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비평가는 영화가 자신의 규정에 들어맞기를 요구할 수는 없다. 비평가의 역할은 영화에 잘 어울리는 기술description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1972년에 처음 발간된 영화비평의 ‘고전’ V.F. 퍼킨스(1936~2016), 1962년 이안 카메론과 공동으로 영화비평지 《무비》를 창간한 이후 2016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위대한 앰버슨 가〉, 〈게임의 규칙〉에 대한 기념비적 작품론을 위시한 왕성한 비평 활동과 함께 대학에서의 영화교육에도 힘을 쏟았던 그를 영국의 가장 위대한 평론가라 불러도 과언은 아닐 터이다. 퍼킨스는 《무비》의 창간호에서 「영국영화」라는 제목의 권두언을 통해 당시 영국영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들 영화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주제’가 아니라 ‘연출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이라고 천명했다. 주제가 아니라 연출-스타일의 분석에 대한 강한 의지는 퍼킨스 비평의 핵을 이루는데, 이러한 의지를 전면적으로 표출하고 정교하게 구성한 작업이 그의 유일한 단행본 저작인 『영화로서의 영화』(1972)다. 조너선 로젠봄이 “영화이론의 다락방에서 거미줄을 치고 오래된 교과서를 내어놓는”다고 비유했듯, 『영화로서의 영화』는 선구자들의 이론을 이미지의 도그마—현실을 재생산하는 카메라의 객관적 재현은 예술이 될 수 없다는 입장—와 대상의 도그마—이미지의 도그마를 뒤집어 카메라의 객관성에서 가능성을 찾는 입장; 대표적으로 앙드레 바쟁,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로 양분하고 이 둘 모두를 비판한다. 그리하여 몽타주의 이미지성과 카메라의 객관성 중 어느 하나를 본질로 하지 않는 종합synthesis이야말로 영화라는 매체의 불순함에 어울리는 태도라고 설명한다. 어떻게 영화를 ‘평가할’ 것인가 그런데 『영화로서의 영화』는 영화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떤 영화나 동등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로서의 영화』는 ‘종합’이 어떻게 ‘균형’과 ‘일관성’ 속에서 달성되고 있는지를 바탕으로 영화의 가치를 준별한다. 이를테면 빈센트 미넬리가 감독한 〈에디 아버지의 구혼〉(1963)에는 얼마 전 어머니를 잃은 어린 에디가 아버지와 함께 점심을 준비하는 장면이 있다. 퍼킨스는 이 부엌 장면에서 에디가 높은 의자에 걸터앉아 컵과 접시를 찬장에서 꺼내는 행위에 주목하며 이렇게 쓴다. “예를 들어, 〈에디 아버지의 구혼〉에 나오는 부엌 장면은 다른 무엇보다도, 부엌에 있는 식기들의 연약함과 삐걱거리는 높은 의자의 불안한 모습 및 올바른 부모의 역할과 그 중요성에 대한 미국인의 태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주어진 의미들은 부엌 장면이 전달하는 의미에 있어 본질적이다. 그러나 그 의미들은 구성요소들로 작용할 뿐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이럴 때 문제는 영화가 각 구성요소들이 의미심장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뛰어난 배치능력을 발휘하느냐는 것이다. 결국 영화의 내용을 형성하는 것은 구성요소 간의 상호관계이다.”(169) ‘감정 교육’으로서의 영화 『영화로서의 영화』는 그 밖에도 기술과 형식의 관계, 관객성, 작가의 문제 등 영화비평의 주요한 문제들을 논의해 나간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강력한 의의는 돌출되지 않아 흔히 놓치기 쉽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의 지성과 정서에 상당한 영향을 행사하는, 장면에 존재하는 미묘함과 복합성을 비평의 대상으로 끌어올려 “그것을 정밀하고 세심하게 읽도록” 독자를 유도한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로서의 영화』는,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이론이나 정보를 늘린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개별 영화의 감상 및 평가에 있어 그것을 도덕적이고 감정적인 경험으로서 더 명확하게 사고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가장 교육적인’ 영화비평의 서 書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