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친구와 먹는 마라탕 한 그릇처럼
이 책은 나에게 실질적이고 분명한 힘을 준다.”
_양다솔, 작가·《적당한 실례》 저자 추천
《기후위기인간》 구희 작가 신작
각자도생의 사회로 나서는 대신
집에서 어리광 부리고 싶은 어른의 독립 분투기
기후위기 시대의 고민을 풀어내며 많은 공감을 받아온 구희 작가의 두 번째 그림 에세이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가 출간됐다. 이 책은 30대 캥거루족인 저자가 가족과 한집에서 살아가는 일상 속 고민을 녹여낸, 집밥 멸종 시대의 독립 분투기다.
나는 캥거루족이다. 서른이 넘었고 직업이 있지만 부모님과 함께 산다. 글쎄, 서울에서 독립하면 잃을 것이 너무 많아 보인다. 나는 과연 독립된 개체가 될 수 있을까? 인류 역사상 가장 발전한 시대지만 바깥 세상의 모습은 아직도 ‘헬’이라 자립하기 두렵다. _11~12쪽
치솟는 물가와 집값, 경쟁과 차별이 만연한 각자도생의 사회, 끊임없는 사건·사고와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위기까지…,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말이 점점 크게 와닿는다. 그런 저자에게 집은 변함없이 안전하고 즐거운 “네버랜드”와 같다. 동화 속 이야기처럼 영원히 늙지 않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느새 주름과 흰머리가 늘어난 엄마 아빠, 30대에 접어든 나이, 결혼하거나 독립하는 등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주변 친구들을 떠올리며 저자의 마음속에 ‘계속 이렇게 집에 얹혀 살아도 괜찮을까?’ 하는 불안과 조바심이 엄습한다.
이 책은 저자가 집을 떠나 홀로 설 수 없을 것 같았던 막연한 두려움을 걷어내고, 조금씩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서 세상을 마주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독립된 삶은 어떤 삶일까?’ ‘내 인생에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며, 점차 구겨진 마음의 돛을 활짝 펴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채비를 한다. 스스로를 책임지는 어른으로 살아가는 게 어렵고 고민스러운 모든 독자들에게 네버랜드를 떠나 자신만의 섬을 찾을 수 있는 용기를 잔뜩 불어넣는다.
‘독립은 꼭 해야 하는가?’ ‘결혼과 출산은 필수적인가?’ 이 질문들에 명확한 해답은 없지만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자립이 필수적인 듯합니다. (중략) 이번 만화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또한 저의 얼기설기한 조각보입니다. 이 꼬깃꼬깃한 고민의 조각들이 독자님께 도움이 되었기를, 그리고 독자님들도 저마다의 개성으로 아름다운 조각보를 이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그 조각보가 돛이 되어 우리를 더 나은 미래에 데려다줄지도 모르니까요! _에필로그 중에서
“독립·결혼·출산… 삶의 미션은 왜 이렇게 많을까?”
30대 캥거루족의 인생 숨 고르기
이 책의 1부와 2부는 유쾌하고 발랄한 엄마와 묵묵히 성실한 아빠, ‘영원한 막내’ 동생과 반려견 코난이 함께 투닥투닥 살아가는 일상 에피소드와 저자가 30대 미혼 여성으로서 마주한 결혼·출산이라는 현실적인 주제를 다룬다. “얼른 결혼해서 나가”라는 은근한 엄마의 잔소리, 사회적 압박과 미묘한 초조함을 안고 결혼과 출산은 꼭 해야 하는 것인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집을 나가 독립 라이프를 꾸리게 되었는지 둘러보며 본격적으로 이 질문들을 탐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나를 포기하기 싫은”(116쪽) 마음을 발견하며, 사회가 제시하는 암묵적인 ‘통과의례’를 둘러싼 세세한 감정들을 들여다보게 된다.
3부는 저자가 점차 자신만의 집을 꿈꾸는 이야기로 뻗어나간다. 저자는 독립의 의미를 그만의 맥락에서 정의하며, ‘독립적인 삶’은 꼭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독립하거나 본가로부터 물리적으로 분리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고 느낄 때, 비거니즘을 더 잘 실천하기 위해 밥상만이라도 독립해보고 싶을 때, 예쁜 그릇을 발견할 때마다 내 취향과 가치관대로 인생을 가꾸고 싶은 마음이 움튼다. 결국 ‘내게 중요한, 내게 좋은 선택을 내리고 싶다’는 작은 바람들이 나를 일으켜 조금씩 원하는 삶으로 데려다준다.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전까지 나의 모든 것은 부모님의 선택지 속 선택이었다.
근데 점점 나만의 것을 꿈꾸기 시작한다”
가족과 나 사이의 길을 찾아 폴짝!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안락한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때때로 답답한 벽처럼 다가온다. 부모님의 ‘사랑의 잔소리’는 가만 듣다 보면 비수처럼 날아와, 정말 날 사랑해서 하는 말인지 짜증스러운 의심이 인다. 가족은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늘 신경 쓰인다. 특히 프리랜서인 저자에게 집은 생활 공간이자 일터이기도 한데, 각자 생활 패턴과 취향이 확인히 달라진 성인 네 명이 한집에서 살며 느끼는 다면적인 감정과 가족간의 가까운 거리감이 되려 불편하게 느껴지는 순간들까지 솔직하고 유쾌하게 책에 담겼다. 더불어 살아가는 기쁨과 갑갑함, 그리고 독립에 대한 갈망이 모두 담겨 가족과 함께 사는 독자는 물론, 오랜만에 본가에 갈 때마다 작은 부대낌을 느끼는 독자에 공감의 웃음을 자아낸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작가 양다솔의 말처럼, “구희 작가는 독립을 꿈꾸며 우리가 결코 혼자 살 수 없음을 자꾸만 깨닫는다”.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노력들의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엄마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젊어서부터 자연스레 살림 노동을 도맡고 임신·출산 과정을 거친 앞선 시대의 여성들을 떠올리며 단정한 존경심을 건넨다. 자식을 돌보고 살리는 귀한 마음 덕에 개인의 삶과 사회가 굴러가고 있다는 거대한 연결성을 인식한다.
결국 단절의 형태로서 독립을 말하기보다 더 깊은 연결을 위한 독립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서툴지만 진지한 고민이 담긴 독립 분투기는 가족과 나 사이의 길을 찾는 여정과 같다. 이 책을 집어든 독자 역시 소중한 이들로부터 받은 사랑과 보살핌을 두른 채, 하루하루 더 충만하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삶은 원래, 흔들리며 나아가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