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존재하되 방치해 버린 믿음
사람을 현혹하는 거대한 시장, 세 명의 기자가 탐사한 무속의 사회학
제도화된 종교와 달리 무속 신앙은 그저 미신으로 치부되어 마치 그런 게 존재하지 않는 듯 방치되어 왔다. 그러나 무속은 우리 사회와 무의식에 깊이 뿌리 내린 채 우리의 미래를 쥐락펴락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를 그리고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에 나왔다. 임기 내내 천공이라는 무속인에게 국정 조언을 받는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12.3 비상계엄 사태 때 배후 인물로 지목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최측근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직업은 무속인이었다. 한 연예 기획사 대표가 경영상 문제를 무속인과 상의한다는 소식도 한때 사람들의 입에 무수히 오르내렸다. 이렇듯 무속 신앙은 모순적이다. 누군가는 무속을 그저 미신이라고 천대하고 누군가는 진심으로 귀신을 믿고 무당의 말에 일희일비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무속이 존재함에도 제도적으로 무속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방치된 믿음’이다.
방치된 믿음은 착취를 먹고 자란다. 한국일보 탐사기획부 기자인 세 명의 저자는 오늘날 무속인의 존재 방식을 알아보기 위해 무속인 범죄에 접근했다. 이를 위해 무속 범죄 10년 치 판결문 320건을 전수 분석했다. 판결문 열람 서비스를 통해 2014년 8월부터 2024년 8월까지 ‘무속인’ 키워드로 검색된 판결문 1990여 건을 모두 검토한 뒤 무속 행위와 관련된 형사 사건 320건을 추렸다. 2~3주 동안은 매일 경기도 일산에 있는 법원도서관을 찾아갔다. 이 책에서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구성된 피해자와 무당의 사건 일지는 충격적이지만 전형적이기도 하다. 두 딸이 차례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자 신내림을 받아야만 했던 소연과 무당 이미운의 이야기, 자신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아맞혀 인생을 내맡긴 주은과 무당 명 도령의 이야기, 교통사고로 사람을 숨지게 해 삶의 의미를 잃어 자살까지 생각하다 무당을 만나 17억 원 이상을 갖다 바친 선아 씨 이야기 등은 관리되지 않은 믿음이 어떤 일을 벌일 수 있는지 추적한다.
또한 세 명의 기자는 취재에 그치지 않고 이 거대한 현혹 시장의 규모를 드러내는 최초의 통계를 만들었다. 무속인의 범죄 유형, 범죄 증가 추이, 가스라이팅 방법, 법정 양형의 분류, 법원의 무속인 인정 여부 등의 통계는 무속을 없는 것으로 우리 눈앞에 치워버리는 것이 얼마나 근시안적인 일인가를 증명한다. 요컨대 이 책은 무속에 대한 고발을 넘어선, 무속의 현실에 대한 사회학이다.
사회의 무속, 무속의 사회
무당은 누구인가, 어디에 있는가
세 명의 기자는 무당이 어떤 존재인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이른바 용하다는 산에 찾아가 그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곳에는 길흉화복을 예측하고 이승을 떠난 사람과 교통하는 무당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속과 생활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럼에도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는 직업인으로서의 무당이 있다. 그들은 명산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있다. “무속 신앙은 단순히 전통 관습, 혹은 종교가 아니다. 특정한 삶의 형태이며 시장 경제의 산물이기도 하다. 무당들이 점집을 차리는 곳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돈이 돌고, 사람이 모이고, 역사가 흐른다. 논현동의 무당들은 입소문으로 손님을 받고, 고소득, 권력층 고객이 몰리며 점집 표식인 깃발도 필요 없다. 반면 미아동의 무당들은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있던 나이 든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이제는 손님이 줄어 점집들이 사라지고 있다. 서울에서 점집이 가장 많은 곳은 어딜까?”(117-118쪽)
저자들은 점집의 위치를 분석하며 각 동네와 무당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탐사한다. 논현동의 무당과 미아동의 무당은 다르게 존재한다. 땅값 때문에 빈익빈 부익부가 작용하고, 개발 때문에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무당이 밀려나기도 한다. 전통적인 강북 지역에서 무당은 지역경제를 살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모두 과거 무당들의 초상이다. 현재 MZ 무당은 카카오톡과 유튜브로 옮겨가 젊은 고객을 포섭하고 있다.
전화 점사와 카톡 무료 상담, 유튜브 라이브 상담은 새로운 무당들의 터전이다. 운세앱을 먹여 살리는 주고객층은 놀랍게도 2030세대다. 그것도 여성이. 왜 젊은 여성들이 점을 선호하는 걸까? 저자들은 여기에 대해서도 제 나름의 설명을 시도한다. 유튜브 콘텐츠와 라이브는 가장 뜨는 무당 콘텐츠다. 모든 유튜브 점사는 연출 10퍼센트가 아니라 ‘연출 100퍼센트’다. 유튜브 점사 콘텐츠에 출현한 A씨의 증언을 통해 독자는 PD와 무당, 배우가 만들어 내는 가스라이팅의 현장을 직접 몰두할 수 있다. “B사는 통상 섭외된 배우에게 ‘관련 내용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도록 했지만 A씨는 각서 없이 배우로 참여한 한 점사 콘텐츠의 대본과 카카오톡 대화 캡처본을 우리에게 제공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대본을 토대로 사전에 담당 PD가 배우들에게 “아빠는 알코올 중독에 가정 폭력, 오빠는 사고뭉치에 집안을 더 어렵게 만드는 존재, 그 모든 것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엄마”와 같이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 주고 이를 숙지하라고 지시하고 있었다.”(142쪽)
무속 신앙은 한국 내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K컬처 열풍에는 수출되는 K샤머니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들은 질문을 던진다. 진짜 무당, 가짜 무당이 있고 문제는 가짜 무당만 해결하면 풀리느냐고, 애초에 진짜 무당이 있다는 프레임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우리는 그저 재미로만 점을 보면 그만이라고 말하는데, 정말 그러냐고.
무속 길들이기, 믿음을 관리하기
무속은 정말로 제도화된 종교와 다른가
사람들이 무속을 믿는 이유에는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복잡한 이유가 숨어 있다. 그저 재미 혹은 그저 성공이나 행복을 빌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기댈 곳이 없다는 것. 날이 갈수록 증대되는 불확실성도 무속이 인간 심리를 파고들 수 있는 여러 이유 중 하나에 속한다. 무속은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개인의 노력 같은 것이 되었다. 실제 미래가 어떻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렇게 인간이란 속고 싶어 하는 존재이니 속게 내버려 두어야 할까? 개인의 선택일 뿐일까? 우리 사회는 무속 신앙을 제도 안으로 포섭하기를 포기했다. 아니, 애초에 신경 쓰지 않는다.
저자들은 무속인을 직접 인터뷰해 무속인들이 무속 신앙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지, 도대체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는지 끌어낸다. 이들은 정부에는 모두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무속인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고 있다. “기존 종교와 무속을 바라보는 정부 시각이 다르다는 점은 분명하다. 종교 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문체부 측은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 기성 종교를 대상으로 한 사업이 많다며 민족 종교 중에선 천도교, 원불교 정도가 지원 대상이라고 말했다. 2018년 문체부가 발간한 <한국의 종교 현황> 보고서에도 무속 관련 내용은 전무했다. 종단 규모나 조직화 정도에 따라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천차만별인 셈이다.”(199쪽)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속인들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되기를 바라는 걸까? 무속인 범죄에서 법원은 무속인의 직업적 지위를 인정한다. 그렇기에 무속인이 실제로 굿을 했다면 이는 사기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곧잘 내려진다. 무속인들은 자신들이 인정받기를 원하며 ‘무속인 인증 자격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왜 우리 정부는 이들을 보지 않는 걸까. 무속 신앙과 제도화된 종교는 정말로 다른가? 따지고 보면 그렇게 다르지 않다. 제도화된 종교도 초현실적 존재를 믿으며 자신의 성공과 가족의 행복을 빌고 가스라이팅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른다. 그런데 왜 유독 무속만 방치되어 온 걸까? 도대체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저자들은 질문하며 믿음을 길들이는 방안을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