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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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깊어지는 빈곤을 이야기하다 한국에서 빈곤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무슨 소리냐”고 되물을 이들이 많을 것이다. 배곯고 옷 못 입는 사람은 이제 극소수인데, 어디에 빈민이 있냐는 생각에서다. 노동운동가였던 박노해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69억 인구에 비춰보면 국내엔 더 이상 가난한 사람이 없다. 아직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는 빈곤을 너무 협소하게 바라본 것이다. 사람은 밥만으로 사는 것이 아닌데 평균적인 삶의 기준에 한참 미달한 채로 겨우 생존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난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보릿고개를 경험한 노인은 휴대전화가 없어서 괴로워하는 청소년을 보고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말하겠지만, 그런다고 그 청소년의 괴로움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노인 역시 다음 달 방값을 걱정하는 처지라면 결코 자신이 과거에 비해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내의 빈곤층에게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배부른 줄 알라고 하는 말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빈곤은 항상 동시대 같은 사회의 구성원을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관점에서 한국 사회의 빈곤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볼 때 한국 사회에서는 빈곤이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빈곤율(중위소득의 50% 이하의 소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율)은 15%로 OECD 회원국 평균인 11.1%보다 높다. 더 큰 문제는 199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떨어지던 빈곤율이 199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우스푸어 현상이나 만성적인 고용불안의 현실은 이런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예측하게 한다. 우리가 지금 다시 빈곤 문제를 고민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사회의 빈곤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깨다 이 책의 저자는 대학원 재학 시절, 석사 논문을 쓰러 철거민 정착촌에 들어갔다가 눌러앉아 12년을 살았으며, 거기서 고(故) 제정구 선생 등과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도시빈민연구소(한국도시연구소의 전신)의 책임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동안 겪어온 빈곤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시각을 이 책에서 일목요연하게 깨고 있다. 먼저 단지 소득이 부족한 것이 빈곤의 전부가 아니라 주거?고용?교육?건강?시민권 및 정치 참여의 기회 등 다양한 차원에서 결핍 상태에 있는 것이 빈곤이라고 폭넓게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에서는 빈곤poverty이라는 용어 대신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수급자가 아니었음에도 불안정한 임금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리다 도움을 청할 인적 네트워크도 없어 목숨을 잃고만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의 이야기는 다차원적인 빈곤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빈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뿌리 깊은 시각의 역사는 놀랍고 소름끼칠 정도다. “빈민은 그림의 음영과도 같다. 그들은 그림의 대비 효과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다”(필리프 에케), “굶주림은 부드럽고 조용하지만 끊임없는 압력을 가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도록 만든다”(조지프 타운센드), “다른 방도가 있다면 어느 누구도 가난해지기를 원치 않으며 어느 누구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 않을 것이다. (…) 이러한 결핍이 없다면 어느 누가 고생하면서 노동하려고 할 것인가”(버나드 맨더빌).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18세기 사상가들의 빈곤에 대한 이런 관점은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생활습관 및 가치체계를 뜻하는 ‘빈곤문화론’에 대한 논쟁 또한 가난한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일각을 보여준다. 빈곤문화 연구에 따르면 빈곤층들은 대체로 알코올중독자가 많고, 미래에 대해 계획을 세우지 않으며,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많다. 이런 특성이 나타나는 것은 이들이 처한 ‘빈곤’이라는 처지 때문인데, 어떤 이들은 이들의 생활습성을 들어 ‘빈곤은 빈민들 자신의 책임이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구조에 있는데, 오히려 사회구조의 희생자를 비난하는 것이다. 저자는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빈곤에 대한 이런 편견이 하루 빨리 깨져야 한다고 말하며,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빈곤은 곧 정치의 문제 빈곤은 정의하는 것부터가 정치적 결정이다. 예컨대 어떤 사회에서는 소득이 중위소득의 50% 이하 소득자를 빈곤층으로 분류하는가 하면 또 다른 사회에서는 30% 이하만을 빈곤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지원액(예를 들면 최저생계비)의 액수가 얼마일지도 나라마다 다 다를 것이다. 이렇듯 누구를 빈곤층을 규정하고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지원을 할지 정하는 것은 모두 다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사안이다. 누구를 빈민으로 볼 것인가, 그리고 그들에게 얼마만큼을 지원할 것인가에 관한 판단에는 절대 불변의 잣대가 있는 게 아니다. 국정을 맡은 정치 세력이 어떤 계층, 어떤 집단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가, 또 그러한 자신들의 정책에 대한 국민의 여론을 얼마만큼 의식하는가에 따라 결정은 달라진다. 현재의 최저생계비 제도를 개선해서 선진국처럼 상대적 개념의 빈곤선을 도입하자는 논의가 수년 전부터 있었음에도 이제껏 한발짝도 진전이 없는 건, 결국 ‘빈곤층을 위해 돈을 더 쓰고 싶지 않다’는 정치 세력들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다. -본문 49쪽 빈곤은 더 넓은 차원에서도 정치적인 문제이다. 최저임금이나 실업연금과 같은 사회안전망의 문제, 고용 없는 성장이 진행되고 소득양극화가 발생하는 경제의 문제를 간과하고서는 빈곤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이 책의 후반부에 빈곤을 발생시키는 경제 구조의 문제와 가난한 이들의 정치 참여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룬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는 속담이 있듯 빈곤은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