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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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만약이라는 전제는 무의미하다지만, 실제로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우리는 ‘만약 그때 이랬더라면...’하는 가정의 세계에 곧잘 빠져들곤 한다. 만약 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승리했더라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소련의 미사일 기지에 대한 선제공격을 명령했더라면?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는 70여 년에 걸친 북한과 미국 간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동안 두 나라 간의 관계에는 켜켜이 쌓인 갈등의 더께만큼이나 수많은 ‘만약’의 여지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주재우의 지략지계] 북미 관계, 그 숙명의 역사』는 북한과 미국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과거부터 현재까지 전체적으로 훑는 통사(通史)적 접근 방식의 역사서는 아니다. 그보다는 오늘날 한반도에 살아가는 우리가 처한 냉정하고도 엄혹한 현실, 즉 북한의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대한 고민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북한의 핵 개발 능력이 지난 30여 년 동안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진화를 거듭해오는 동안 그런 위험천만한 카드를 꺼내 든 북한과 그를 막으려는 미국 사이에는 어떠한 수 싸움이 펼쳐져 왔는가? 두 나라는 그때그때의 시대적 상황과 상대의 반응에 따라 어떻게 협상의 의제와 우선순위, 전략을 변화시켜왔는가? 바로 이런 부분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 이 책은 북미 관계의 중요한 변곡점을 중심으로 두 나라가 도전과 응전을 주고받아온 역사에 주목하기로 한 것이다. 책의 저자는 우선 한국 전쟁 이래로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일관되게 원해 왔다고 말한다. 줄기찬 구애의 이유는 단 하나, 대화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정권과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대화를 요청할 때마다 줄곧 남북 대화를 선제 조건으로 내세우며 사실상 무관심으로 냉대해왔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북한의 핵 개발이라는 변수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독자들은 서두에서 언급된 ‘만약’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1장에서 거론된) 1992년 1월 뉴욕에서의 첫 번째 북미 간 고위급 회담에서 미국 측이 제시한 7가지 조건을 북한이 받아들이고, 그 대가로 미국이 북한과의 수교에 합의했더라면 이후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누구도 장담은 못하겠지만, 어쩌면 그 뒤로 행해진 북한의 여섯 차례 핵 실험과 수십여 차례의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는 없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다시 현실로 돌아와, 북한의 핵 개발을 기점으로 북미 협상의 핵심 의제는 북미 관계의 정상화 여부에서 북한 핵 문제의 해결로 질적인 변화를 일으켰다고 저자는 말한다. 과거에는 북미 수교를 통한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과 한반도 평화를 맞교환하는 문제가 두 나라 사이의 닫힌 관계를 푸는 열쇠였다면, 이제는 북한의 핵무기와 대량 살상 무기(WMD)로부터 한반도뿐만 아니라 미국의 안전까지 지켜야 하는 과제가 양국 간 대화 테이블에 핵심 의제로 올라오게 된 것이다. 그러자 과거에는 북한의 대화 제의에 심드렁하던 미국도 바짝 자세를 고쳐 앉기 시작했다. 특히 핵탄두를 탑재한 채 미국의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는 북한의 대륙 간 탄도 미사일(ICBM) 시험 발사 성공은 북미 관계에 있어 또 하나의 게임 체인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불법 무기가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나 테러 집단의 수중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는 WMD 비확산,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 사건을 계기로 미국 내에서 크게 확산된 북한 인권 개선 요구, 핵 사찰과 검증의 수용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서의 북한의 개혁 개방도 북한 비핵화와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북미 두 나라가 풀어야 할 핵심 관심사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한편 저자는 때로 우리의 시각으로 보기에 미국이 핵을 포함한 북한 문제 해결에 열과 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고 전제한 후, 그 이유로 “미국이 북한의 붕괴를 맹신하는 수준의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라고 주장한다. 이 대목에서, “내부로부터의 붕괴인가 외부로부터의 붕괴인가”가 문제일 뿐 북한이 언젠가는 무너질 거라는 미국의 확신이 역설적으로 2002년 2차 북핵 위기 때까지 한반도 평화의 핵심 기반이 된 1994년 10월의 『제네바 합의』를 가능케 한 동인이었다는 저자의 해석은 상당히 흥미롭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종결할 때까지 붕괴만큼은 피할 수 있도록 미국이 시간을 버는 전략으로 선회하면서 북미 협상과 합의서 체결이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저자는 북한 비핵화 문제가 단순히 핵무기의 개발 억제와 폐기,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로서의 북미 수교와 평화 협정의 체결이라는 차원에서 해결되는 이차 방정식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북한의 WMD와 인권, 개혁 개방, ICBM, 미국 내부의 북한 붕괴론 및 대북 선제타격론, 국제 사회의 제재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고차 방정식임을 하나하나 설명해 나간다. 그런 다음 책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70여 년에 이르는 북미 관계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였던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의 북미 정상 간 회담이 성사될 수 있었던 배경과, 동시에 그런 드라마 같은 만남이 아무런 가시적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이유를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중국 전문가로서의 저자의 지식과 통찰력을 활용해 북미 관계의 핵심적인 매개 변수라 할 수 있는 북한과 중국 간의 관계와 중국의 속내를 간략히 들여다봄으로써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체제의 구축이라는 과제를 해결하는 청사진은 결국 우리 스스로가 제시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으며 드는 의문 하나, ‘만약’ 2019년 2월 하노이 2차 정상 회담에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스몰딜이든 빅딜이든 간에 큰 틀에서의 합의를 이끌어냈더라면 2022년 한반도의 평화 지형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사실 그 답은 어쩌면 저자가 맺음말의 부제로 삼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 있는 지도 모른다. 북한 비핵화를 비롯한 숱한 난제들과 관련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한 매듭처럼 엉켜 있는 한반도의 현실을 단박에 안정적으로 바꿔놓을 기적의 묘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역사를 제대로 분석하고 주변국들의 속내를 통찰함으로써 우리 스스로의 전략적 사고의 곳간을 채워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이 의도하는 목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