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건강 불평등 연구의 세계적 대가 마이클 마멋의 신작 의사는 병을 고치는 사람이다 그런데 질병과 건강이 사회적 여건과 관련 있다면 그 여건을 향상시키는 것은 누구의 일이어야 하는가? 사람들은 흔히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의료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낙후된 지역에 살고 아파도 치료비를 낼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잘사는 나라 사람들보다 건강하지 못하고 빨리 죽을 거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한 나라 내에서도 부유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고 오래 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책의 저자 마이클 마멋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 통념은 옳긴 하되 제한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 통념대로라면 미국 사람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고 오래 살아야 한다. 하지만 마멋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15세 소년이 6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스웨덴이나 영국의 확률보다 낮다. 아니, 그런 ‘선진국’들은 고사하고 코스타리카, 쿠바, 칠레, 페루, 슬로베니아보다 낮다. 최고 부자 나라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코스타리카보다 훨씬 훌륭한”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왜 15세 소년의 생존을 보장해주지 못하는가?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지며 건강에 관한 우리의 오랜 통념을 깬다. 사람들이 아픈 이유는 가난해서, 그래서 의료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모든 이가 양질의 의료 시스템을 접할 수 있게 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사회 전반을 건강하게 만들 수는 없다. “세계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갖춘 미국에서 15세 소년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이유는 의료 시스템 부족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을 병에 걸리게 만드는 사회 여건 때문이다. 의료 시스템은 병에 걸리고 난 다음에 치료를 받을 때 필요한 것이다. 아스피린 결핍이 두통의 원인이 아니듯, 의료 접근성 부족은 질병의 원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환자들 가운데서 의사는 무엇을 치료해야 하는가? 사람들을 병에 걸리게 만드는 사회 여건이 질병의 원인이라면 의사는 누구에게 무엇을 처방해야 하는가? 우리에게 아직 조금 생소하지만, 이렇게 질병을 일으키는 사회 여건을 탐구하고 어떻게 하면 그 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 있다. 바로 역학(epidemiologist)이다. 역학 분야에서는 의사, 통계학자, 인류학자가 협업해 생활 장소와 양태 등에 따라 인구집단의 건강 상태가 어떻게 다른지, 왜 서로 다른 발병률을 보이는지를 연구한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마멋은 이 분야 세계 최고의 권위자로, 의과대학 재학 당시 이런 분야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질병의 원인을 탐구하고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의 대신 질병의 원인의 원인을 탐구하고 사회를 개선하는 역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 책은 그가 역학자로서 이뤄낸 수많은 연구 성과의 보고(寶庫)다. 그의 숱한 실증 자료들이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 여건을 변화시키면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전 세계 여러 나라들이 그의 연구를 근거로 보건 의료 정책을 변경하고 있으며, 바뀐 정책들이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책에는 그가 제시한 여러 “낙관적 정책”들의 실효성과 성과가 집대성되어 있다. 가난이 아니라 불평등이 원인이다 평등한 사회에서는 가난이 병을 만들지 않는다 마멋은 “건강에 중요한 것은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보다는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다”라고 이야기한다. 즉 건강과 건강 형평성의 문제는 국가의 부와 개인의 빈부 격차,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평등 정도에 따라 바뀐다는 것이다. 가령 국민소득은 높지 않지만 건강이 좋은 국가도 있고, 미국처럼 국민소득은 높지만 건강은 그에 비해 안 좋은 나라도 있다. 쿠바, 코스타리카, 칠레는 국민소득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높은 수준의 건강을 달성한 나라들이다. 코스타리카와 칠레는 소득 불평등이 큰데도 건강 수준이 높다. 그 원인을 조사해 본 결과 코스타리카와 칠레에는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을 사회 주류에 통합시키는 것을 목표로 빈곤층의 권리와 사회적 혜택을 보장하는 사회 복지 프로그램이 있었고 국가가 학교 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이 굉장히 컸다. 이런 사례를 근거로 그는 건강과 의료의 문제는 개별 행위자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제껏 건강 불평등 문제는 의료 접근성이나 금연, 금주, 식단 조절 등 질병 예방을 위한 개인의 행동 교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되어 왔지만, 그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으며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더 큰 차원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출발선에서의 평등이 보장될 수 있도록 영유아기 성장 발달을 지원하는 사회(4장),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개인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수 있게 돕는 사회(5장), 양호한 노동 여건과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는 사회(6장), 노년의 우아한 생활 여건을 보장하는 사회(7장), 사회적으로 살기 좋은 지역공동체가 유지되는 사회(8장)에서 비로소 개인의 건강과 사회의 건강 형평성이 달성될 수 있다. 아직 하나도 갖추지 못한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나, 그는 여러 사례를 통해 어떤 사회에서든 이 여건이 모두 갖추어질 수 있음을 증명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회정치적 문제이기도 한 공공 차원의 의료를 고민하는 이들과 오랜 건강 불평등 문제의 원인을 알고 싶어 하는 이들, 나아가 사회정의의 문제를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더불어 정책을 만들고 국가 예산의 지출 계획을 세우는 이들에게도 이 책의 저자, 마이클 마멋의 의미 있는 시도와 “낙관적인 전망”이 전달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