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세이초 100년의 작품을 결산하는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이 드디어 상권(2009년 3월), 중권(2009년 6월), 하권의 총3권으로 완간되었다. 한국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책임편집을 맡은 이 작품집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정수가 되는 총 27편의 중단편을 모은 걸작선이다.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하권에는 제목 짓기의 고수 세이초가 지은 명제목 단편 세 편과, 권력에 심취해 파멸해 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데이코쿠 은행 사건의 수수께끼」, 「까마귀」 외, 마쓰모토 세이초 상 수상 작가들이 이야기하는 세이초 작품론과 그들이 꼽은 걸작 「사이고사쓰」, 「국화 베개」, 「불의 기억」이 실려 있다.
책의 마지막에는 한국 문단을 날카롭게 비판해 온 문학평론가 조영일의 해설이 실려 있다. 조영일은 이 글에서 세이초의 일생과 그가 걸어온 문학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동시에 그에 기대어 한국 문단의 현실에 칼을 들이대기도 한다. 소설 뒤에 부록처럼 달려 있는 해설이 아니라 거칠지만 긴장감 넘치는 비평은 한국에서 문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을 만하다.
“거장의 출발점부터 종착점까지, 100년의 발자취를 더듬는 대작업!”
글쓰기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나는,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쓸 것인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남들이 가는 길은 걷고 싶지 않았다.
(1963년 11월, 마쓰모토 세이초)
‘일본 문학의 거인’마쓰모토 세이초를 제대로 수식할 만한 어휘는 찾기 힘들다. 보편적인 테마로 인간을 그리고, 역사와 사회의 어둠을 파헤치려 했던 세이초의 창작 영역은 사회파 미스터리로 대표되는 픽션과 함께 논픽션, 평전, 고대사, 현대사 등으로 무궁무진했다. 41세 늦은 나이로 문단에 들어서 숨을 거둔 82세까지 그는 ‘(작품의) 내용은 시대의 반영이나 사상의 빛을 받아 변모를 이루어 간다’는 변함없는 신념을 가지고 현역으로 글을 썼다.
세이초는 장편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고 있지만, 단편에서는 보다 더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 단편의 명수 아토다 다카시(『시소게임』,『나폴레옹광』의 작가. 나오키 상 수상)는 이렇게 말한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단편의 명수였다. 장편 미스터리로 많은 독자를 매료하고 갖가지 베스트셀러를 발표했지만 정말로―대단하다―고 혀를 두르는 것은 단편이다. 이것은 거의 정설이라 말해도 좋은 평가이리라.
조금 불가사의한…… 어째선지 의심스런 배후에 어마어마한 사건이 숨어 있다, 인간의 야심이며 질투가 꿈틀거린다, 바로 거기에 서민의 살아 있는 인생이 있다, 그것을 파헤쳐 맛깔나는 문장과 솜씨 좋게 이야기를 진행하는 작풍이 단편과 잘 어울린다.”
일본에서 2004년 출간된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은 그가 남긴 1,000여 편의 작품 중 걸작만을 뽑아 기획한 작품집으로, 마쓰모토 세이초의 정수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해제만 읽어도 빨리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닌 남이라도 어떤 사람이 정말 재미있어서 하는 일을 옆에서 지켜보노라면 나마저도 힘이 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을 편집한 미야베 미유키를 보면 꼭 그런 느낌이다.” (김연수/소설가)
특별히 이 컬렉션은 일본의 최고 대중문학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책임 편집을 맡아, 직접 상·중·하권의 각 장의 구성과 주제를 기획하고 작품을 선택하고 해제까지 실었다. 미야베 미유키의 책임 편집은 그저 책의 가치를 높이는 차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마쓰모토 세이초 월드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있다. ‘세이초의 장녀’라 불릴 만큼 그의 작업을 계승하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창시자로서의 거장의 모습뿐 아니라 역사와 사회의 어둠을 직시한 사상가이자 역사가로서 모습 등 진정한 거장의 모습을 밝히는 데 성공했다.
미야베 미유키는 문단에서 ‘마쓰모토 세이초의 장녀’로 알려져 있으며, 스스로도 “마쓰모토 세이초야말로 자신의 고향이자 뿌리”라고 말할 정도. 트릭을 중시하는 본격 미스터리와 달리 범죄의 사회적 동기와 배경을 파헤치는 그의 장기 역시 세이초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또한 시대 소설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여 현대물을 넘어서는 역량을 과시하고 있는데, 이는 픽션과 논픽션, 평전, 현대사와 고대사를 넘나들었던 스승 마쓰모토 세이초와 비견할 만하다.
미야베 미유키는 “저에게 이 작업은 꽃밭을 노니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거인의 커다란 발자국들 가운데 하나로 깡충 뛰어들고 보니 제 키만큼이나 깊은 발자취 안에는 색색가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고 말한다.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은 그렇게, 픽션과 논픽션, 역사/시대 소설과 미스터리를 구분하지 않고 미야베 미유키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각 장의 문을 여는 미야베 미유키의 해제는 짧고 명쾌하며 거장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는데다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어, 컬렉션을 읽는 쏠쏠한 재미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물리적 트릭을 심리적인 작업으로 고칠 것, 특이한 환경이 아니라 일상에서 설정을 찾을 것,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일 것, 누구나 경험할 만하거나 어디서나 일어날 것 같은 서스펜스를 추구할 것. 나는 환상이 아닌 그러한 리얼리즘 안에서 미스터리를 쓰고 싶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효시로 불린다. ‘사회파 미스터리’란 범인를 쫓아 사건을 해결하고 범죄에 쓰인 트릭을 푸는 오락적인 추리 소설(현실에서 벌어질 법하지 않은)을 넘어, 곁에서 언제든 볼 수 있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현실 속 어느 곳에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을 다룬다. 사회파 미스터리에서는 범죄를 해결하는 것만큼 사회적 배경과 동기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미야베 미유키뿐 아니라 현대의 기리노 나쓰오, 다카무라 가오루, 히가시노 게이고 등 유수의 작가들을 비롯하여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추리 소설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추리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55년부터인데 단편집 『얼굴』이 제10회 일본 탐정 작가 클럽상을 받으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곧 첫 장편 추리 소설 『점과 선』, 이어 발간된 『눈의 벽』과 함께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며 사회파 미스터리의 붐을 일으킨다. 탐정 소설의 틀을 부수고 동기를 중시한 ‘세이초 미스터리’는 거짓말로 점철된 탐정 소설과 일반 독자에게서 유리된 문예 살롱 소설에 진력이 난 독자들에게 신선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미스터리는 『점과 선』이 출간된 시점을 기준으로 『점과 선』 이전의 미스터리와 『점과 선』 이후의 미스터리로 구분하게 되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세이초 자신이 반영된 작풍이 고도 성장기에 찾아온 관광 열풍을 자극하기도 했는데 『점과 선』의 후쿠오카의 가시 해안, 『제로의 초점』의 이시카와 노토콘고, 『모래 그릇』의 가메다케 등 세이초의 화제작들은 새로운 관광지까지 만들어 냈다.
“역사와 사회의 어둠을 좇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논픽션에도 도전을 했다. 작품은 “시대의 반영이나 사상의 빛을 받아 변모”한다는 그의 신념에 비추어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마쓰모토 세이초 최대의 문제작 『일본의 검은 안개』이다. 세이초는 패전 후 미국에 의한 점령 통치하에 일어난 열두 가지 사건의 비밀을 정면으로 부딪쳐,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어두운 부분을 파헤치고자 했다. ‘로맨틱한 추리’라는 비평도 있었으나 ‘일련의 괴사건 속에 미국 정령군의 정책 변동이나 모략을 끌어 들이 것은 획기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높은 평가도 동시에 얻은 『일본의 검은 안개』는 발표 즉시 ‘검은 안개’란 말은 유행어를 만들었다. 이 작품으로 세이초는 1963년 제5회 일본 저널리스트 회의상을 받는다.
질적으로 높은 작품을 병행해서 대량으로 쓰는 세이초를 보고 어떤 이는 ‘세이초 공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