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 근현대시선’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고정희(1948~1991)는 한국시가 중요하게 꼽는 키워드들 위에서 거침없이 행보를 하며 시를 쓴 시인이다. 그의 시는 심장이 뛰고 이성이 향하는 곳으로 결연하게 나아간 벅찬 활보며 궤적이었기 때문에 시인의 박동이 그대로 전해지듯 숨 가쁘게 다가오기도 하고 깊은 자상(刺傷)을 남기듯 고통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시가 열어젖힐 수 있는 모든 문을, 그러나 열어젖히는 순간 범람해 올 격랑을 감당할 수 없어 머뭇거리게 되는 그 불가항력적인 문들을, 고정희는 뜨겁고 의연하게 열어젖혔다.
고정희의 시는 ‘여성’ ‘민중’ ‘현실’이라는 묵직한 키워드를 품어 안는 동시에 관통하면서 나아갔다. 그는 시인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여성민중주의적 현실주의’라고 명쾌하게 정의한다. 1975년 등단 이후 1991년 타계하기까지 11권의 시집들을 통해, 거칠면서도 우아하게, 격하면서도 결곡하게, 낭창거리면서도 정확하게 과녁의 중심을 향해 가는 언어들을 줄곧 토로했다. 고정희의 시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부터 준열한 지사적 신념까지, 애틋한 연정으로부터 결연한 고함까지, 제 목소리에 겨운 무당으로부터 지적이고 명석한 여성 인물들에 이르기까지, 진정성을 담은 ‘목소리’들을 변주하며 언어 위를 활주했다.
여러 난제의 지점들을 딛고 서 있던 시인, 고정희는 현실 인식과 여성 문제 사이의 간극은 물론 낙차까지 드물게 통찰했던 시인이다. 그는 이 인식과 성찰이 혼효된 가운데에서 ‘시적 실천’과 ‘실천적 시’를 견지했다. 시인은 이 시간들을 이렇게 요약한다. “광주에서 시대 의식을 얻었고, 수유리 한국신학대학 시절 민중과 민족을 얻었고, <또하나의문화>를 만나 민중에 대한 구체성과 페미니스트적 구체성을 얻었다. 이들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것이며, 이는 나의 한계이자 장점이다.” 품 넓은 기독교적 세계관과 굳고 정한 역사의식, 탁월하고 유연한 서정성과 치열하고 단호한 페미니즘, 이렇듯 결연한 의식과 애연한 서정을 모두 견인했던 시들이 바로 고정희의 시사(詩史)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