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도시, 베를린

이계수 · 社会科学
2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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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 베를린. 베를린은 끊임없이 변하는 도시다. 나무로 지어진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클럽에서는 테크노 음악이 들린다. 베를린이 가진 반란의 에너지는 도시의 매력을 지켜 왔다. 베를린의 도시민은 모두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였다. 도시는 상품이 아닌 작품이고, 작품은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베를린에는 4년마다 짐을 싸 이동해야 하는 ‘전세 난민’이 없다. 사람들은 법과 정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도시를 지켜 냈다. 착취 도시 서울이 반란의 도시 베를린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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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訳者

目次

프롤로그 ; 도시의 보석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일 · 7 1 _ 베를린의 도시-법-사회사 · 23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 격변의 베를린 주택 사정 독일에 복덕방이 적은 이유 2 _ 사고 싶은 도시가 아닌 살고 싶은 도시 · 53 유혹하는 도시, 베를린 도시의 매력, 저주인가 축복인가? 탈상품화와 공물로서의 도시 도시 정치의 목표가 된 젠트리피케이션 3 _ 도시는 작품이다 · 85 크로이츠베르크, 변방에서 중심으로 도시에 대한 권리, 중심성에 대한 권리 법제화, 문제 해결의 열쇠? 4 _ 베를린의 주택 점거 투쟁과 주택 사회화 운동 · 105 다채로운 무리, 주택을 점거하다 주택 점거는 불법인가? 모두의 도시를 위한 국민 표결 에필로그 ; 각자도생, 소유적 개인주의의 욕망을 넘어 · 149 주 · 163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 합법 바깥에도 도시가 숨 쉰다 · 205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착취 도시 서울에서 반란의 도시 베를린을 보다. 베를린은 어떻게 상품이 아닌 작품이 됐나? 모두를 위한 도시를 꿈꾼 베를린의 투쟁을 담다. ■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 베를린의 매력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다. 테크노 음악과 자유로운 그라피티, 난민과 이민자들을 품어온 역사가 베를린을 섹시하게 만들었다. 베를린에는 도시 정치의 역사가 묻어 있다. 걸림돌 ‘슈톨퍼슈타인’은 베를린의 정치를 그대로 드러낸다. 슈톨퍼슈타인은 나치스 정권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을 기리는 보도 위 기림 돌이다. 이 기림 돌은 베를린에 가장 많다. 그런 의미에서 베를린은 “유대인에게 여전히 상처의 도시이지만, 기억하기를 통해 그 상처를 치유해 가는 도시이기도 하다.” 베를린은 어린이가 안전하게 모험할 수 있는 놀이터가 가득한 공간, 그라피티와 테크노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작품으로서의 도시, 공물로서의 도시를 지키고자 노력한 도시이기도 하다. 《반란의 도시, 베를린》은 베를린의 사례를 통해 도시의 매력을 지키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 베를린을 걷다가 만난 것 《반란의 도시, 베를린》의 저자 이계수는 도시법 연구자다. 그는 “안전한 도시, 난민과 이민자도 살 수 있는 도시, 혐오가 아닌 이해와 격려가 승리하는 도시, 사고 싶은 도시가 아닌 살고 싶은 도시”를 탐구한다. 그런 그가 1년간 베를린을 걸었다. 빛을 보기 위해서다. “멀리서 보면 바다 위의 낙조는 붉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가보면 실상 그것은 상어 떼가 만들어 낸 핏빛 바닷물임을 깨닫게 된다. 문자로서의 법과 현실로서의 법이 일치할 수는 없기에 도시법 연구자로서 나는 늘 현실 속의 법을 읽고 싶었다.”(11쪽) 이계수는 빛을 보러 다녔지만, 베를린에는 어둠과 비명, 혐오와 적대도 있었다. 라이프치히대학교의 연구 결과는 독일의 외국인에 대한 적대적 태도가 점차 심화하고 있음을 보인다. 36퍼센트의 독일인은 외국인이 독일의 복지 시스템에 편승한다고 판단한다. 절반의 독일인은 이슬람계 이주민 때문에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진다고 답했다. 그러나 지금의 베를린을 만든 에너지와 힘은 다문화와 연대, 모임과 대화에서 시작됐다. “베를린을 특징짓는 열쇠 말은 다양성이다. 다양성은 베를린만이 아니라 대도시라면 대체로 갖추고 있는 특징이지만 이것은 더욱더 각별하게 베를린의 역사에 새겨져 있다. (…) 베를린을 강하게 만든 건 바로 이러한 다문화와 사회적 연대였다. 물론 베를린 사람들이 처음부터 유대인, 외국인 노동자, 난민을 평등하게 대하진 않았다. 특히 유대인에 대한 차별은 이곳에서도 뿌리 깊었다. 그 흔적은 베를린의 전역에서 여전히 확인할 수 있다.” (14~15쪽) 젠트리피케이션과 안정적인 주거권의 박탈은 베를린에서도 일상이 됐다. 그리고 도시는 점차 자본의 것으로, 누군가를 위한 상품으로 변모해 갔다. 베를린을 걷던 법학자가 제기하는 질문은 도시를 연구하는 자가 직시해야 하는 현실은 무엇인지로 닿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르셀로나 성가족성당의 주인은 과연 성(聖) 가족일까, 아니면 자본 가족일까? 섹스 숍이 즐비한 함부르크 상파울리의 레퍼반(Reeperbahn)이 소돔과 고모라일까 아니면 그곳을 밀어 버리고 완전히 자본주의적으로 ‘재개발’ — 관료와 개발업자들은 이를 지역 사회의 재활성화(neighborhood revitalization) 혹은 도시 재생이라고 그럴듯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 한 새로운 도시 공간이 소돔과 고모라일까?” (11쪽) ■ 도시는 상품이 아닌 공물이다! 《반란의 도시, 베를린》은 묻는다. “도시의 매력, 저주인가 축복인가?” 도시의 정치와 도시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관광객을 우후죽순 부르는 도시의 탁월함은 축복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진단이다. 사람들이 “살고 싶은 도시는 순식간에 자본이 사고 싶은 도시로 변해 버린다.” “양극화 사회는 지니 계수, 빈곤율, 실업률, 비정규직 비율과 같은 추상적인 지표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현실에서 양극화를 포함한 모든 사회 현상은 공간 안에서 일어나고, 공간 속에서 표현될 수밖에 없다.” (63쪽) 젠트리피케이션과 자본의 공격적인 침투로 인해 도시는 변해 가고 있다. 누군가는 ‘도시도 상품이니 당연한 순서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반란의 도시, 베를린》은 이렇게 외친다. “도시는 공물이다!” 도시는 땅과 물, 공기와 하늘처럼 누구나 점유하고 누릴 수 있고, 또 가꿔 나갈 수 있는 대상이다. “도시에 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고 가꿔 온 도시공원, 자유로운 그라피티가 넘쳐나는 거리, 누구에게나 열린 광장도 공물이지만, 그것의 집합체인 도시 그 자체도 하나의 공물이다.” 《반란의 도시, 베를린》이 공물로서의 도시를 주장하기 위해 택한 방법론은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가 주창한 ‘도시에 대한 권리’ 담론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도시에 대한 권리를 말하며 도시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도시가 작품인 만큼, “도시와 그것의 제작에 참여할 권리, 소유에 대한 권리와 확실하게 구분되는 전유의 권리” 모두 도시민에게 주어진다. “르페브르는 도시란 단순한 물질적 생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 작품에 비견되는 것이라 본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만든 예술가는 누구인가? 그것은 역사다. 도시는 역사의 작품이다. 이 말은 곧 역사적 조건 아래 이 작품을 생산한 특정한 인간과 집단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들에게는 이 작품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 (92쪽) 도시를 향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반란의 도시, 베를린》은 그를 ‘중심성에 대한 권리’라 표현한다. 이때 중심은 “결정의 중심, (사회의) 부의 중심, 권력의 중심, 정보의 중심”을 의미“한다. 즉, 도시에 사는 모두가 도시와 관련한 결정에서 배제돼서는 안 되며, 사회의 부인 도시를 빠짐없이 즐기고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중심성에 대한 권리에서 핵심은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도시 중심에 구체적인 몸을 갖고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도시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정치적, 전략적 토론에 접속하는 것, 도시 정치의 모든 수준에서 발생하는 충돌과 대결, 논쟁에 참여하는 것이다. 중심을 공간의 문제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중심성에 대한 권리에서는 서로 다른 사회 집단 간의 만남, 그들의 커뮤니케이션 및 정보와 관점의 교환, 그리고 이 ‘공간’을 완전하고 전면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허용하는 ‘시간’의 사용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93쪽) ■ 반란의 도시 베를린이, 착취 도시 서울에게 자본은 도시를 상품으로 만들고자 한다.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도시에 거했던 원주민들을 쫓아내야 한다. 베를린에서는 그것이 대형 민간 주택 임대 회사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2000년대 말, 금융 위기 이후 베를린의 공공 임대 주택은 매각됐고, 민간 임대 주택이 자가 주택으로 전환되는 일이 빈번했다. 임대 주체가 공공에서 민간으로 넘어가니, 임대료도 크게 올랐다. 특히 베를린 지역의 임대로 상승 폭이 컸다. “2004년에서 2014년 사이 주요 도시의 임대료 상승률은 베를린이 45퍼센트, 뮌헨이 27퍼센트”였다. 이 이전에도 임대료가 급격히 상승했던 적이 있었다. 1960년대다. 이 시기 독일에서는 토지 투기가 활발했다. 1960년 6월, 당시 집권당이었던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이 ‘주택 통제 경제의 폐지와 사회적 임차법・주택법에 관한 법률’을 지정했다. 해당 법률은 주택 임차료를 자유화하며 주택 임차인을 쉽게 내쫓을 수 있도록 했다. “일명 뤼케법이라고 불린 이 법률의 부정적 효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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