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심장으로 살아간다
『너는 거기, 나는 여기』 출간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꾹꾹 눌러 쓴 사랑 이야기
남들과 조금 다른 심장으로 살아간다
『너는 거기, 나는 여기』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심장으로 살아간다고 말하는 연해 작가의 이야기이다.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느 날 갑자기 별이 된 그리운 언니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꾹꾹 눌러쓴 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책 속에 담긴 한 편 한 편의 글을 읽다 보면 오랜 시간 침묵으로 홀로 감당했을 작가의 슬픔과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사실 작가가 글 속에 담겨 있는 그리움의 대상이 언니라는 것을 밝히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갑자기 먼 타국에서, 본인이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언니를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상실의 아픔이 너무 컸기에 ‘언니’라는 한 마디를 자신의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언니가 폭발과 화염 속에서 극한 공포에 떨며 생의 마지막을 보내던 순간 고작 내가 한 일이라고는 러시아의 작은 시골 마을 골목골목마다 약에 취해 쓰러져 있는 젊은이들을 구하는 일이었다. 희망도 꿈도 없이 약에 취해 풀린 눈동자와 사지에 힘이 빠져 널브러져 있는 그들의 모습은 그 아름답던 백야 속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모든 시간이 나에게는 아이러니했다. 누군가는 꿈을 꾸고 살기 위해 생명을 갈구하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마치 죽고 싶어 미쳐 있는 것처럼 눈동자에서는 그 어떤 삶의 의지도, 희망도 찾을 수 없었다.
자비한 신은 어디에 있는가. 나에게는 왜 이토록 잔인한가. 그동안 내가 믿어온 신에 대한 신뢰에 의문이 들었다. 온갖 원망의 질문들을 쏟아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엎드려 우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세상을 견디는 방식은 그냥 견디는 것뿐이었다.
이 아이러니한 시간을 그냥 견디는 것.
내 가슴을 마구 흔들어 놓는 것들을 그냥 견디는 것.”
그러나 지금, 이렇게 ‘언니’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견뎌낼 힘과 따뜻한 위로를 전해 주고 싶어서이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상황과 모습은 다르겠지만 이별에 대한 기억들이, 상실에 대한 아픔들이 한두 개씩은 있을 테니까.
뻔한 이야기지만 뻔하지 않는 이유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조금은 가볍게, 조금은 뻔하게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일을 내가 겪었을 때는 그 일에 대한 무게가 결코 가볍거나 뻔하지 않다. 그런 이유에서 이 책 속에 담긴 글들은 뻔하지 않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니까.
“깊은 절망의 늪에서만 들을 수 있고, 희망이 없다고 느껴질 때만 볼 수 있는 모든 사람 가슴에 하나씩 묻어둔 사무치는 사랑 이야기.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는 심장을 짓누르는 절망의 이야기. 그 절망이 빛나는 별이 되어 삶을 이끌어 줄 수 있기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앞서간 영겁의 친구들이 나의 길이 되어 주었듯, 남들보다 먼저 가는 내가 아직 슬픔의 벽 속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길이 되어 주고 싶다. 이 땅 위에는 길이 없지만 한 사람이 먼저 가고 또 한 사람이 걸어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듯이 누군가에게 우리도 그렇게 길이 되어 주면 좋겠다.”
그렇다.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누군가를 떠나보내 본 사람이 떠나보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런 이유에서 작가의 글은 읽는 우리 모두의 아픔을, 상처를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기 충분하다.
너와 나는 반어법 따위를 좋아하다니
작가는 종종 반어법을 사용한다. 행복하기를 바라면서도 행복하길 바라지 않는다고 하거나, 그리우면서도 그립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도 얼마나 많은 반어법을 사용하고 있는가. 상대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괜찮다고 한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상대가 무시할까 봐, 떠날까 봐 아픔과 상처를 꽁꽁 싸매놓고 괜찮은 척, 무심한 척한다. 그렇게 공감하며 『너는 거기, 나는 여기』를 읽다 보면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깊숙이 밀어 놓았던 상처들, 곪았다 딱지가 앉기를 무수히 반복하여 이젠 너무 딱딱하게 굳어 감각조차 없어져 버린 자신의 상처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책을 덮을 때쯤엔 그 상처들이 말랑말랑해져 새살이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상처도 바라보고 공감할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이 말은 어쩌면 슬픔을 나누어 가진 상대가 자신 속에 있는 슬픔을 발견하고는 ‘나 혼자만 슬펐던 것이, 나 혼자만 아팠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자신이 먼저 위로를 받고, 슬픔을 나눈 이에게 더 깊이 공감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