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부터 고독사를 시작하시겠습니까?
시시하고 성실한 고독사 훈련이 시작된다
함께 고독할 명랑한 워크숍이 펼쳐진다
소설가 박지영의 장편소설 『고독사 워크숍』이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해 2013년 장편소설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로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을 수상한 박지영은 판타지적 설정과 스릴 넘치는 서사를 통해 문학과 과학을 아우르는 넓은 이해와 삶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 주며 장르문학의 경계를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9년 만의 신작 『고독사 워크숍』에서 작가는 더 깊어진 세계와 개성 있는 문체를 선보인다. 특유의 블랙 유머와 풍성한 문학적 레퍼런스, 장르를 넘나드는 긴장과 재미가 새로운 작가의 출현을 예고한다. 인간 심리를 예리하게 파고드는 서술에서 오는 섬뜩함과 끈기 있게 삶의 가능성을 들여다보는 태도에서 오는 명랑함의 공존은 박지영 소설의 표식이자 한국문학의 새로운 형식이 될 것이다.
『고독사 워크숍』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며 존엄한 죽음을 꿈꾸는 인물들의 시시하고 모순된 욕망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 준다. 고독한 일상을 살아내는 각기 다른 방식을 보여 주는 13편의 이야기들은 고독사 워크숍의 참가자들이 털어놓는 내밀한 자기 이야기이기도 하고, 고독했던 자신과 타인의 과거를 애도하며 지어낸 가상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현실을 껴안고 무한한 상상을 펼치며 희망을 찾아가는 미래의 이야기다.
■ 심야코인세탁소에서 온 의문의 초대장
‘고독사를 시작하겠습니까?’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온 ‘고독사 워크숍’으로의 초대장. 발신인은 ‘심야코인세탁소’다. 생각 없이 발송된 스팸 메일 같지만, 사실 타깃은 명확하다. 피할 수 없는 고독사에 대한 불안을 안은 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초대장의 수신인이다. 고독사 워크숍 운영진은 이들에게 함께 고독사를 준비하자 제안하고, 몇몇 참가자들에게 고독사 워크숍을 실행할 장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도대체 심야코인세탁소의 정체는 뭘까?
심야의 코인세탁소는 쌓이는 빨래처럼 반복되는 일상의 지겨움이 응축된 공간이다. 동시에 주변의 소음과 방해로부터 벗어나 적막과 고독을 경험하는 장소다.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는 코인 세탁기는 수건, 양말, 속옷에 묻은 일상의 흔적들을 지워 낸다. 중요한 것은 시시한 일상의 반복을 견뎌내는 것 그리고 삶에 필연적인 고독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분명하고 다행하게 예비된 고독사”를 준비하는 일은 곧 삶을 견디는 힘을 기르고, 서로가 고독의 코어를 단련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일과 다르지 않다. ‘핑크빛 고독사’를 꿈꾸는 사람들은 재미없는 농담 같은 심야코인세탁소의 초대장을 받아든다.
■ 고독을 견디는 힘 기르기
고독사 워크숍의 참가자들은 자신의 고독한 일상을 고독사 워크숍 페이지에 업로드하기 시작한다. 도서관의 책들에 그어진 밑줄을 포스트잇에 옮겨 적기. 매일 조금씩 더 긴 의자를 뛰어넘는 훈련하기. 매일 한 사람을 위한 농담 하나를 만들기. 사라진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 ‘거북이 수프 맛’의 부활을 요청하는 메일 쓰기. ‘오늘의 부고’ 작성하기……. 이들의 고독사는 성실하게 쌓여 간다. 이 일들은 쓸모없지만 계속된다. 계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쓸모가 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자신의 고독을 견디는 힘을 얻는다는 점에서 또한 쓸모가 있다.
장 주네가 자코메티의 작품을 통해 새로 쓴 ‘고독’의 정의는 이렇다. “비밀스러운 존엄성, 뿌리 깊이 단절되어 있어 서로 교류할 수 없고 감히 침범할 수도 없는 개별성에 대한 어느 정도의 어렴풋한 인식”(「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참가자들은 워크숍의 형태로 자기 이야기를 꺼내 놓고, 서로의 워크숍을 들여다보면서 이 비밀스러운 존엄성을 어렴풋이 감각한다. 댓글을 통해 서로를 응원하며 자신의 일상을 견뎌 낼 힘을 기른다.
『고독사 워크숍』의 오리엔테이션에서 시작해 열두 차례의 워크숍을 지나고 나면, 실패한 농담을 지치지 않고 되풀이하다 결국 시시한 농담 앞에 웃게 될 것이다. ‘나는 세상에 잘못 배달된 질문이 아닐까?’라는 질문에 좌절하지 않고 기꺼이 잘못된 길을 탐색해 볼 힘을 얻게 될 것이다. 하루의 끝에 진심으로, “나쁘지 않아” 하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명랑하고 고독하게 함께 잘 늙고 잘 죽어 갈 책’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대로, 독자들에게 이 책이 ‘요양원에 들고 갈 단 세 권의 책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