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네.”
카프카의 작품들은 자신의 지론처럼 난해하면서도 매력적이다. 꿈속같이 낯선 이야기들을 사실적인 문체로 전달하는 그의 텍스트를 두고 아도르노는 “모든 문장이 나를 해석해 보라고 하지만 어떤 문장도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평했다. 이 책에는 카프카의 이런 문학 세계를 잘 보여 줄 수 있는 네 개의 단편을 골라 실었다.
<선고>
카프카 문학의 역정에서 ‘돌파구’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글쓰기 방식이나 주제는 그의 후기 작품들의 원형이 되고 있다. 카프카는 이 작품을 통해 구체성과 구상성을 획득한 자신만의 글쓰기 방식을 확립했다. 새로운 세대에게 성숙한 시민사회로의 진입을 요구하는 당시 유럽 사회에 대한 비판이 작품 속 부자 갈등을 통해 암시되고 있다.
<시골 의사>
카프카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애독되는 단편이다. 시골의 한 의사가 다른 마을의 위급 환자에게 왕진을 다녀오는 짧은 이야기다. 그러나 평범한 사건에 불과한 의사의 왕진 경험이 독자들에게 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다가온다. 작가의 혼란한 의식 상태가 반영된 이 난해한 텍스트는 논리적 접근을 거부하는 대신 다양한 해석의 시도를 가능케 한다.
<학술원에서 보내는 보고서>
원숭이 빨간 피터가 학술원 회원들에게 지난 5년간 원숭이의 본성을 버리고 인간화의 길을 걸어 온 과정을 보고하는 형식의 글이다. 빨간 피터는 언어를 습득하고 유럽인의 평균 교양 수준에 도달해 학문적인 토론에 끼어들었다. 인간화 과정에 대해 보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한 빨간 피터는 그러나 완전히 원숭이 상태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완전한 인간도, 완전한 원숭이도 아닌 상태다. 인간화의 과정이 자유로 가는 출구가 아니라 강요된 적응이었다는 원숭이의 고백은 학습과 모방을 통해 문명에 적응해 온 인간의 고백을 대신한다.
<단식 광대>
단식법으로 한때 관중의 주목을 끌었지만 결국 대중에게 외면당하고 쓸쓸히 죽어 가는 광대에 대한 이야기다. 단식 광대는 예술가에 대한 상징이다. 예술은 힘겨운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놀라운 성취지만, 예술가에게 예술은 자신의 내적 본질과 일치하고자 하는 욕구이자 충동이다. 마찬가지로 단식 광대에게 단식은 가장 쉬운 일이자 예술가적 삶에 대한 자기 확인인 것이다. 관중에게 거부당하고 쓸쓸히 죽음을 맞는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예술가와 대중 사이의 소통 부재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