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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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펜 포크너상 동시 수상작 골든글로브 최우수작품상 수상작 영화 <디 아워스> 원작 소설 자신의 시간을 살고 싶은 세 여자의 눈부시게 절박한 하루 우리는 그녀의 슬픔이 평범한 슬픔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여자의 일생이란 무엇일까. 버지니아 울프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작가도, 로라 브라운처럼 평범한 주부도, 클러리서 본처럼 성공한 편집자도 모두 ‘부인’으로 불린다. 버지니아 스티븐은 남편의 성을 따라 버지니아 울프, 울프 부인이 되었고, 로라 지엘스키는 로라 브라운, 브라운 부인이 되었다. 그리고 클러리서 본은 작가 리처드에게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린다. 세 여자는 ‘… 부인’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그토록 원하는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있을까? 버지니아 스티븐, 울프 부인으로 죽다 울프 부인은 평범한 여자의 하루를 담은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쓰려고 한다. 남자 작가들이 국가의 흥망성쇠 같은 일로 대단한 글을 쓴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을 때, 그녀는 아주 사소한 일로 자살하려는 여자의 하루를 그려 영국 문학을, 문학에서의 남자의 지위를, 세상에서의 여자의 위치를 극적으로 바꾸려 한다. 그러나 그녀는 정신병 때문에 요양을 와 있는 리치먼드에 적응하지 못한다. 교외의 답답함을 견뎌내지 못한다. 여자로서의 삶은 언제나 답답했으니까. 결국 그녀는 자살을 결심한다. 로라 지엘스키, 브라운 부인으로 살다 브라운 부인은 버지니아 울프가 쓴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며 자신도 울프처럼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절망적인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 돌아온 전쟁 영웅의 아내일 뿐이다. 남편의 생일을 준비하고, 배 속에 있는 둘째 아이를 낳아야 한다. 설령 그녀에게 울프와 같은 재능이 있더라도 말이다. 브라운은 남편의 생일 케이크를 만들다 말고 집을 뛰쳐나와 한 호텔에 머물지만, 그 몇 시간마저도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자기만의 방’이 너무나 어색한 그녀는 동경하는 울프처럼 자살을 생각하지도, 도망치지도 못했다. 집에는 아이와 남편이 있고, 그녀는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 클러리서 본, 댈러웨이 부인으로 불리다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리는 클러리서 본은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리처드 곁을 맴돈다. 어린 시절 한때 연인 사이였던 그는 정신병과 에이즈를 앓고 있는 작가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그를 위해 클러리서는 파티를 준비한다. 편집자로서 성공한 그녀이지만, 인공수정으로 얻은 딸은 어머니를 원망하는 것 같고, 딸의 동성연인은 성차별에 저항하지 못하고 안주해버린 클러리서를 비웃는다. 그래서 그녀는 리처드를 간절히 필요로 한다. 그녀는 리처드를 위한 파티에서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으려 한다. 우리가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시간들(the hours)’이다. 마이클 커닝햄은 세 시대를 살아가는 세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고 유려한 문체로 그려내면서 반복되는 일상의 문제를 삶 자체라는 테마로 확장시킨다. ‘디 아워스’는 버지니아 울프가 쓰던 소설의 제목이다. 훗날 이 소설은 《댈러웨이 부인》으로 출간되었지만, ‘디 아워스’는 《댈러웨이 부인》을 변주한 커닝햄의 소설 《디 아워스》로 다시 빛을 본다. 또한 작가는 권두에 보르헤스의 시 <또 다른 호랑이>를 실어 시간의 유사성을 은유했다. 1923년 런던 교외, 1949년 로스앤젤레스, 현재 뉴욕이라는 서로 다른 시공간에 세 여자가 있다. 작가는 ‘댈러웨이 부인’과 ‘노란 장미’, 클러리서 본의 친구이자 로라 브라운의 아들이며 버지니아 울프의 페르소나인 ‘리처드’, 로라 브라운이 머무는 호텔 방인 ‘19호실(도리스 레싱의 단편 <19호실로 가다>에서도 같은 의미로 등장한다)’ 등의 장치를 통해 문학의 유사성을 삶의 반복성으로 확장시키고, 이에 내재된 일상의 슬픔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속에 놓인 버지니아, 로라, 클러리서의 분투를 보여주며 또 다른 반복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골든글로브 작품상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디 아워스>에서 버지니아 울프를 연기한 니콜 키드먼은 이 영화가 힘들었던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고 말했다. 문학은 삶을 닮고, 우리는 그런 문학을 읽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어떻게든 살아가려 한다. 자신의 시간을 살고 싶은 우리가 무엇보다 원하는 것은 바로 ‘시간들(the hours)’이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눈부실 정도로 절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