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페이퍼 맨'이 당선되어 등단한 김은우의 첫 소설집이다. 당선작을 비롯하여 문예지에 발표했던 다섯 편의 작품과 틈틈이 써두었던 세 편의 작품을 모았다. ‘작가의 말’에서는 각 단편의 실마리가 되었던 문장, 흘려들었지만 마음에 남았던 말을 밝히고 있다. 작가의 관심 분야인 물리학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짧은 이야기들은 무심하고 담담한 문체로 세상을 관조하고 있다.
“그것은 결코 채울 수 없는 존재의 허기였다.”
일곱 번째 단편 <목성에게 고리는>에 나오는 문장으로, 여덟 편의 단편을 하나로 묶는 문장이기도 하다. 채울 수 없는 존재의 허기 때문에 <페이퍼 맨>에서 ‘나’는 종이로 배 속을 채우고, <오래된 별>에서 ‘박종근’은 자신의 죽음을 마지막 축제로 장식한다. <고체의 논리학>에서 ‘이기석’은 쓸모없는 인간에 불과한 노인이지만 그래도 죽고 싶지 않다고 외친다. <이발소 의자>에서 ‘나’는 할아버지의 비밀이 담긴 의자에 끝없이 집착하고, <터널과 로켓>에서 ‘나’는 어머니의 부정을 목격하고도 평소처럼 일상을 영위하지만 마음에 남은 잔상은 이후 이어지는 사건의 발단이 된다. <모기 죽이기>는 모기떼의 공격으로 신경증에 걸린 ‘장’의 습관이 불러오는 참혹한 결말에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물고기 함수>에서 ‘나’는 쌍둥이 형제를 잃고 자신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품다가 자신은 이 세계에서 불완전한 종속변수에 불과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모든 게 비어 있기 때문이야. 채우는 것 외에 달리 도리가 없는 거지.”
등장인물들은 존재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채우는 것 외에 달리 도리가 없기 때문에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각자의 자리에서 쉼 없이 바둥거린다. <목성에게 고리는>에서 ‘언니’에게 나타난 증상과 같이 지상에서 얼마쯤 떠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주 미세한,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의 높이에 불과한 차이를 최악의 불치병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정신에서, 또는 육신에서 타인과 차이가 있고 그 차이는 각자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치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차이가 있음을 인지하는 행위 역시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몸부림일 수 있다. 달리 도리가 없기 때문에 아래 문장에서처럼 우린 노력 중인 것이다.
“선생님, 제 다리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걸을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우린 노력 중이에요. 그렇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