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공평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을 읽으라” ? 빌 게이츠
김경일, 이해인, 김하나, 스티븐 핑커, 알랭 드 보통,
앤드류 솔로몬, 뤼트허르 브레흐만 강력 추천!
흔히 남을 도울 때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한다. 그러나 왼손이 알게 한다면, 그것도 가능한 한 많은 왼손이 알게 해서, 무수한 손들이 힘을 합쳐 함께 도울 수 있다면 어떨까? 전 세계에 지식 나눔을 실천하는 TED의 대표 크리스 앤더슨은 지금 시대의 초연결성이 바로 이러한 ‘다정한 전염’을 가능케 한다고 말한다. 소셜 미디어는 분노와 갈등만 퍼뜨리는 게 아니다. 평범한 개인의 소소한 선의에서 기업가들의 통 큰 기부에 이르기까지, 종류와 크기를 막론하고 타인을 향한 관심과 연민, 돕고 베풀고 나누고자 하는 인간의 선한 충동이 네트워크를 타고 바이러스처럼 퍼질 때,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이 책은 감동적인 사례들을 통해 증명한다. 각자 도생이 아닌 서로 돌봄의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 개개인이 지나친 부담을 지지 않으면서도 지혜롭게 동참할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한다.
휴대폰만 열면 분노와 이기심, 갈등과 분열의 장면들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희망과 낙관을 갖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위기감이 커질수록 인간은 ‘나’에서 ‘우리’로 시선을 돌리는 존재다. 최악의 상황에 절망하기보다, 우리 안에서 최선을 이끌어 내는 실천적 해법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에서 단단한 희망과 영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결국 선한 것이 이기고, 다정한 것이 살아남고,
인간은 서로 돕고 나누고 보살피는 존재라는
믿음에 대한 감동적인 증거
관대함으로 세상을 바꾼다니, 너무 이상적이고 순진한 소리 아닐까. 사회는 갈수록 각박해지고, 사람들은 점점 더 이기적이 되어 간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크리스 앤더슨이 일군 TED의 성공이야말로 그의 주장에 대한 반박할 수 없는 증거다.
엘리트 지식인들끼리의 비공개 오프라인 컨퍼런스였던 TED를 더 크게 키워보겠다고 다른 사업도 접고 여기에 매달린 앤더슨은 첫 10년간 예상외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다 온라인 동영상이라는 신기술이 막 생겨났을 무렵, 시험 삼아 웹사이트에 올린 영상 몇 개가 그야말로 ‘터졌다’. 그는 돌연 딜레마에 빠졌다. 비영리 단체답게 모든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무료로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면 누가 굳이 큰돈을 내고 강연을 보러 올까?(강연 참가비는 당시 TED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확신이 서진 않았지만 결국 ‘무료 공개’를 택했다.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영상에 감동받아 환호하는 시청자들로 웹사이트 방문자 수가 치솟았고, 강연 내용을 현지 언어로 번역하겠다며 각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발 벗고 나섰다. 이후 3년간 TED의 수입은 열 배 이상 증가했다.
TED의 인기가 높아지자, 자기네 도시에서도 강연을 개최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쇄도했다.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각국 주최자들이 알아서 할 수 있게 무료 라이선스를 발급하기로 했다. TEDx는 ‘x라는 지역에서 자체 조직된 TED’를 뜻하는 용도였지만, 실제론 브랜드의 역량을 곱하기로, 아니 기하급수적으로 늘려 주었다. 이제 TED는 자신의 귀한 시간과 재능을 기꺼이 제공하고자 하는 사람들 덕분에 지구촌 곳곳의 스포츠 경기장, 오페라 하우스, 열대우림, 난민 캠프에서도 열리는 행사가 되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건대, 콘텐츠를, 더 나아가 브랜드 자체를 나눠 주기로 한 것은 앤더슨과 그의 동료들이 내릴 수 있는 가장 현명한 결정이었다. 그 결과로 오늘날 TED는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리처드 도킨스, 제인 구달, 마이클 샌델, 미셸 오바마 등 내로라하는 명사들의 지식과 영감을 100개 이상의 언어로 전 세계에 전파하며 해마다 10억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앤더슨은 이 모든 일이 ‘관대함의 전염성’이라는 마법 덕적대분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다정한 힘을 더욱 적극적으로 이끌어 내고 활용한다면, 갈수록 갈등하고 분열하는 세상을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지금 우리 곁에서 벌어지는 감동적인 사례들로 증명해 낸다.
타인을 향한 관심과 연민,
돕고 나누고 베풀려는 인간의 선한 충동은
바이러스처럼 전염될 수 있다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자극적인 뉴스들이 눈길을 사로잡기에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을 뿐, 선행은 늘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조슈아라는 미용사는 어느 날 퇴근길에 마주친 노숙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고 공짜로 머리를 깎아 주겠다고 제안했다. 청소년 자살률 기사를 보고 충격받은 울프라는 여성은 자신이 정신과 의사도 심리치료사도 아니지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담은 표지판을 제작해 지역 주민들에게 마당에 세워 달라고 부탁했다. 지팡이 없이는 걷기도 힘든 99세의 무어는 코로나19로 궁지에 몰린 의료진을 돕겠다며 자기 집 정원 100바퀴 돌기 챌린지로 모금 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결코 대단한 부자도, 기발한 천재도 아니다. 오늘 지하철에서 지친 내게 자리를 양보해 준 사람, 낯선 동네에서 헤맬 때 친절하게 길을 알려 준 사람처럼 지극히 평범한 이웃들일 뿐이다.
인간에게는 받은 대로 돌려주려는 성향이 있어서, 악행에는 복수심이, 선행에는 보답하고자 하는 욕구가 뒤따른다. 적대감은 적대감을 낳고 친절은 친절을 낳는 것이다. 게다가 꼭 자신이 친절의 수혜자가 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제삼자에게 선행을 베푸는 모습을 보거나 듣기만 해도 영향을 받는다. 니콜라스 크리스타키스 같은 연구자는 특정 행동이 인간 네트워크를 통해 극적으로 퍼져 나간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는데, 관대한 행동의 경우 조너선 하이트가 말한 ‘도덕적 고양(moral elevation)’에 의해 그 효과가 증폭된다. 타인의 선행을 목격하면 따뜻한 감정이 들면서 그 행동을 따르고 싶게 되고, 결국 친절의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여기에 더해 오늘날의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는 이 연쇄반응을 극적으로 증폭시킬 잠재력이 있다. 머리를 깎는 동안 노숙자가 들려준 인생 사연에 감명받은 조슈아는 틈만 나면 거리로 나가 노숙자들의 공짜 미용사를 자처했다. 그가 노숙자들의 다양한 사연과 헤어컷 사진을 #DoSomethingForNothing(대가를 바라지 말고 뭐든 하라) 해시태그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려 화제가 되면서, 이는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울프의 표지판과 무어의 챌린지도 소셜 미디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예상치 못한 성과를 거뒀다. 무어는 100세 생일에 정원 100바퀴 돌기에 성공하며 당초 목표했던 금액을 훌쩍 넘어 무려 3200만 파운드(한화로 540억 원)를 모금했다. 어떤 사람은 자살을 시도하러 가던 길에 울프가 제작한, ‘포기하지 마세요’라고 쓰인 표지판을 보고 그길로 집에 돌아가 가족에게 우울증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옛날 같았으면 기껏해야 수십, 수백 명 사이에나 퍼졌을 이런 일들을 이제는 순식간에 무수히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 즉, 관대함의 전염성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이기적이지 않은 선행은 없다”
‘의도’보다 ‘효과’에 주목하라
그러나 선한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확산시키려면,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몇 가지 제약을 넘어서야 한다. 먼저, 어떤 행동을 선행으로 볼 것이냐부터가 문제다. 흥미로운 설문 조사를 하나 살펴보자. 프란시스라는 사람이 자선단체에 5000달러를 기부했고, 그 돈이 한 아이의 시력 회복에 필요한 수술비로 쓰였다는 소식을 전하자, 97퍼센트의 응답자가 그의 행동이 ‘관대하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프란시스가 억만장자이며 악덕 고용주라는 사실을 밝히자, 그 비율이 51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