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에게 살아 있는 딜도조차 아니었다.”
사랑에 관해 은폐된 것들
불륜 혹은 금기의 앤솔러지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한국 문학계에 생기를 불어넣는 네 작가가 뭉쳤다. 탁월한 기획력으로 소설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시대의 문제를 조명해온 장강명, 장편소설 《여우의 계절》, 《인 더 백》, 소설집 《아폴론 저축은행》 등 밀도 높은 작품으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보한 차무진, 2022년 김유정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하여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들로 호평받은 신예 소향,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 부산국제영화제 NEW 크리에이터상, 한국추리문학상 대상 등을 휩쓸며 무서운 생산력을 보여주는 정명섭이다. 이 앤솔러지는 이들이 이제껏 내놓은 작품 영역을 허무는 새로운 주제이자 도전으로 더욱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 주제는 ‘금지된 사랑’이다.
문학은 선을 넘는다. 선을 넘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으므로. 시대의 금기를 깨뜨리는 ‘금지된 사랑’이라는 주제는 그 불온하고도 매혹적인 주제로 인해 문학사상 끊임없이 되풀이되어왔다. 이른바 ‘세계 4대 불륜 소설’로 꼽히는 《안나 카레니나》, 《주홍 글자》, 《마담 보바리》, 《인생의 베일》을 비롯해, 영화감독 박찬욱이 영화화한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 더 거슬러 올라가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와 사랑에 빠지고 아버지를 죽이는 금기의 원형 《오이디푸스 왕》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욕망과 도덕 사이의 긴장을 생생히 보여주는 이 이야기들의 맥을 이 소설집이 잇는다.
앤솔러지 《우리의 연애는 모두의 관심사》는 한국 사회 어디에나 있지만 대놓고 말하지 않는 불륜 혹은 금기에 대한 은폐된 ‘관심’을 비트는 제목으로 독자를 도발한다. 인간은 금기를 욕망할 수밖에 없는 모순된 존재이고, 독자는 이 앤솔러지를 통해 나의 금지된 욕망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아름다우며 ‘착한’ 로맨스에서 드러나지 않는 한국 사회의 기괴한 풍경과 모순, 계급과 젠더, 권력의 이야기가 은밀히 담긴 이 앤솔러지는 그래서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귀결된다. ‘바른’ 사랑의 정의는 무엇인가.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서부터가 ‘괴물’인가. 사회 규범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며 무엇을 위해 작동하는가. 이 소설을 읽으며 이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이란 무엇인지가 드러난다.
◆ 장강명, 〈투란도트의 집〉
나는 스물아홉 살 남성이었기 때문에, 이 섹스의 의미를 몰랐다.
나는 성욕 해소의 도구가 아니라, 자기파괴의 도구였다.
자칭 ‘심해어’를 닮은 스물아홉 살 남성이 직급이 세 단계가량 위인 여성과 섹스를 나눈다. 그는 이 관계를 이렇게 정의한다. ‘섹스 파트너.’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갓파〉를 넘나들며, 누구도 알 수 없는 인간 심연의 절망과 ‘비정상성’의 근원을 파고든다.
◆ 차무진, 〈빛 너머로〉
이 욕구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성인의 몸을 가진 어린아이의 성욕을.
도무지 인간계의 것이 아닌, 홀린 사람들의 관계를.
아들을 일찍 떠나보낸 공노식 씨는 절망과 침묵으로 생을 보내는 아내와 더불어 산다. 유일한 취미인 가전제품을 수리하다, 버려진 PC에서 충격적인 영상을 본다. 이 기이한 영상의 출처를 추적하던 공노식 씨는 깨닫는다. 인간성 앞에서는 그 어떤 제도와 관례와 종교도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 소향, 〈포틀랜드 오피스텔〉
나는 왜 네가 나와 같다고, 너를 안다고 자만했을까?
너의 목을 잡은 손에 힘이 풀렸다. 이것이 사랑인지 살의인지도 모른 채.
미국 포틀랜드의 어느 오피스텔에서 이제야 오롯이 서로를 욕망할 수 있게 된 남녀는, 그 장소를 한강 변의 오피스텔 1209호로 옮긴다. 둘만의 보금자리인 그곳에서 여자가 무심히 털어놓은 비밀에 남자의 세계는 무너져내린다. 타인에 대한 타인의 무감각이 그려놓은 비극의 설계도.
◆ 정명섭, 〈침대와 거짓말〉
체내에 남은 니코틴, 시트가 벗겨진 침대, 잠긴 방에서 일어난 밀실의 트릭.
아내와 남편, 그의 연인을 둘러싼 실화 모티브의 이야기.
아내가 살해된다. 연인과 밀회하던 남편은 용의선상에서 제외된다. 사건은 있으나 범인은 없다. 범인을 추적하던 두 탐정이 발견한 증거는 그러나 다른 진실을 말한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