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버틀러,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

주디스 버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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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부터 2012년까지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포함해 버틀러가 세계 곳곳에서 강연하거나 발표한 글들을 발전시켜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영향력 있는 정치 이론가이자 철학자로 평가되는 주디스 버틀러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오늘날의 국제적 민족 분쟁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유대계 미국인인 버틀러는 반유대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시온주의를 비판하고 현대 이스라엘의 국가폭력에 저항할 길이 있음을 입증한다. 유대인 지식인인 에마뉘엘 레비나스.발터 벤야민.한나 아렌트.프리모 레비의 글을, 팔레스타인 지식인인 에드워드 사이드.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사유로 걸러내어 변증법적 대안을 제시한다. 버틀러가 한나 아렌트에게서 끌어온 동거(cohabitation) 개념, 곧 지상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적대와 갈등을 동반한다. 그렇게 서로 부딪히면서, 슬퍼하면서, 함께 살아가기란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불가능한 목표를 아무도 사유하지 않는 세계는 끔찍하기에, 곧 우리가 추구해야 할 임무라고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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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次

감사의 말 축약어 서문 자기탈피, 추방, 그리고 시온주의 비판 1장 불가능한, 필요한 과제 -사이드와 레비나스, 그리고 윤리적 요구 부버에서 아렌트로_뒤섞인 유산 | 레비나스 | 누가 얼굴을 가지는가? | 민족들 2장 죽일 수 없는 -레비나스 대 레비나스 얼굴이 명령하는 것 | 어디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을까? 3장 발터 벤야민과 폭력 비판 다른 유대주의 | 폭력, 운명, 법 | 살아 있는 것의 이름으로 | 폭풍 4장 섬광 -벤야민의 메시아 정치 5장 유대주의는 시온주의인가? -아렌트와 민족국가 비판 한나 아렌트와 민족국가의 종식? 6장 복수(複數)의 곤궁 -아렌트의 동거(同居)와 주권성 아이히만에 반대해서_아렌트의 목소리와 복수성의 도전 | 복수형 ‘우리’ | 복수형 동거 7장 프리모 레비와 현재 8장 “추방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까?” -사이드와 다르위시, 미래에 말을 걸다 옮긴이의 말 미주 찾아보기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이 책은 깊은 윤리적 욕구, 복합적인 정치적 감수성, 엄격한 철학적 사고의 산물이자, 비범한 용기와 개인적인 절박함의 소산이다.” _아킬 빌그라미(컬럼비아대학교 철학 교수) 지상에서 함께 살아갈 사람을 고를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젠더 트러블》의 저자,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이론가이자 철학자로 평가되는 주디스 버틀러가 철학적 사유를 통해 오늘날의 국제적 민족 분쟁에 정면으로 도전한 책을 냈다. 유대계 미국인인 버틀러는 이 책에서 반유대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시온주의를 비판하고 현대 이스라엘의 국가폭력에 저항할 길이 있음을 입증한다. 그녀는 유대인 지식인인 에마뉘엘 레비나스.발터 벤야민.한나 아렌트.프리모 레비의 글을, 팔레스타인 지식인인 에드워드 사이드.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사유로 걸러내어 변증법적 대안을 제시한다. 버틀러가 한나 아렌트에게서 끌어온 동거(cohabitation: 함께 거주함) 개념, 곧 지상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적대와 갈등을 동반한다. 그렇게 서로 부딪히면서, 슬퍼하면서, 함께 살아가기란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불가능한 목표를 아무도 사유하지 않는 세계는 끔찍하기에, 곧 우리가 추구해야 할 임무라고 그녀는 호소한다. 유대인으로서 이스라엘을 비판한다는 것 이 책은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포함해 버틀러가 세계 곳곳에서 강연하거나 발표한 글들을 발전시켜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곧 이 책은 시간을 거치고 세계를 횡단하며 거듭 재구축된 사유의 묶음이다. 미국에서 “당신은 시온주의자인가요?”라는 질문은 대체로 “이스라엘이 존재할 권리를 믿나요?”란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존재할 권리를 믿는다는 말은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정초 이념(‘이스라엘은 유대인 주권 국가다’)과 정책(자기방어라는 명목으로 팔레스타인인을 추방.분리.봉쇄.폭격하는)을 지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유대교 회당에 다니는 사람은 다 시온주의자라고 믿는 사람이 많은가 하면, 이스라엘의 국가 정책을 지지할 수 없으므로 자신의 유대성을 부인하는 유대인들도 있다. 에서 버틀러는 유대성을 부정하지 않고 시온주의를 비판할 수 있고, 유대 전통 안에서 현대 이스라엘 국가를 비판할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근거를 찾는 데서 그친다면 유대의 전통 안에 모든 해답이 있다는 배타적 윤리 프레임에 빠져버릴 위험이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번역’에서 출구를 찾는다. 이 책의 2~7장은 레비나스, 벤야민, 아렌트, 레비에게서 찾아낸, 현대 이스라엘 국가를 비판할 유대적 출처를 버틀러가 그 유대성의 울타리 너머로 ‘번역’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유대적 출처에서 ‘파생된’ 개념이라 해도 더 널리 소통 가능해지고 공동체주의communitarian 프레임(종교적이거나 민족적인) 바깥에서도 타당성을 갖추려면 그 개념은 번역되어야 한다. …… 이는 전통이 스스로에게서 거듭 반복해서 벗어남을 통해 스스로를 확립하며, 출처는 우선 번역과 전이가능성의 장으로 들어가야만 윤리적 목적에 ‘쓸모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어떤 출처가 현재 안에서 벼려지거나 빛을 발하려면 어떤 시간적 궤도를 거쳐야 한다. (…중략…) 과거의 윤리적 출처는 오직 ‘토대를 양도할’ 때에만, 사회적 유대나 지리적 공간 자체를 재배치하는 것이기도 한 문화적 번역 과정의 일부로서, 윤리적 요청들을 수렴하고 겨루는 가운데 다른 어딘가에서 새롭게 번성할 수 있다는 의미다. (25~26쪽) 함께 거주하는 민족들, 이二민족주의 혹은 이異민족주의 동맹을 위하여 <1장 불가능한, 필요한 과제―사이드와 레비나스, 그리고 윤리적 요구>에서 버틀러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기 저작 중 하나인 《프로이트와 비유럽인》을 읽은 것은 내게 놀라운 경험이자 선물이었다”(61쪽)고 고백한다. 야훼 하느님이 택한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의 시초에는 모세가 있다. 그런데 사이드는 유대성의 시초가 되는 모세가 실은 이집트인이었다는 사실을 짚는다. 그리고 집에서 쫓겨나 사막에서 방랑하는 삶, 곧 디아스포라가 유대인 삶의 특성임을 환기한다. 이에 버틀러는 유대인이란 비유대인과 상관없이 정의할 수 없는 범주라고 주장한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법에 대한 물음이 따라다닌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은 ‘추방’이라는 실존적 특성을 공유한다. 버틀러는 권리와 땅을 박탈당했던 유대 민족의 경험을 기억하고, 이스라엘에 의해 추방당한 이들과 연합할 것을 역설한다. <2장 죽일 수 없는―레비나스 대 레비나스>에서는 리투아니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독일 철학을 공부하고, 프랑스에서 활동한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1905~1995)가 말한 타자의 윤리, 책임 윤리를 주로 다룬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타자는 내게 무슨 일을 했건 여전히 내게 윤리적 요구를 하는 사람이고, 내가 반응해야 할 ‘얼굴’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결코 선택하지 않은 사람에게 반응해야 하고, 나를 죽일지 모를 사람 앞에서도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는 무조건적인 명령을 내린다. 내가 타자에 대해 짊어지는 무제한적인 책임은, 계명에 따른 두려움과 나의 실존을 위해 타자를 죽이고 싶은 마음 사이에 벌어지는 지속적인 투쟁의 결과다. 그런데 레비나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얼굴이 없다고 주장했다. 버틀러는 레비나스가 윤리적 반응의 진원이라 할 수 있는 ‘얼굴’을 특정한 민족에게만 배제한 것을 비판하며, 우리에게 인종주의자 레비나스를 책임지면서 윤리학자 레비나스에게 반응할 것을 설득한다. <3장 발터 벤야민과 폭력 비판>과 <4장 섬광―벤야민의 메시아 정치>에서는 20세기 전반 독일의 가장 중요한 문학비평가이자 사상가로 꼽히는 발터 벤야민(1892~1940)의 전기前期 논고 <폭력 비판>(1921)과 그의 생애 마지막 논고인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1940)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벤야민은 국가란 법적 폭력으로서 출현하고 유지되며, 승자들이 목적론적으로 구성한 역사(승자의 진보로 구성된 역사)는 피억압자들의 역사를 삭제해왔기에, 법적 폭력을 통해 진보하는 역사와 단절할 것, 지금 여기에서 피억압자들(단수가 아니라 복수다)의 역사를 구성할 것, 곧 진정한 비상사태의 도래를, 따라서 파시즘에 대항한 투쟁을 요청한다. 이에 버틀러는 구원이란 “귀환이 없는 추방, 목적론적인 역사의 파열, 수렴하면서 방해하는 일군의 시간성들로의 개방으로 재고되어야 한다”(233쪽)고 우리를 설득한다. 말하자면 구원은 특정한 정체성에 따라 국가를 세우고 이질적인 것을 몰아내 단수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유랑하면서 복수의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다. <5장 유대주의는 시온주의인가?-아렌트와 민족국가 비판>은 한나 아렌트(1906~1975)가 《전체주의의 기원》을 비롯한 저작에서 천착한 무국적자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아렌트는 민족국가의 성립 결과, 민족으로 인정되지 못한 이들의 강제 추방과 무국적자의 대량 양산이 필연적으로 생겨난다고 비판한다. 아렌트는 1930년대에 시온주의를 지지했지만, 1940년대에 이르러서는 유대 주권성에 정초한 이스라엘 건국보다 유대-아랍 연방 국가 방안을 더 선호하게 된다. 아렌트는 국가를 이룰 각 민족에 주권을 분배하는 것이 아닌, 공통의 정책과 법을 만들 복수성複數性의 연방을 구상하면서 주권의 복수성을 주창했다. 아렌트에게 복수성이란 이질적인 인간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 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선택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무선택적’ 특성이다. 우리는 우리가 결코 선택한 적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게 되어 있다. 저들도 결코 우리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6장 복수複數의 곤궁-아렌트의 동거同居와 주권성>에서는 수많은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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