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군가의 동생이 다정하게 발설하는
모든 상처의 세계, 어떤 성장의 지연
시인 서윤후가 선보이는 내밀하고 다정한 온도의 첫 시집
어느 시인의 모든 소년
가는 팔목은 흰 이마와 잘 맞아 떨어졌다. 엎드려 있는 나를 울고 있다고 여기던 사람들. 사실 몸을 숙이는 건 쉬운 일이었다.
-「소년성(小年性)」에서
2009년, 스무 살의 나이로 데뷔한 서윤후 시인이 등단 후 8년 만에 첫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을 출간했다. 시인이 시집의 주된 화자로 호출하는 ‘소년’은 가족 구성원 중 가장 깨끗한 백지상태에서 시작하여, ‘소년성’이 더렵혀지는 과정을 최후까지 남아 비교적 소상히 업데이트할 수 있는 ‘동생’으로서 위치한다. 동생은 아마도 1990년대생일 것이고, 그렇다면 이제 소년을 벗어나 청년이 되어야 할 시기일 것이다. 그러나 서윤후의 동생은 소년과 등치되어 성장을 지연시키고 서로의 성격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소년의 소심함과 동생의 다정함이 뒤섞여, 내밀하고 친밀하며 예민하고 예리한 시적 화자가 탄생했다. 엎드려 울고 있는 듯 몸을 숙인 동생 혹은 소년.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이자 ‘서윤후의 소년’이 등장한 것이다.
어느 가족의 어린 애어른
성당의 종소리가 울리면 커튼을 뒤집어쓰고 성호를 그었다 너는 나를 믿지? 동생은 대답했다 오빠도 색깔을 모르잖아 불 꺼진 벽난로 앞에서 그날 밤 한 개의 그림자를 나눠 덮고 잠이 들었다
-「퀘백」에서
소년은 눈 속의 곱처럼 가족에게 둘러싸여 눈치를 본다. 가족 안에서 동생은 형이 되고 엄마는 언니가 되며 누나는 아이가 되고 심지어 아빠는 유령이 된다. 불편하고 짠한 혼숙 아래 자란 아이는 애어른이 되어 눈치를 본다. 주변의 심사를 살피는 각각의 감각은 점점 커져 서로의 영역이 겹쳐지게 되고, 이윽고 ‘눈치의 공감각’으로 발전한다. 가족은 서로에게 기댈 곳이 되지만 그것의 부재 혹은 부재의 가능성은 시의 불안감을 키운다. 부재의 불안감 속에서 소년과 동생은 어른의 흉내를 내는 것이다. 애어른은 원래 아이라는 것을 들킬까 짐짓 큰소리를 치거나 아이라는 것을 알아봐 주길 기다린다. 둘 사이에서 서윤후의 소년은 “설명하지 못하고 굳어 가”거나 “질문이 많아 죄송”하다. 애어른은 거짓으로 자랐기에 성장을 지연시키고 지연된 성장 탓에 소년은 사랑을 받는 데에 있어서 어리숙하다.
어느 소년의 달콤한 상처
너는 왜 미래에서 오지 못하니
-「사우르스」에서
사랑을 받아야 할 소년에게 세계는 사랑 대신 상처를 주었다. 아이였을 때 ‘파리소년원’에 아이를 데리러 갈 것이라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애어른이었을 때 ‘희디흰’ 옷에 묻은 얼룩을 지워 주는 이 없었다. 서윤후는 애어른으로서의 동생이 갖는 상처를 애써 감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독한 약을 바르듯 감정의 진액을 짜 내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의 시에서 상처는 ‘달짝지근한 감각’에 다름 아니다. 서윤후의 시는 마카롱이나 사탕과 같은 달콤함으로 상처를 장난감 삼아 가슴에 품고, 미래의 이야기를 찾아 떠난다. ‘파리소년원’과 ‘농아원’ 따위에서 기다리던 미래는 결국 오지 않았다. ‘공룡 인형’처럼 상처는 아득한 과거에서 왔고, 우리는 과거의 상처를 바라보고 쓰다듬으며 다음의 이야기를 찾는 길에 올랐다. 너무나 놀랍도록 어른스럽고 생각보다 어린 우리들의 동생, 시인 서윤후는 첫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으로 그 훌륭한 시작을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