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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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찍은 사진이 별로 좋지 않다면, 그건 당신이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토저널리즘의 전설, 사진에이전시 매그넘의 창립자 위대한 종군사진가 로버트 카파의 삶과 사랑이 그림책 작가 플로랑 실로레의 3년 반을 쏟은 역작을 통해 우리 앞에 되살아난다. 그래픽노블로 되살아난 사진가 로버트 카파 어느 분야에나 그 분야의 전범을 만드는 선구자가 있다. 사진가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1954) 역시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사진이 본격적으로 인쇄 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포토저널리즘의 시대는 스페인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 등 전쟁과 함께 동이 튼다. 라이카와 콘탁스로 대표되는 35mm 영화 필름을 사용하는 소형 카메라의 발명으로, 우리는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후의 기괴한 정적靜寂이 감도는 정적靜的인 전쟁 사진이 아니라 피가 흐르고 살점이 튀는 참혹한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낸 살아있는 전쟁 사진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에 등장하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장면의 마구 흔들리는 긴박한 화면 구사는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자 포토저널리즘의 전설인 로버트 카파의 노르망디 사진에서 비롯된 것이다. 카파가 찍은 사진들은 일찌감치 고전의 반열에 올랐으며, 그의 일생을 다룬 전기, 영화, 다큐멘터리 등도 여럿이다. 《로버트 카파, 사진가》(원제: Capa, l’Eoile Filante, 2016)의 그림책 작가 플로랑 실로레는 로버트 카파와 그의 연인이자 훗날 전사한 최초의 여성 사진가로 기억될 게르다 타로의 열정적인 삶과 사랑을 그린 소설 《카파를 기다리며Waiting for Capa》(Susana Fortes, 2009)를 접하고 깊은 감동을 받는다. 뛰어난 사진가이자 매력 넘치는 사내였던 그가 왜 그토록 술과 도박, 여자에 탐닉할 수밖에 없었는지, 자신의 예명 ‘카파’를 만들어준 사랑하는 연인 타로의 빈자리가 얼마나 컸는지, 결국 전장에서 취재 도중 지뢰를 밟아 그녀의 뒤를 따르기까지, 카파의 짧지만 불꽃같은 삶을 실로레는 3년 반에 걸친 노력으로 이 훌륭한 그래픽노블에 담아냈다. 전설로 남은 ‘카파’라는 이름을 선사한 연인 게르다 타로와의 사랑과 죽음 길지 않은 분량 속에 카파가 종군 사진가로서 가장 왕성히 활동했던 시절의 모습들이 압축적으로 녹아 있다. 작업의 실마리가 되었던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 그래픽노블 전기 역시 카파와 게르다 타로의 이야기로 문을 연다. 잘 알려진 것처럼 ‘로버트 카파’는 애초에 게르다 타로에 의해 탄생한 허구적 인물이었다(카파와 타로의 실제 이름은 각각 엔드레 프리드만, 게르타 포호릴레이다). 정치적 상황이 불안정했던 동유럽 헝가리 출신의 사진가로서 삶을 막 시작한 이들에게는 부르기 쉬운 미국식 이름의 잘나가는 사진가라는 가면이 필요했다. 그리 오래지 않아 정체가 탄로 나고 말지만, 역량을 인정받은 카파와 타로는 본격적으로 사진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카파의 삶 전체에 걸쳐 그 어떤 전쟁의 상흔보다 깊은 트라우마로 남을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지식인들이 이상을 불태우던 전장인 스페인 내전에서 타로가 공화군의 탱크에 깔려 사망한 것이다(조지 오웰, 어니스트 헤밍웨이, 앙드레 말로 등도 국제여단의 일원으로 참전한다). 당시 드물었던 재능 넘치는 여성 종군 사진가 타로의 갑작스런 죽음은 유럽의 여러 매체는 물론 미국의 「라이프Life」에까지 ‘최초로 전사한 여성 종군 사진가’로서 보도된다. 이후 이어지는 전쟁의 현장에서, 그들이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꿈을 키웠던 파리에서, 카파는 시시때때로 연인 타로를 떠올린다. 그는 대표적인 화보잡지 「라이프」등 다양한 매체의 의뢰를 받아 여러 주제의 사진을 찍고 취재했지만(전장을 떠나 있을 때는 잡지 「홀리데이Holiday」 등에 ‘상류층이 잘 가는 해수욕장’ 같은 기사를 싣기도 했으며 스튜디오 촬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온몸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는 곳은 역시 전쟁터였다. 스페인 내전을 시작으로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인도차이나 전쟁까지 20세기 세계사를 굵직하게 수놓은 현장에는 로버트 카파가 빠지지 않았다. 지금과 같이 편리한 줌 렌즈와 초망원 렌즈가 없던 시절, 분초를 다투는 급박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카파가 남긴 사진과 ‘카파이즘’(“만약 당신이 찍은 사진이 별로 좋지 않다면, 그건 당신이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으로 대표되는 그의 사진 철학은 이 인물이 왜 전설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전설적 사진에이전시 매그넘 창립 잉그리드 버그만과의 사랑 어니스트 헤밍웨이와의 우정 카파는 단순히 훌륭한 사진을 찍는 일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비롯한 사진가들의 권리를 지키는 일에도 힘썼다. 평소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촬영한 사진들의 저작권을 언론사에 넘겨야 했던 현실에 분노하던 그는 또 다른 사진의 전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데이비드 심 시모어, 조지 로저와 뜻을 모아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재능 있는 젊은 사진가들로 구성된 협동조합 방식의 단체를 결성한다. 지금까지도 건재한 전설적 사진 에이전시, 매그넘의 시작이다. 그는 전쟁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한 용맹한 영웅이었지만, 카메라 뒤에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뇌하고 유혹에 무너지는 약한 모습을 지닌 한 인간이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에서 오는 정신적 압박과 타로를 잃은 채워지지 않는 상실감은 그를 도박과 술, 여자에 빠지게 만들었다. 행운의 별은 전장에서와 달리 도박에서는 그의 머리 위에서 빛나지 않았고 그는 늘 원고료 선금을 어이없이 날리고 말았다. 추축국의 일원이었던 헝가리 출신이라는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닥쳐오는 위기들을 늘 아슬아슬하게 넘겼다. 주변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많았다. 그는 매력 넘치는 사내였다. 한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답게 그는 당대의 얼굴들을 만났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가깝게 지냈고, 존 스타인벡과 함께 소련을 취재했으며, 피카소, 마티스 등 미술계와도 폭넓게 교류한다. 1945년 6월, 해방된 파리에서 그는 잉그리드 버그먼을 만난다. 화려하지만 가식적인 세계인 할리우드의 명배우는 거칠지만 생생한 야생동물의 체취를 풍기는 종군 사진가와 사랑에 빠진다. 전쟁은 끝나고, 카파는 버그먼을 따라 할리우드의 사진가 생활을 시작한다.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은 둘의 사랑을 응원했지만, 카파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할리우드를 떠난다. 그는 다시 전장으로 뛰어들고, 매그넘 에이전시를 통해 젊고 재능 있는 사진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애쓴다. 1954년 5월 25일, 인도차이나 반도의 베트남 취재 도중, 카파는 지뢰를 밟아 짧지만 불꽃같았던 생을 마친다. 그의 손에는 흑백 필름이 든 콘탁스 카메라가, 곁에는 컬러 필름이 든 니콘 카메라가 놓여 있었다. 그림으로 만나는 카파의 걸작들 《로버트 카파, 사진가》에서 작가 실로레는 카파를 대표하는 사진들을 세밀한 터치로 공들여 되살려냈다. 그는 사진 원본을 그래픽노블로 재구성할 때 레이아웃 등에 매우 주의를 기울이며 고심했다고 한다. 그림의 주조는 흡사 오래된 사진을 연상시키는 세피아 톤이다. 마치 카파의 삶이 긴 한 롤의 필름에 담겨 우리 눈앞에 순서대로 펼쳐지는 듯하다.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물감을 가급적 엷게 쓰며 펜으로 윤곽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흰색 아크릴 물감을 더하여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스탈린의 자객에게 암살당한 트로츠키의 마지막 대중 연설 장면, 스페인 내전에서의 ‘쓰러지는 병사’, 제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오마하 해변에서의 연합군 상륙, 그가 가장 비통함을 느꼈다고 고백한 종전 직전 총에 맞아 쓰러진 발코니의 미군 병사, 지뢰를 밟기 전 찍은 최후의 사진 등, 그림에서 생생한 현장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