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세계철학사 대장정
13년 만에 4부작 완간
서구 편향적인 반쪽짜리 철학사들을 넘어 사유의 역사 전체를 조망하는 선구적 시도
근대성을 극복해나간 현대/탈근대 철학을 다룬 완결편
지난 2011년, 철학사가 서양 철학사의 동의어와 다름없던 때에 철학자 이정우는 우리 학자가 쓴 “철학의 진짜 역사, 진정한 세계철학사”라는 야심 차고 장대한 프로젝트의 첫 권 『세계철학사 1: 지중해세계의 철학』(2011)을 발표했다. 세계철학사는 한국 학자로 처음 시도한 것임은 물론,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많지 않다.(그 몇 안 되는 세계철학사들조차 여러 학자들의 글들을 모은 것들이다.) 이후 매 권 800쪽 안팎에 달하는 『세계철학사 2: 아시아세계의 철학』(2018), 『세계철학사 3: 근대성의 카르토그라피』(2021)를 통해, 아시아를 포함한 비서구 철학에 합당한 자리를 되찾아주며 철학자 이정우의 관점으로 일이관지하게 인류 문명 전체의 전통과 근대성의 사유를 보편적으로 서술하여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의 다음 작업을 기다리게 했다. 그리고 이제 13년간의 대장정의 끝, 종착점에 다다랐다. 4부작의 완결편에서 저자는 현대 철학을 정리한다. “탈-근대적 철학으로서의 현대 철학이 전통 철학의 한계를 넘어 전개된 근대 철학을 이어받되 그것이 여전히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어떻게 극복해나갔는지”를 살펴보는 작업이다.
경계를 허무는 자유로움과 편견을 타파한 관점
서구와 비서구, 역사와 철학, 과학과 기술을 두루 유목한 성찰의 결실
이정우는 국내 철학계에서 보기 드문 학문적 깊이와 폭을 겸비한 학자이다. 이미 다수의 저작들과 대안공간(철학아카데미, 소운서원)에서의 강의를 통해 전통과 현대, 서구와 비서구, 과학과 철학을 회통하는 철학을 모색해왔고, 또한 공대를 나와 서양 고대철학(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 석사, 서양 현대철학(미셸 푸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땄으며, 한학자인 부친의 영향으로 한문에 능하고 일본 학자들과의 교류까지 활발히 해온 보기 드문 학문적 편력이 쌓여 이 역작이 나올 수 있었다. 덧붙여 현대 수학과 과학, 기술의 영역까지 섭렵함으로써 경계를 허무는 자유로움과 편견을 타파한 보편적인 관점을 장착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내공을 갖추었다.
그런 그가 구상한 『세계철학사』 전체의 구도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두고 인류 문명의 사유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첫 번째 권은 부제 “지중해세계의 철학”이 말하듯,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이슬람세계까지 포함)에서 고대와 중세에 전개된 철학의 역사를, 두 번째 권(“아시아세계의 철학”)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동북아와 인도)에서 고중세에 전개된 철학의 역사를 다루었다. 특히 2권에서는 이미 확고하게 정립된 서양 철학사와는 달리 개념과 구도는 물론이고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아시아 철학사에 자리를 제대로 잡아주었다.(언어권이 다른 동남아시아와 인도는 접어둔다 쳐도, 한문을 공통언어로 하는 동북아 삼국의 철학사조차 개념과 구도를 갖추지 못했다.) 이를 위한 그의 전략은 아시아세계의 철학을 지중해세계의 그것과 계속 비교해가며 논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세 번째 권에서는 동과 서를 구분하지 않고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두고 함께 다루며 근대의 사상지도를 그렸다. 근대 이전에는 따로 전개되었던 두 세계의 철학이 근대에 들어와 만났고, 함께 나아갔기 때문이다. 이 3권에서는 대략 17세기에서 19세기 중엽까지를 근대성이 형성된 시대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근대성이 전개되는 시기로 보아, 지금 여기 우리의 삶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끼친 “근대” 300년간의 여러 사유들의 알짜를, 서구와 비서구, 자연철학(자연과학)과 형이상학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엮어냈다.
이제 마지막 권은 지금 우리 세계가 마주한 파국적 상황들을 배태한 근대성과의 대결, 그 한계를 돌파하려는 사유의 시도들을 보여준다. 우리가 사는 현대의 철학은 탈-근대의 철학으로서, 근대 철학을 이어받되 그것이 내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려는 철학이다. 근대의 철학은 인간을 주체로 우뚝 세우는 성취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성취의 이면에서 제국주의, 전쟁, 환경 파괴, 인간 소외, 기술 지배 등 고통과 어두움 또한 태어났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근대의 사유/철학에 내장되어 있는 문제로부터 비롯했다. 등질화, 결정론, 일방향적 인과론, 환원주의, 발생적 오류 같은 측면들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세계의 어려움들은 결국 근대성과 대결해야만 극복이 가능하다. 근대성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사유의 시도들, 그것이 현대 철학의 지형도를 이루고 있다. 이 책은 그 ‘탈근대’ 철학의 여러 갈래들을 서구뿐 아니라 동북아를 포함한 비서구까지 포괄하여 두루 살핀다.
단순한 철학사가 아니라 ‘철학하기’이다
허울 좋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닌 진정한 세계 보편성을 찾으려는 시도
책으로 3,220쪽, 원고지로 18,000매에 달하는 이 엄청난 작업은 철학사를 그저 균형 있게 다시 정리하려는 학자적 야심의 발로만이 아니다. 여기에는 문명을 바라보는 저자의 철학관과 역사관이 깊이 녹아 있다. 서구 중심의, 허구에 가까운 역사/철학사 서술은 결국 오늘날의 일방적인 세계화를 낳았다. 저자는 편견이 낳은 사유의 정향을 타개하고 “비서구를 전근대로 보는” 허울 좋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넘어 진정한 보편성을 찾고자 이 대규모 기획을 감행했다. 이것은 단순한 철학사 집필이 아니라, 또 하나의 철학하기이다.
“철학사를 통하여 철학을 수행한다. 저자의 관점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이러한 수행은 뜻깊다. 철학의 회로 안에만 머무는 철학사, 철학 바깥에서 맴도는 철학사가 많다. 저자의 철학사 작업은 철학의 안과 바깥을 자유로우면서도 절제 있게 드나든다. 사상사, 지성사를 겸한다. 드문 성취다.” (출판평론가 표정훈)
이제 우리는 이 <세계철학사> 4부작의 완간과 저불어 “우리 철학자의 손으로 쓴 최초의 세계철학사”를 가지게 되었을 뿐 아니라, 특정 문명과 언어권의 헤게모니에 지배당하며 반쪽짜리 사유만을 배태했던 사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진정한 ‘철학하기’를 만나게 된다. 이는 남의 잣대가 아니라 스스로 사유의 주체가 되어 세계를 균형 있게 바라보기 위한 주춧돌이 된다.
내가 꿈꾼 것은 할어버지 세대의 세계, 아버지 세대의 세계,
그리고 아이들 세대의 세계를 모두 이어서 사유하는 것
무엇보다 저자는 자신이 “세계”철학사를 쓰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왜 ‘세계’철학사가 되었는가? 나는 소은 선생께 배운 서구 존재론사에 깊이 경도되었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세계가 늘 변치 않는 산하처럼 온존(溫存)하고 있다. 이 세계는 태극도, 각세교(覺世敎), 한의학, 고전 문헌들, 붓글씨, 가사(歌辭), … 같은 전통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는 세계이다. 그러나 나를 둘러싼 세계는 너무나 급격히 변해갔고, 이 예스러운 시대는 이내 서구의 근대성을 모델로 한 ‘개발’에 매진하는 시대로, 그리고 그 시간을 채 소화하기도 전에 다시 ‘글로벌’과 ‘디지털’로 상징되는 탈-근대적 세계로 쏜살같이 이행해갔다. 내가 꿈꾼 것은 내가 짧은 시간에 압축적으로 경험했던 이 세계들, 어린 시절 할아버지 세대와 함께 살았던 전통의 세계, 그 후 아버지 세대와 함께 살아온 근대 세계, 그리고 지금 내가 아이들 세대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탈 -근대적 세계, 이세 세계를 모두 이어서 사유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내가 써야 할 철학사는 서양 철학사도 아니고 동양 철학사도 아닌 세계철학사여야 했고, 그 구성의 실타래는 전통과 근대 그리고 탈근대여야 했다.” (「맺는 말」에서)
철학이란 철학자가 책상에 앉아 고민하며 수행하는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저자는 보여준다. 이미 강단이 아닌 여러 대안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