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대한 집착과 의존에서 벗어나기
사랑에 중독되었다는 것은 아주 많은 사람들과 사랑에 빠지거나 너무 자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랑 중독은 우리가 흔히 강박적인 사랑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나 관계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자신의 대부분의 감정이나 행동이 강박적인 사랑에 지배당하는 것을 말한다. 사랑 중독은 자신의 관계가 신체적, 심리적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관계를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랑 중독자들은 자신의 사랑을 자신이 당하는 고통의 깊이로 재려고 한다…….
사랑에 미치고, 관계에 매달리고, 로맨스에 빠지고……
사람은 왜 그렇게 쉽게 사랑에 중독되는가?
사랑에 중독된다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람이나 관계나 로맨스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영화 「위험한 정사fatal attraction」를 보면 한 사람에게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중독된 사랑이 어떤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 수 있다. 글렌 클로즈는 마이클 더글라스에게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그녀는 그를 갖거나 아니면 자신이 죽어야만 했다.
이와 약간 다른 유형의 사랑 중독이 있는데, 이 경우는 특정한 사람에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 그 자체에 중독된다. 이러한 유형을 ‘관계 중독’이라고 한다. 관계 중독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관계 중독에 빠진 사람은 쉽게 자기 파트너를 떠나보낸다. 그러나 그들은 누군가가 없이는 자신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가 끝나면 이런 유형의 사랑 중독자들은 재빠르게 다른 사람들과 사랑에 빠진다. 종종 그들은 지금의 관계가 끝날 때를 대비해서 다음 상대를 준비해 놓기도 한다.
또 다른 형태의 관계 중독은 파트너가 무슨 짓을 해도 한사코 그 파트너에게 매달리는 경우이다. 심지어 파트너가 자신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경우에도 파트너를 떠나지 못한다. 이런 유형의 관계 중독자들이 항상 외고 다니는 만트라는 “나는 당신이 미워요. 그러나 떠나지는 마세요.” 혹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난 그 사람을 사랑해.”이다. 겉으로 드러난 양상은 달라도, 관계 중독자들은 자신의 파트너에게 강박적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이 집요하게 매달리는 것은 바로 관계 그 자체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새로운 파트너가 나타나 줄 때까지, 지금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다.
앞의 두 경우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랑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파트너에게도, 관계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이 중독된 것은 로맨스, 바로 마법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낭만적인 사랑을 관능적이고 다른 무엇보다 특별한 사랑이라고 불렀다.) 로맨스 중독자들은 열정 속에서 황홀감을 얻기 때문에, 성적인 끌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열정이 사라지면 다른 사람에게로 관심을 옮겨간다. 로맨스 중독자들은 데이트, 촛불 아래 만찬, 주말에 펜션으로 여행가는 것과 같은 낭만적인 의식儀式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들이 벌이는 낭만적인 이벤트들은 어린 시절 그들이 로맨스에 대해 품었던 환상을 재현하는 것에 불과하다.
로맨스 중독자들은 성숙한 관계를 맺으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로맨스를 원할 뿐이다. 로맨스 중독자들은 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환상을 경험할지 모른다. 혹은 그들은 자신의 환상을 실현해줄 사람과 잠깐 관계를 맺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로맨스 그 자체이지,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가 아니다. 그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로맨스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만나고 있는 사람이나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는 부차적인 것이다.
저자는 사랑 중독을 사람에 대한 중독, 관계에 대한 중독, 로맨스에 대한 중독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 중독의 형태들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사랑 중독으로 쉽게 전환된다. 예를 들어, 한 로맨스 중독자가 있다고 하자. 그녀는 폭풍 같은 로맨스를 거친 후 자신의 연인에게 중독된다. 그러다 관계가 나빠지자 그녀는 더 이상 그 연인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녀는 더 이상 강박적으로 그 연인에게 집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녀의 사랑 중독이 해결된 것이 아니다. 이제 그녀는 기어를 바꾸어 연인에게 집착하지 않는 대신, 관계 그 자체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의 연인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그 관계가 가져다주는 이익에 집착한다. 어쩌면 그녀는 경제적으로 연인에게 의존해 있는지 모른다. 아니면 그 관계가 주는 평안한 일상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는 아무도 없이 혼자 지내는 것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낫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이유가 무엇이건, 그녀는 집착하는 대상을 바꾼다. 전에는 사람에 집착했다면 이제 그녀는 관계에 의존한다. 그녀 자체는 변한 것이 없지만, 그녀가 중독된 대상만큼은 변한 셈이다.
상처만 남기는 사랑에서 치유하는 사랑으로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 결핍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메우려고 합니다. 우리는 남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우리에게 괜찮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기를 바랍니다. 이 경우 사랑은 우울증 치료약이나 내가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신분증이 되어버립니다. 왜냐하면 남들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더 이상 행복해질 수 없으며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자신의 행복과 정체성을 남들에게 기댄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행복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제대로 돌보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자신을 사랑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하게 될 겁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우리에게 몰려올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얻고 그것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생명과 삶을 나누는 것으로 변해야 합니다.”
마틴 배첼러(martine batchelor, 유럽에서 활동하는 영적 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