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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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의 첫 평론집 “약력은 짧다. 본인 말마따나 아직 박사학위도 없고, 책 한 권 낸 적 없다. 그런데 실하다 싶은 시집, 소설책의 뒷면에는 수월찮게 그의 해설이 실려 있다. 그에게서 해설을 받으려는 시인, 작가가 줄을 섰다는 소문도 들린다. ‘제2의 김현’이라는, 듣는 이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찬사도 들린다.”(한국일보 2007년 1월 4일자) 지난 2007년, 한 언론은 신형철을 소개하는 기사를 이렇게 시작했다. 당시 그는 데뷔한 지 채 2년도 안 된 신예 평론가였다. 대체 무엇이 그를 한국 문학비평의 신화로 불리는 김현에 견주게 했을까? 그는 「문학동네」 2005년 봄호에 평론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오래전부터 문학의 위기와 비평의 죽음이 심상하게 이야기되던 때였다. 특히 자기들만의 세계에 갇혀 독자, 작가들과의 소통을 게을리 했던 비평계는 이제 형식적 권위만 남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 무겁고 팍팍하던 비평계에 그의 등장은 신선한 활기를 몰고 왔다. 우선 그의 비평은 독자들과 벽을 쌓고 지냈던 그간의 비평들과는 달리, ‘소통’을 내세웠다. 무엇보다 그의 비평은 쉽고 친절했으며 재미있기까지 했다. 게다가 평론가로는 보기 드물게 자기 문체를 가졌다는 평을 들을 만큼 스타일이 유려했다. 70~80년대 비평의 시대가 지나간 이후로 침체되었던 비평계에서 단연 발군이었던 것이다. 이 젊고 발랄한 비평가의 출현에 맨 먼저 시인과 소설가들이 환영했다. 위의 기사에서 보듯, 웬만한 시집과 소설책 뒤에는 그의 해설이 실려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그는 2007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해설을 씀으로써 ‘가장 인기 있는 해설가’로 꼽히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한국일보 2008년 2월 3일자) 그렇게 독자, 작가들과의 소통을 중심으로 활발한 비평활동을 펼쳐오던 그가 등단한 지 4년이 되어서야 첫 평론집을 펴낸다. 그의 비평처럼 평론집의 출간 또한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던 것일까.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평론가들과 비교해도 한참 늦다. 이제까지 썼던 글들을 추려 모은 것이라 분량도 여타 평론집의 두 배가량(724쪽)이다. 이 섬세한 평론가가 4년 동안 이뤄온 자신의 비평세계를 어떻게 담아냈을까. 여기 그의 소통의 흔적들이 “부풀어오른 빵처럼 수북이” 담겨 있다. 문학은 몰락의 에티카다 그는 ‘책머리에’에서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하는 몰락한 자들의 숭고한 표정에 매료된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 몰락 이후의 첫번째 표정이야말로 ‘문학’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평론집의 제목이 ‘몰락의 에티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몰락의 에티카다. 온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문학은 몰락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바꿔야 한다고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문학이 이런 것이라서 그토록 아껴왔거니와, 시정의 의론(議論)들이 아무리 흉흉해도 나는 문학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가지런해지던 날 나는 책을 묶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책의 제목은 그때 정해졌고 결국 바뀌지 않았다. 그 책을 이제야 낸다. _‘책머리에’에서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소설에 대한 글들을 묶은 것이다. 90년대 이후 이념이 사라진 한국문학계에 어떤 삶이 진실하고 아름다운 삶인지를 묻는 윤리학의 출현을 살피고 있다. 김영하, 강영숙, 박민규의 장편을 통해 본 소설과 현실의 관계, 김훈의 유물론, 박성원의 소설을 특징짓는 아포리아(길 없음, 논리적 궁지)의 재구성,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한국문학의 윤리를 가장 급진적으로 보여준 김영하의 경영학과 배수아의 언어학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윤리적으로 급진적인 소설들이 문학적으로도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사람의 동료 평론가들의 비평을 언급하며 소설의 윤리를 주제로 한 일반론으로 나아가자는 글로 결론을 맺으며 또다른 서론을 열고 있다. 2부에는 2000년대에 등장한 젊은 시인들에 대한 글들을 모았다. “70년대 산(産) 2000년대 발(發)” 젊은 시인들의 시는 이제껏 한국문학이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매혹을 품고 있었다. 그 새로운 흐름을 혹자는 ‘미래파’(권혁웅)라고 명했고, 혹자는 ‘다른 서정들’(이장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뉴웨이브’라고 명명했다. 그는 김민정, 황병승, 김경주, 이민하, 김행숙 등의 시에 나타나는 새로운 에너지의 가능성과 미학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그들의 모험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의 비평은 이 새로운 흐름을 방해하는 보수적인 목소리를 만났을 때는 차가운 결기를 내뿜기도 했다. 이 새로운 흐름에 대한 주목을 “성급하게 새로움을 강조하는” “호들갑”이라고 비판한 비평가에게 김수영의 말을 끌어와 예술사의 전진은 아주 작은 ‘차이’에서 비롯되고, 그 차이에 대한 감각이 필요하다고 반박하고, “난무하는 서브포에트”를 폄하하는 비평가에게는 시에서 중요한 것은 문법을 지키는 게 아니라 ‘시적인 것’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신랄한 일침을 가한다. 그가 한국시사의 초안처럼 읽어달라고 당부하는 4부에서는 한국 현대시사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이상, 윤동주, 김수영, 황지우, 오생근, 김혜순의 시 혹은 시론을 다루고 있다. 4부 마지막에 지젝의 ‘체위의 이데올로기’라는 말에서 계기를 얻어 한국시를 ‘섹스’의 측면에서 부각시켜 바라본 글(「시는 섹스를 한다」)은 특히나 흥미롭다. 3부와 5부는 그간 단행본에 수록했던 해설들을 골라 묶었다. 작품 끝자락에 들어가는 해설은 “평론가가 소진하는 장소”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지만, 그는 독자, 작가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자 해설 쓰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자신 고등학생 때부터 문학평론가를 꿈꾸었을 만큼 오랜 시간 훌륭한 해설들의 애독자이기도 했다. 그의 해설이 독자뿐만 아니라 시인, 소설가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작가에 대한 이해와 공감, 텍스트에 대한 애정, 상대방과 대화하려는 겸허한 태도에서 시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군다나 보기 드물게 시와 소설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도 그의 비평의 특장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시평을 아끼는 것은, 그 비평이 한 글자 한 글자 아껴서 읽어야 할 정도로 섬세하고 정밀해서 오히려 시를 더 시적이게 하는, 어떤 면에서 몸으로 애정으로 시를 껴안은 채로 뛰어넘어서는(비상하는!) 미덕 때문이다. 작가와 비평가, 서로의 가슴이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지 않을 때 문학은 새로운 의미를 입지 않는가. (…) 그는 분명 비평의 자존심을 회복시킨 평론가다. 평론가의 업이 시선으로 문단을 풍요롭게 해주어야 하며, 진득한 애정으로 문단을 일으켜야 하는 일이라면 신형철 비평의 품격은 오래도록 졸고 있는 문단의 칙칙함을 깨우기에 충분하단 생각이다.” _이병률(시인)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이 책에 완결성을 부여했다. 프롤로그에서는 “설사 시집과 소설책이 더이상 제작되지 않고 팔리지 않는 22세기가 온다 해도” 비평가는 “어디서든 ‘시적인 것’과 ‘소설적인 것’을 찾아낼 것이고 그것을 비평할 것”이고, 문학은 “진실의 윤리학”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에필로그는 『소진의 기억』(문학동네, 2007)에 실렸던 글이다. “그에 대해서는 쓰지 않고 버티면서 그를 잊지 않겠다”는 말이 가슴 먹먹하게 전해온다. 이 두꺼운 책의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4년 동안 그가 써왔던 것도, 724쪽에 걸쳐 하고자 하는 말도, 결국엔 문학을 사랑한다는 고백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는 4년 동안 한국문학과 함께 걸었고, 앞으로도 쭉 함께 걸어갈 것이다. 문학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이 따뜻한 비평가와 함께한 시간은 얼마나 즐거웠고, 또 얼마나 즐거울 것인가. 내가 나 자신을 혐오하지 않으면서 말할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