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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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사태로 증명된 ‘생태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왜 150년도 더 지난 맑스의 『자본』을 읽어야 하는가? 2008년 금융위기 이래로 (적어도 자본주의의 본산인 서구에서는) 맑스의 이론이 다시 주목을 받아 왔고, 이와 더불어 『자본』 읽기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것은 이러한 위기가 자본주의 외부의 쇼크가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경제에 내재한 위기였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 때문일 것이다. 이 무렵 한국 사회에서도 제한적이기는 하나 자본주의체제의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이 적잖이 출간되고, 맑스의 『자본』 해설서(혹은 개설서)들이 소개되기도 했다. 금융위기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사이 자본주의의 위기 담론은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의 등장과 함께 자취를 감추다시피 하고, 현재 거의 전 세계는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시작된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Pandemic)’에 의해 지배되면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중이다. 언뜻 보아 이것은 자본주의적 가치증식 과정들과 관련이 없는 외부의 쇼크처럼 보이는 까닭에 코로나 확산으로 너나없이 고통을 당하면서도 이러한 고통이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에 대한 관심으로는 좀처럼 연결되지 않는다. 이번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선보이는『맑스의『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자본』의 첫머리에 대한 독해 안내와 주해』라는 긴 제목의 책의 저자 미하엘 하인리히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바로 이러한 인식이 문제이며 안이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건넨다. 오늘의 생태 위기에서 비롯된 팬데믹 현상은 다름 아닌 단종재배에 근거한 자본주의적 농업의 구조가 생물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동물종을 파괴시킴으로써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결국 인간들로 바이러스들이 전염되는 것 또한 인류사의 이전 어느 시기보다 훨씬 더 간단하고 훨씬 더 자주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여기에 대응해야 할 의료체제는 신자유주의적 긴축 정책의 첫 번째 타깃이 되어 왔다. 그러므로 2008년처럼 작금의 위기 또한 지배적인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를 가리키고 있는 셈이 된다. 전례 없는 재앙의 연쇄 앞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제 개발 못지않게 스스로 멈출 수 없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법칙들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긴급한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누구라도 맑스의 『자본』을 비켜갈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왜 『자본』을 요점 정리식의 누군가의 렌즈를 통한 개론서가 아니라 『자본』 자체를 읽어야 하는가? 맑스의 『자본』이 세상에 나온 지는 150년도 더 지났다. ‘혁명’의 20세기 초중반을 지나 맑스주의를 체현했다는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문제를 드러내는 과정에서도 자본주의 서구 국가들에서 폭발한 학생운동은 『자본』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이때 등장한 맑스 열풍은 ‘새로운 맑스-독해’의 흐름을 만들어 냈는데, 여기서 ‘새로운’이란 수식어는 그때까지의 지배적인 독해 방식(교조든 개량이든)을 극복하려는 의지에 의해 뒷받침된 것이었다. 그러나 한마디로 이러한 흐름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베트남전쟁의 종결과 제3세계 혁명의 열기도 식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를 지나면서 우파들만이 아니라 좌파들 사이에서도 『자본』이 유효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하는 ‘맑스주의의 위기’를 거치면서, 마침내는 1989/90년의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최종적으로 맑스주의는 종언을 고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곳곳에서 모순을 드러내면서 맑스주의는 또 다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맑스-독해’가 흐름을 만들어 냈는데, 이때의 흐름은 과거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달랐다. 하나는, 비록 그 강도(强度)에서 1960년대 말에 비해 못 미치지만 정치적 기대가 적은 대신 그릇된 해석의 전제들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며, 둘은 일종의 유행 현상에 그쳤던 과거와 다르게 맑스의 『자본』에 대한 진지한 몰두, 다르게 말해 『자본』에 대한 피상적이지 않은 정확한 이해를 목표로 삼는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로 독일을 중심으로 생겨난 이 흐름이 자본주의의 물신성에 천착했던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영향으로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이것은 침체되었던 맑스주의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혁신하는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 『맑스의『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자본』의 첫머리에 대한 독해 안내와 주해』가 독일에서 출간된 해가 금융위기가 막 시작된 2008년이라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저자 미하엘 하인리히는 1991년 『가치학(Die Wissenschaft vom Wert)』이란 박사학위논문의 출간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이로써 ‘새로운 맑스-독해’의 흐름을 한 차원 발전시켜온 학자로 평가받는다. 맑스의 『자본』 1권 1장과 2장이 가치론이라고 했을 그가 자본주의의 위기의 심화를 목도하면서 이 자본의 첫머리에 대한 치밀한 주해를 시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자본』과의 철저한 대결 없이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것도, 그것을 극복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하인리히는 처음부터 자본주의와 그것의 작동 법칙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이라는 텍스트 자체에 대한 철저한 독해 외에 다른 우회로는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자본』에 대한 온전한 접근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나 우회로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과거 “맑스-레닌주의”를 공식 이데올로기로 내걸었지만 소수의 전문가 집단을 제외하고는 집중적인 텍스트 토론이 부재한 채 “축약된 교과서”만 존재하던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까지도 맑스주의의 다양한 조류들이 유포한 그간의 해석들이 실은 맑스의 『자본』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고 실패로 이끈 장애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자본』에 대한 쉽고 간결한 이해를 돕는다고 만들어진 숱한 개설서들까지도. 지금까지 『자본』의 대용물로 생각해 왔던 것들을 일단 옆으로 밀쳐 두고 『자본』이라는 텍스트와 대결해 보는 것은 맑스주의의 쇄신은 물론이고,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필수적인 과제인 것이다. 19세기에 쓰인 맑스의 『자본』은 21세기에도 유효한 것인가. 하인리히는 맑스의 서술은 모든 발전된 자본주의에서 만나는 공통적인 것을 목표로 한 것이며, 그것은 어쩌면 오늘의 21세기에 더 잘 맞는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그러한 적절성은 『자본』이라는 텍스트 자체를 독해할 때 시험되고 판명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본을 어떻게 읽고 토론할 것인가 『가치학』 출간 이후 미하엘 하인리히는 『정치경제학 비판 개론』(2014)를 펴낸다. 이 책(『새로운 자본 읽기』로 번역되어 있다)은『자본』 전 3권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을 시도한 것인데, 하인리히는 여기서도 가치론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나 그것조차 제대로 된 『자본』읽기를 대체할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자본』이라는 텍스트 자체에 대한 상세한 몰두를 위한 다른 책이 요구되었던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이번에 번역된 『맑스의『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자본』의 첫머리에 대한 독해 안내와 주해』이다.[1부가 2008년, 2부는 2013년 독일에서 출간되었다.] 『자본』은 결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텍스트가 아니다. 특히 『자본』의 첫머리가 그러하다. 어쩌면 1960년대 말에 떠올랐던 ‘새로운 맑스-독해’가 피상적인 이해에 그쳤던 것도, 하인리히의 표현대로, 『자본』 1권의 어딘가에서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상품에 대한 장(章)에 등장하는 추상적 노동, 가치형태 혹은 상품물신주의와 같은 중심 개념들은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의욕적으로 시작한 『자본』 읽기는 여기에서 막혀 좌절을 맛보기 십상이었다. 이는 한국에서도 상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