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다른 곳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 小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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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장편소설. 작가는 19세기 전후반의 사회와 예술을 대표하는 두 실존 인물 플로라 트리스탕, 폴 고갱을 빌려 우리에게 묻는다. "세상의, 우리의, 당신의, 천국은 어느 곳에… 당신은 당신의 천국을 꿈꾸어 본 적이 있는가? 감히 이 지상에 당신의, 우리의 천국을 만들려고 해 본 적이 있는가?" 1844년 4월의 어느 날 새벽 네시. 잠에서 깨어난 플로라 트리스탕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늘부터 반드시 세상을 바꾸고 말리라"고 결심한다. 그녀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성들이 아무 권리도 없이 '종'처럼 살고 있는 남프랑스로 향한다. 그리하여 그 유명한 19세기의 여성 '체 게바라'가 탄생한다. 하지만 몸은 병들고 그녀의 나이는 벌써 41세. 하지만 지상에 유토피아를 세우려는 그녀의 불굴의 의지는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약 50년 후, 그녀의 외손자 폴 고갱은 가족과 아이, 세상을 모두 버리고 '나의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타히티로 떠난다. 그에게 도덕은 위선이고 예술은 생명을 짓누르는 것일 뿐이었다. 이러한 세상에서 노예처럼 살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의지는 단순한 현실 도피가 아니라 천국의 삶 속에서 예술을 되찾기 위한 유토피아에 대한 열정이었다. 소설은 19세기 미술사의 가장 유명한 스캔들 중의 하나인 고갱과 반 고흐의 반목과 반 고흐의 자해, 그리고 고갱의 타히티행의 전모를 완벽하게 재현해낸다. 하지만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대가다운 솜씨는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반고흐와 고갱의 기행(奇行)들을 당대의 예술적 진실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예술의 상황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승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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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次

01 오세르의 플로라 _ 1844년 4월 02 악마, 어린 계집아이를 훔쳐보다 _ 마타이에아, 1892년 4월 03 사생아와 도망자 _ 디종, 1844년 4월 04 신비스러운 물 _ 마타이에아, 1893년 2월 05 샤를 푸리에의 그림자 _ 리옹, 1844년 5월과 6월 06 안나, 자바 아가씨 _ 파리, 1893년 10월 07 페루에서 온 소식 _ 로안느와 생테티엔, 1844년 6월 08 알린느 고갱의 초상화 _ 푸나아우이아, 1897년 5월 09 바다 여행 _ 아비뇽, 1844년 7월 10 네버 모어 _ 푸나아우이아, 1897년 5월 11 아레키파 _ 마르세유, 1844년 7월 12 우리는 무엇인가? _ 푸나아우이아, 1898년 5월 13 구티에레스 수녀 _ 툴롱, 1844년 8월 14 천사와 싸우다 _ 파피테, 1901년 9월 15 캉가요 전투 _ 님므, 1844년 8월 343 16 쾌락의 집 _ 아투오나(히바오아), 1902년 7월 17 세상을 바꿀 말들 _ 몽펠리에, 1844년 8월 18 늦바람 _ 아투오나, 1902년 12월 424 19 괴물 도시 _ 베지에르, 카르카손느, 1844년 8월/9월 20 히바오아의 무당 _ 아투오나, 히바오아, 1903년 3월 21 마지막 전투 _ 보르도, 1844년 11월 22 장밋빛 말 _ 아투오나, 히바오아, 1903년 5월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바르가스 요사 소설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원숙기의 대표작 평생 지상의 천국인 정치적 유토피아와 천국의 관능을 추구해온 바르가스 요사, 드디어 정치와 예술의 원숙한 화해에 도달하다. 예술은 ‘미친 지랄’이다. “혁명은 미친 짓이다.” 하지만 …… 세상의, 우리의, 당신의, 천국은 어느 곳에......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 세계 속에서 천국을 세우려고 하다 세상을 버린 자, 세계 밖에서 천국을 꿈꾸려 하다 1844년 4월의 어느날 새벽 4시. 잠에서 깨어난 플로라 트리스탕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늘부터 반드시 세상을 바꾸고 말리라"고 결심한다. 페루 식민지의 장교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가족, 결혼, 사회 등 몇 겹으로 세상에서 저주받은 자였다. 하지만 이 땅의 저주받은 자는 그녀만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여성들이 아무 권리도 없이 '종'처럼 살고 있는 남프랑스로 향한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리하여 저 유명한 19세기의 여성 '체게바라'가 탄생한다. 하지만 몸은 병들고 그녀의 나이 벌써 41살. 하지만 지상에 유토피아를 세우려는 그녀의 불굴의 의지는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약 50년 후 그녀의 외손자 폴 고갱, 남프랑스에서 반고흐와의 동거 및 엽기적인 사건 이후 가족와 아이 등 세상을 모두 버리고 '나의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타히티로 떠난다. 도덕은 위선이고 예술은 생명을 짓누르는 것일 뿐이었다. 예술이 세상을 비웃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예술을 매도하고 있었다. 이러한 세상에서 노예처럼 살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의지는 단순한 현실 도피가 아니라 천국의 삶 속에서 예술을 되찾기 위한 유토피아에의 열정이었다. 하지만 그도 늙었고, 마음은 이미 병들었다. 희망과 열정과 ‘혁명’을 잃은 우리 시대에 던지는 바르가스 요사의 새로운 문학적 메시지. "비록 천국은 항상 우리가 찾던 것과는 다른 곳에 있지만 천국을 찾으려 할 때만이 우리는 '인간'일 수 있다." 바르가스 요사 소설 30년의 모색을 결산하는 새로운 이정표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은 두 축을 따라 큰 궤적을 그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 소설과 인간의 관능성에 대한 탐구가 그것이다. 전자가 일종의 ‘큰 이야기’라면 후자는 ‘작은 이야기’ 쯤에 해당될 것이다. 먼저 ‘정치 소설’과 관련해 남미 소설을 상징하는 용어가 '마술적 리얼리즘'인데서 잘 알 수 있듯이 남미 현실에서는 초현실적인 것과 봉건적인 것이 기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마치 태곳적의 것 같은 식민지 고유의 뿌리 깊은 유물과 서구 제국주의의 최신식 사조가 나란히 공존하는, 예를 들어 미신과 가톨릭이 함께 나란히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다소 형용모순적인 개념보다 이를 더 절묘하게 보여주는 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르가스 요사는 이러한 이종 교배적인 현실에 대해 '마술적 리얼리즘' 계열의 주류 작가들처럼 환상과 마법과 현실을 뒤섞는 방법을 택한 것과 달리 현실을 중심에 놓고 역사와 인간을 고찰하는 '정공법'을 택한 것으로 유명하다. <성당에서의 대화>나 그의 창작의 전반기를 대표하는 <세상종말전쟁>은 이러한 경향을 굵직하게 보여준다. 즉 그의 소설은 누보로망 이나 포스트모더니즘 운운하는 서구적 흐름이나 ‘마술적 리얼리즘’ 등의 제3세계적 흐름과는 달리 그만의 독특한 창작방식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세상종말전쟁> 같은 장편소설을 '현대의 대하 서사시'로 만들어주고 있다. 바르가스 요사의 이번 노벨 문학상을 두고 한편으로 '너무 늦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의 정치 소설은 대부분의 문학이 ‘탈정치화’ 또는 ‘마법화’ 추세에 있던 20세기 후반의문학과 정치에 있어 일종의 ‘정통 노선’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문학의 정치적 성향이 결국 그의 대통령 후보 출마라는 현실 정치에의 참여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후지모리의 집권으로 이어진 페루의 일련의 현실 정치 과정에서 이러한 '정치적 실천'은 작품에서는 수면 이하로 가라앉고 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사의 문학은 다른 한편으로는 초기부터 인간의 관능성에 대한 탐구라는 또 다른 궤적을 그려왔다. 아마 20세기 작가 중 인간의 관능과 에로티시즘을 그만큼 재기발랄하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방식으로 다루어온 작가도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것이 앞서와 같은 '정치적 참여 작가‘의 손에서 나온 것인 만큼 한층 더 놀랍기만 하다. <녹색의 집>이나 <리고베르토 씨의 비밀 노트>를 이러한 계열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이것은 특히 기이하게 '정치'와 인간의 저 ’어두운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욕망에 대한 탐구가 리얼리즘 대 모더니즘 식으로 엉뚱하게 대립하고 있는 우리 상황에서는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만 요사에게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축은 아수라처럼 따로 떨어져 있었지 한 권의 소설 속에서 하나로 융합되어, 본격적으로 함께 다루어진 적은 드물었다. 이러한 점에서 고갱을 중심으로 한 '예술가 소설'과 고갱의 외할머니인 플로라 트리스탕의 '혁명가 열전'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는 이 소설은 여러모로 바르가스 요사 소설의 진화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흥미로운 징후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진정한 새로움은 이처럼 형식적인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은 그동안 이 소설가의 정치적 성향을 둘러싸고 벌어진 ‘진보 대 보수’ 또는 ‘전형’ 논쟁과 관련해서도 새로운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해줄 수 있다. 특히 그것은 작가가 평생 추구해온 정치적 해방과 에르티시즘에 대한 탐구에 있어 기존의 보수-진보 식의 이분법을 넘어서고 있어, 그것이 이 작품을 청년기의 모색에 대한 일종의 완숙기의 결산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특히 마치 고갱의 머릿속에 들어앉아 있기라도 하듯 실감 나게 '늙은 화가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는 소설의 반쪽은 작가의 새로운 예술관을 충분히 보여주고 남음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마치 바르가스 요사의 입장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한 고갱의 말을 직접 들어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선택받은 한줌의 사람들을 위한 지상 천국을 세우기 위해 이 불완전한 세상을 저버릴 수는 없는 일이야. 그런 곳은 세상 어디에도 있을 수 없단 말이야.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이 세상의 불완전함에 맞서 싸워야 하는 거야. 이 세상을 개혁시키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거야.” 즉 해방에의 추구는 ‘미친 짓’이요 ‘지랄 같은 것’이요, 고갱의 경우처럼 타히티에서 다시 마르키즈 제도로 가서까지 추구해도 다 헛된 짓일 뿐이지만 오직 그것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의 가장 끝으로 나간 고갱과 달리 저주받은 세상의 한 가운데로 뛰어든 고갱의 외할머니 플로라 트리스탕의 목숨을 건 열정에 의해 다른 식으로 증언되고 있다. 즉 ‘사생아, 선동가, 화냥년, 남편과 자식을 저버리고 애인을 둔 년, 생시몽주의자이며 이카리아 공산주의자’인 플로라 트리스탕은 죽음을 앞에 두고도 인간 해방이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지고의 가치임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 소설의 한 장, 한 장이 고갱 이야기와 플로라 이야기가 교직되는 식으로 쓰여짐으로써 우리는 전혀 다른 두 세계를 롤러코스트 타듯이 왕복하면서 작가의 새로운 세계관이 새롭게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눈 밝은 독자라면 이 소설이 비단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화가들보다 화가들을 더 잘 아는 소설가의 예술가 열전 물론 이 소설은 19세기 미술사의 가장 유명한 스캔들 중의 하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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