한국의 지도자·고위간부의 학살동인과 행동양식은 무엇일까? 저자는 5‧18 당시 한국의 가해자들을 이해하려면 이승만 정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1948년 정부 수립 당시, 이승만은 <정부 수립 기념식 치사>를 통해 국가에 대한 충성과 반공은 하나이며, 자신에 대한 반대도 국가에 대한 반역이라는 걸 공식화했다. 이승만은 철저하게 자신을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을 국민과 비국민으로 나눴다. 여순사건이 발발했을 당시에는 “빨갱이는 포살”해도 된다며 학살을 용인하기도 했다. 이렇게 국가 최고지도자인 이승만의 학살 명령과 기획에 의해 이즈음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4·3사건, 여순사건,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 등으로 사망한 사람만 20만 명이 넘는다. 학살의 대상은 종교, 이데올로기와 같은 특성보다는 학살을 기획한 지도자와 정책 결정자들에 대한 정치적 반대 여부가 기준이었다. 즉 특별한 기준이 있었다기보다는 자의적인 기준을 설정해 자신의 반대자를 처벌했던 것이다. 이후 ‘반공주의’는 대한민국의 공식 이데올로기로 굳어졌다. “즉 공산주의자(빨갱이) 또는 그 혐의가 있는 사람은 더 이상 국민의 범주에 속하지 않게 된 것이다.”(22쪽) 이런 ‘학살의 경험’이 전두환과 신군부에게도 곧이곧대로 이어졌다. 저자는 그들의 반호남주의와 반공주의가 결합된 이데올로기적 특징과 친위부대적 성격이 강한 조직 계통이 광주에서 학살을 감행한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고 말한다. 1979년 10월 29일 박정희의 사망 이후 잠시나마 민주화의 열망이 퍼졌으나, 전두환과 신군부는 12·12와 5·17에 이르는 다단계 쿠데타를 기획·실행하며 이를 억눌렀다. 이들은 제3세계에서 ‘안정, 안보, 발전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신직업주의적 정향으로 정치 개입을 반복해온 군부의 전형적 특성을 보였다. 여기에 반호남주의와 반공주의가 더해졌다. ‘하나회’로 대표되는 정치장교 그룹, 미군의 작전통제권에서 벗어나 있던 신군부의 조직 계통은 철저하게 전두환을 위한 친위부대 성격을 띠었다. 이들의 특징은 군 본연의 임무보다는 독재자의 권력 유지와 이에 대한 국민의 저항에 대처하기 위한 임무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데 있다. 5·18 당시에도 이런 사적 연결망에 의해 유지된 신군부는 공식 군 지휘 계통을 무력화시키며 시민들을 학살했다. “게다가 이들은 시위 군중이 폭도이기만 하다면, 어쩌면 유사시 폭도로 낙인찍을 수만 있다면, 일정 정도의 희생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정당’할 수 있다는 신념을 공유하고 있었다. 앞서 보았듯이 전남도청에서의 집단 발포 직후 신군부의 고위간부는 ‘광주의 폭도를 전차로 밀어버리라!’고 일갈했다. 지휘 계통을 벗어난 그의 명령은 사회정치적 집단들의 제거를 목표로 하는 배제적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군부권위주의 엘리트의 속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172쪽) 이렇게 배제적 이데올로기와 조직적 특징을 지닌 이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반대자 집단을 학살했던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학살의 가해자가 되었는가? 2) 명령체계에 따라 복종한 사람들-정규군 그렇다면 5‧18 당시 정규군의 학살동인과 행동양식은 무엇일까? 정규군이 학살에 가담하는 경우는 명령체계에 따른 복종, 이데올로기 주입 효과, 동료집단의 압력과 집단의 순응성, 이전 제노사이드의 경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론된다. 더불어 당시 광주 지역에 투입된 군은 특전단이었다는 것을 잘 살펴봐야 한다. 이 특전단은 5‧16쿠데타와 유신의 선봉 부대였으며 국가원수와 상관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부대다. 5·18을 이끈 두 주역인 전두환, 노태우도 각각 제1공수여단, 제9공수여단을 직접 지휘한 여단장 출신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혈육 같은 인간관계로 엮여 있는’ 특전단은 ‘명령체계에 대한 복종’, ‘동료집단의 압력과 집단의 순응성’이 수월한 집단이었다. 여기에 이승만 때부터 형성된 ‘반공주의’가 큰 영향을 끼쳤다. 저들은 우리와 다른 종류의 인간이며, 그들은 처단해도 된다는 믿음이 당시 공수특전단에게 작용했던 것이다. 곧 ‘이데올로기 주입 효과’이다. “앞서 보았듯이 우리 사회는 한국전쟁 이후 공산주의자이거나 혹은 공산주의자의 혐의를 씌울 수 있는 사람은 더 이상 국민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공식적 경계가 확립되었다. 따라서 공산당, 간첩, 더 나아가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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