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_공간을_널리_이롭게
인스타그램 10만 팔로워를 이롭게 한 홍익공간 프로젝트!
‘좋아요’와 ‘해시태그’ 너머에 있는 공간의 가치
눈뜨면 SNS에 ‘핫플’과 ‘힙플’이 쏟아진다. 사람들은 부지런히 ‘좋아요’를 누르고, 같이 갈 사람의 계정을 ‘태그’한다. 이렇게 홍수같이 쏟아지는 공간을 보면서, 살면서 여기만큼은 한 번쯤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간절함이나 가지 않으면 어쩐지 시류에 뒤처진 것 같은 조급함마저 몰려온다. 그런데 시간 내어 찾아간 곳에서 사람들은 카메라만 들고 있다. ‘인증샷’과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서.
이 인증 문화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손쉽고 재빠르게 공간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된 것이 이 SNS 덕분임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찍었으면 이제 ‘느껴보자는’ 것이다. 찍고 올리는 행위에 그치지 말고, 방문한 공간을 보다 더 풍부하게 감상하고 경험해보자는 것이다. 이 책 『인증샷 바깥의 공간』과 함께.
이 책은 1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한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문형근의 첫 책이다. 한양대학교 에리카 캠퍼스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건축디자이너로 지내는 그는 2016년부터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좋은_공간을_널리_이롭게’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수천 곳의 공간을 소개하고 있다. 난해하고 어려운 건축 언어 대신 모두가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표현으로 7년 가까이 기록해온 공간의 가치를 이 책에 한데 담았다.
113살 터줏대감부터 걸음마 뗀 신생 공간까지
복합문화공간, 카페, 다이닝, 호텔을 모두 누리는 특별한 입장권
그중에서도 SNS에서 주목받고 있는 공간들을 선별한 뒤, MZ세대가 주로 공간을 이용하는 목적에 따라 네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문화적 소양을 쌓기 위한 전시 관람(1장 복합문화공간), 넘쳐나는 커피 시장에서의 소비(2장 카페), 새로운 식문화의 향유(3장 다이닝과 와인 바), 숙박(4장 호텔)이다.
1장 ‘복합문화공간’에서는 기업의 공간 브랜딩으로 시작한다. 서울 명동이라는 금싸라기 땅에 공유공간을 만든 금융기관(24쪽, 신한 익스페이스), 20년 만에 책을 빌리는 기능을 넘어 주민의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동네 도서관(40쪽, 금천구립독산도서관), 사람들에게 외면받던 화학공장에 새 옷을 입혀준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도 바라본다(53쪽, 코스모40).
2장 ‘카페’에서는 현재 한국에서 어떤 곳보다 많이 발견할 수 있는 카페에 대한 이야기다. 해방촌이라는 비좁은 도시 조직에 ‘수직의 미학’을 뽐낸 곳(125쪽, 업스탠딩커피), 넓은 제주 땅에 그대로 들여온 바다의 전경(111쪽, 공백), 이름은 달고 있지만 그 기능을 온전히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한국의 ‘광장’(155쪽, 로우커피스탠드) 등도 살펴본다.
3장 ‘다이닝과 와인 바’와 4장 ‘호텔’은 다른 장에 비해 공간의 기능적 요소뿐 아니라 각 공간의 메뉴나 일하는 사람들의 접객 서비스도 함께 엮어내고 있다.
“나는 건축가 대신 ‘공간가’가 되고 싶다”
빈 사이(空間)를 고민하는 젊은 공간가의 등장!
건축은 철학, 음악, 문학 등 여러 분야의 협력으로 완성되는 종합 예술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쌓아서 세운다(建築)’는 행위와 그 결과물에 주목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에 비해 공간은 ‘빈 사이(空間)’를 고민하게 만드는 말이다. 그렇다면 건축가는 이 빈 사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고민하는 ‘공간가’가 아닐까,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6쪽, ‘문을 열며’)
이 책을 쓴 문형근은 1994년생 건축디자이너다. 이 홍익공간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학창 시절에 겪은 한 일화 때문인데, 친한 동기로부터 “클라이언트가 건축가에게 그저 비싸게 팔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더라.”라는 말을 전해 듣고, 한국에서 건축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가 부족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카페 사진, 그중에서도 커피 메뉴 사진으로 시작한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점차 공간 안팎에 대한 이야기가 풍부하게 담기게 되었다. 일회성과 휘발성이 강한 이 매체에서 100년은 넘게 바라봄직한 건축물과 공간을 소개한다는 것이 어쩐지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이제 그의 인스타그램은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길잡이가 되었다.
“공간은 이론이나 수치가 아닌 ‘감각’으로 설명되는 영역”
우리는 좋은 공간을 경험해야 하고, 또 요구할 줄 알아야 한다
저자가 이 홍익공간 프로젝트를 이어오는 사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에 침투했다. 임대료뿐 아니라 거리두기와 방역 수칙이라는 변수가 더해져 무수한 공간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만큼 희망을 품고 새로운 공간들이 날마다 생겨나고 있고, 이 어려운 시기에도 터줏대감처럼 동네를 지키고 있는 곳도 있다(169쪽, 베리키친).
일상의 중심이 온라인으로 옮겨온 상황에서도 저자가 이 프로젝트를 묵묵히 이어오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어떤 공간이든 직접 가보아야만 그 본모습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SNS에서 근사해 보였던 곳이 실제로 갔을 때 그렇지 않았던 경우를 우리는 숱하게 겪었다. 반대로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곳이 인생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근사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우리가 계속해서 좋은 공간을 경험해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앞으로 기업이 더 많은 공공공간을 마련하고, 지자체에서 더 수준 높은 문화공간을 지을 수 있도록. 그리고 공간을 경험하는 데 정답이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이 책에 담긴 그의 안내 역시 정답은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앞으로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저마다의 서사를 완성해낼 수 있기를, 인증샷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공간의 가치를 느낄 수 있기를, 이 책이 그 작은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