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빌리의 비참》은 1939년 6월 5일부터 15일까지 열흘에 걸쳐 《알제 레퓌블리캥》에 실린 기획 기사 모음집이다. 5월 말, 취재를 위해 카빌리에 도착한 기자 카뮈는 현지의 가난에 큰 충격을 받는다. 취재 기간 그는 식민지 알제리가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 위해 노력한다. 카뮈는 이 르포에서 알제리 카빌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말하지 않는다. 풍광을 묘사하는 것은 단 몇 마디 문장에 그칠 뿐이다.
카뮈는 기사에서 “문제는 진실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전부 말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수천 명이 극빈층으로 분류되고 2, 3일씩 굶는 일이 비일비재한 카빌리 지역민들의 실태를 고발하며, 수많은 사람이 알제리의 진실을 깨닫게 한다. 이 르포에서 카뮈는 비참한 현실에 대한 묘사와 비판은 물론, 현실적인 경제적, 사회적 방안을 제시하며 거의 필사적으로 카빌리의 보다 나은 미래를 제시한다.
독자들은 《카빌리의 비참》을 통해 언론인 카뮈의 날카로운 문장은 물론, 젊은 시절 그의 실천하는 지성을 엿볼 수 있다.
불그스레 타오르는 빈곤의 불꽃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금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카뮈는 독자들이 기사를 읽고 분노하기를 바란다. 그는 카빌리의 마을에서 만난 13명의 아이들이 해진 소매 밖으로 여윈 손을 내밀어 그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 장면을 잊지 못한다. 카빌리는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지역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배고픔에 시달리며 그들 중 4분의 3이 행정 지원에 의존해 살고 있다. 카빌인 중 절반이 실업자이고, 4분의 3이 영양실조다. 과거에는 본토 프랑스보다 훨씬 민주적인 체제를 누렸던 카빌리는 노예조차 겪지 않을 물질적 결핍 속에서 아우성친다.
카빌리의 빈곤은 유입 자금의 급격한 감소 탓이다. 카빌리인은 비싼 밀값을 감당하지 못한다. 경제공황으로 본토인 프랑스의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카빌리인은 굶주림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 프랑스로 향하는 절차마저 복잡해지면서, 카빌리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간다. 카뮈는 상황의 심각성과 불합리함을 정확한 단어로 써 내려 간다.
《카빌리의 비참》에서 카뮈는 카빌리의 유일한 문제가 빈곤이라고 진단한다. “모든 것이 빈곤에서 비롯되었고, 모든 것이 빈곤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다른 수많은 작은 문제의 근원이다. 그 연관성을 잘 이해해야만 프랑스 정부의 식민지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와 자선 활동에 대한 의존을 멈출 수 있다. 과도한 인구 밀집, 모욕적인 저임금, 비참한 주거 환경, 물과 도로와 위생 시설의 부재, 부족한 지원, 인색한 교육 등 카빌리인의 절망을 키우는 모든 문제를 젊은 기자는 낱낱이 파헤친다.
카빌인의 ‘정신 상태’가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편견에 대하여
‘안일한 정신 상태’와 ‘게으름’. 한 사회가 사회적 약자층과 빈곤층에 흔히 찍는 낙인이다. 카뮈는 이 편견을 바로 잡으려 한다. 카빌인의 급여는 모욕적일 수준으로 충분하지 않다. 노동시간은 법정 상한선을 무려 두 배 가까이 초과한다. 굶주려 죽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노동이지만, 실업자가 아닌 사람도 노동으로 충분히 먹고살 수 없다는 게 카빌리의 진실이다. 카뮈는 카빌리의 모든 노동자가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을 받는 이면에 용서할 수 없는 이해관계가 숨겨져 있다고 고발한다.
콜롱(프랑스계 지주)과 카빌리 지주들은 만연한 실업으로 일자리 경쟁이 심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일부 행정관들은 콜롱과 카빌리 지주들이 불만을 품을까 봐 코뮌 노동자의 임금 인상을 꺼린다. 콜롱들은 카빌리 노동자들이 이동이 잦다는 구실로 그들에게 낮은 임금을 지급한다.
다만 노동 현장에서 곡괭이조차 들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인부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유는 굶주림 때문이다. 카뮈는 먹지 못한 사람은 힘이 없고, 힘이 없는 사람은 적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역겨운 논리라고 지적한다. 그는 오로지 실업률을 낮추고 임금을 조절해야만 카빌리를 굶주림에서 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난이 명하는 과업은 밝히지 않은 채
가난을 묘사하는 것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카빌리의 비참》은 단순히 카빌리 지역의 가난을 고발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카뮈는 이 지역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해결책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것이 아닌, 기존 제도를 개선하거나 현실에 기반한 실현 가능한 개선책들이다. 또한 카빌인의 운명을 개선할 수 있는 자는 그 누구보다도 카빌인 자신이라는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 개선이다. 두아르-코뮌이라는 카빌리의 행정체계 내에서 한층 더 완성된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그 기반을 비례대표제에 두는 것이다. 마을 내 선거를 비례대표제로 치러 각 마을에서 주민 8백 명당 1명의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마을의 내부적인 대립을 해결할 수 있다.
아울러 흩어진 예산,분할된 보조금, 낭비되는 자선사업 기금을 넓은 관점에서 한데 모아야 한다. 이를 통해 카빌인은 스스로 카빌리를 개발하고,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카뮈는 식민지 알제리의 카빌리 사람들을 프랑스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채 프랑스를 위해 희생할 것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이 자금은 카빌리인의 직업교육을 위해 쓰여야 한다. 직업학교를 확충하고, 공업과 농업 전반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
소설가가 아닌 저널리스트로서의
카뮈의 면모가 드러나다
“처참한 가난에 대해 말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었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가난은 우리가 말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카뮈가 밝힌 연재 기획 기사의 주된 의미다. 그는 프랑스의 식민지 정책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최소한 정복당한 민족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도록 도와야 한다고 본다. 프랑스 시민들이 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 카빌리인들이 그들 자신과 그들의 미래를 충실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80년 만에 국내 번역 출간된 《카빌리의 비참》을 통해 우리는 식민지 알제리의 지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북아프리카 지중해의 중심’이라는 알제리의 아름다움 혹은 프랑스 식민지 정책의 미화가 아닌 현실에 대해 직시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세계 도처에서 가난과 전쟁 등으로 인한 비참한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에 박제된 알제리의 식민사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또한 이 르포를 통해 우리는 문학가로서 카뮈가 아닌, 젊은 지식인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카뮈의 실천적 면모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