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 사물들

신유진さん他1人 · 小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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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소설과 한 편의 사진으로 이야기하는 우리들의 자화상. 여름의 끝, 사물들은 각자 서로의 방을 가지고 있다. 상대가 들어오도록 내 몸을 구부리는 지나친 배려도, 거칠게 잡아당기는 쪽으로 끌려가는 힘의 논리도 없다. 그래서일까? 이 평범한 두 단어 사이의 상관관계조차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의 주어도, 형용사도, 부사도, 목적어도 아니다. 그저 둘 사이의 작은 쉼표 하나가 두 세계의 다리가 되어 준다. 마침표가 아닌 것이다. 완전하나 닫히지 않은 두 세계는, 서로를 향한 문을 그렇게 열었고, 사진과 소설이 만난다. 버스 정류장에서 나란히 선, 서로 다른 오늘의 인생을 살고 온 두 사람처럼, 같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말벗이 되어간다. 사소로우나 지루한 시간을 견디게 해 주는 담소들로, 정감이 있으나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 적절한 거리로, 늘 만나는 인연과는 조금 다르게, 그러나 같은 공간과 시간의 기다림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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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한 편의 소설과 한 편의 사진으로 이야기하는 우리들의 자화상 “나는, 나는 살고 싶다. 살아야겠다는 몸부림의 땀을 흠뻑 뒤집어쓰고, 소리를 질러가며, 사정없이 흔들리다가 똑같이 약한 누군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리고 싶다. 그렇게 처절하게라도 살아 있고 싶다.” I. 한 편의 소설과 한 편의 사진 글이 사진을 설명하거나 사진이 글을 보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자의 세계에서 그러나 창을 열어두고 여기서 부는 바람에 시원해지고 저기서 새어 나온 불빛에 따뜻해지는 사진과 글, 한 권의 책 속에 담을 수 있을까 여름의 끝, 사물들은 각자 서로의 방을 가지고 있다. 상대가 들어오도록 내 몸을 구부리는 지나친 배려도, 거칠게 잡아당기는 쪽으로 끌려가는 힘의 논리도 없다. 그래서일까? 이 평범한 두 단어 사이의 상관관계조차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의 주어도, 형용사도, 부사도, 목적어도 아니다. 그저 둘 사이의 작은 쉼표 하나가 두 세계의 다리가 되어 준다. 마침표가 아닌 것이다. 완전하나 닫히지 않은 두 세계는, 서로를 향한 문을 그렇게 열었고, 사진과 소설이 만난다. 버스 정류장에서 나란히 선, 서로 다른 오늘의 인생을 살고 온 두 사람처럼, 같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말벗이 되어간다. 사소로우나 지루한 시간을 견디게 해 주는 담소들로, 정감이 있으나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 적절한 거리로, 늘 만나는 인연과는 조금 다르게, 그러나 같은 공간과 시간의 기다림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눈치가 빠른 이들은 어쩌면 단번에 둘 사이의 공통점 같은 것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관계가 아닌 온전한 두 독립체에 집중할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색과 무늬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에서 소설로 소설에서 다시 사진으로 이 여정이 어딘가로 향하는 하나의 길로 이어지는 것은 바로 ‘결’ 때문이 아닐까? 마냥 보드랍지만은 않은, 조금은 까슬하나 또 그저 담담히 누운, 세상을 향해 몸을 부딪치며 만들어 온 소설과 사진의 결. 여름의 끝, 사물들에는 결이 닮은 사진과 소설이 있고, 그 두 세계가 잠시 쉼표를 찍고 머무는 정거장 같은 시간이 있다. II. <사물들> - 사라지려는 것과 남겨지고자 하는 것 사이의 불안 “나는 펜이 아닌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가 되어 수동적으로 베껴 적었다. 그 순간에 왜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렀는지 이해하기 위해 벽에 붙여놓은 사진을 시간을 두고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았다. 그러다보면 어떤 인상으로부터 시작된 나의 오해일 테지만 이야기가 들어앉았다. 그 안에 내가 있었다.” ‘여름의 끝, 사물들’ 은 사진가 신승엽의 ‘사물들’로 시작된다. 위태롭게 놓여 진 혹은 버려진 사물들, 나란히 병치된 흑백의 이미지 사이에는 무언의 텍스트가 놓여있다. 작가는 서문에서 ‘나는 다만 문장을 옮겨 심듯 사진을 찍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또 어딘가에서는 '내게 사진을 찍는 것은 삶이라는 책 속의 문장에 밑줄을 치는 일’ 과도 비슷하다고도 했다. 밑줄이 그어지는 문장은 어떤 것일까? 삶에 관한 교훈에, 아름다운 문장에, 잊지 말아야 할 사실에, 진실이 드러나는 곳에. 그리고 자신을 닮은 문장에. III. <여름의 끝> - 무력한 청춘의 이야기 “제이와 버드는, 그 해, 내가 자랐던 여름을 함께 보낸 그들의 이야기이자 어쩔 수 없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술 한 잔을 앞에 놓고 수없이 떠들어 대던 말속에 제이와 버드만의 세상이 고스란히 있었다. 한 때, 우리는 두렵고 불안했으며, 지루하고, 분노했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능하지는 않았으나 무력한 청춘이었다.” <작가의 말> 사물들이 남긴 잔상을 끌어안은 채, 소설 <여름의 끝>이 이어진다. 소설가 신유진의 <여름의 끝>에서는 ‘사물들’ 만큼이나 위태롭게 놓여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과 그것들은 버려진 것처럼 그곳에 놓여 있다. “제이가 사는 동네처럼 스물한 살에 낡은 무언가가 되어버린 인간” (본문 중에서) 제이와 “그냥 어쩌다, 남들은 다 남쪽으로 날아갔는데 대열을 이탈해서 갈 곳을 모르고 헤매다가 여름이 따뜻해서, 에라 모르겠다. 그렇게 주저 않은 미친 새” (본문 중에서) 같은 버드 연민을 품고 소설 속 제이와 버드를 바라보지만, 사실 그들은 또한 우리들이 아니었던가? “환풍기가 더러운 건 알지만 환풍기를 닦는 법은 모르고 이 부엌이 싫지만 딱히 다른 대안은 없다. 그것이 우리들이었다” (본문 중에서) IV. 그리고 한 권의 책 여름의 끝을 끝내고 다시 사물들을 바라보면, 시선에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굳게 닫힌 문으로 책을 열고 흙이 잔뜩 묻은 두 켤레의 신발로 문을 닫는. 제이와 버드, 그리고 사진 속 사물들 모두 누군가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위태로움이야말로 삶의 바닥에 놓여있는 것 아니던가? 그것을 단단히 밟고 어떻게든 서고자하는 우리들의 자화상 말이다. 소설 속의 문장이 침묵 속에서 떠올라 사진 안으로 스며들고. 사진 속의 사물들이 소설 속에 등장한 것 같은 착각이 밀려올지도 모른다. 이미지 뒤에 자리한 작가의 시선을 짐작하는 일과 촘촘히 자리한 문장들 속 이미지를 발견하는 일. 사진으로, 소설로 그리고 다시 사진으로 돌아오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해 하나의 서사를 발견하는 즐거움 2014년 여름, 소설가 신유진과 사진가 신승엽이 함께 품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 3년의 시간을 거쳐 한 권의 책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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