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키아 카르타고 이야기

한종수 · 戦争/歴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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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키아-카르타고의 역사를 국내 최초로 소개한 통사. 그리스-로마 문명의 조연으로만 머물러 있던 페니키아인들의 사라진 문명을 오롯이 복원하여 흥미진진한 고대 지중해 세계의 한복판으로 독자들을 데려간다. 세계 최초의 항구도시 비블로스의 고고학 유적지에서 출발하여 카르타고의 비극적인 멸망까지 3천 년 역사가 생생한 필치로 펼쳐진다. 책의 전반부는 페니키아인들의 이야기다. 알파벳과 갤리선의 발명자인 페니키아인들이 백향목과 자줏빛 염료로 해양 제국을 일으키고, 아시아 대륙의 거대한 제국들과 상호작용하며, 새롭게 떠오르는 강자 그리스인들과 경쟁한 역사가 소개된다. 책의 후반부는 페니키아인들의 후손인 카르타고인들의 역사다. 오늘날 북아프리카 튀니지에 터전을 마련한 카르타고는 서지중해의 교역망과 패권을 장악했지만, 3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 등 로마와 치열한 투쟁을 벌이다가 잿더미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이 책은 고대 지중해 세계의 주요한 일원이었던 페니키아-카르타고인들의 이야기, 즉 그리스-로마 문명에 가려 숨겨져 있던 빛나는 반쪽을 복원함으로써 고대사의 새로운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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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次

머리말 1장 페니키아의 탄생과 발전 페니키아, 역사의 무대에 다시 등장하다 | 세계 최고最古의 도시 비블로스 페니키아의 백향목 | 티레의 등장과 자주색 염료 그리고 역청 고대 오리엔트와 페니키아의 격변 | 국제 상업도시 우가리트 철기시대로의 격변 2장 페니키아의 황금시대 페니키아의 장자 시돈 | 페니키아 알파벳 | 티레와 이스라엘 왕국의 밀월 대항해시대와 교역 거점 건설 | 페니키아인이 만든 또 하나의 걸작 티레의 패권 장악과 번영 | 페니키아의 다양한 산업 | 멜카르트의 기둥 페니키아의 성공 이유 3장 제국 사이의 페니키아 초강대국 아시리아 시대의 페니키아 | 신바빌로니아 시대의 페니키아 페르시아 패권 아래서의 부흥 4장 그리스인과의 전쟁과 페니키아 본토의 쇠락 바다의 라이벌 | 페르시아 전쟁의 발단이 페니키아? 이오니아 봉기와 페니키아인 | 숙적 아테네의 부상 아테네의 해군 확장과 페니키아의 출정 | 아르테미시온 참사 살라미스 결전 전야 | 대패와 후유증 | 페니키아와 그리스의 계속되는 전쟁 티레 공방전 | 티레의 몰락과 카르타고의 부상 페니키아인의 이모저모 5장 카르타고의 탄생과 발전 카르타고의 건국신화 | 엘리사 전설의 진상 | 카르타고의 위치 카르타고의 대두 | 카르타고 ‘제국’의 형성 | 그리스인과의 투쟁 시칠리아를 둘러싼 지중해 민족들의 각축 | 말코스의 쿠데타 마고 왕조의 서지중해 패권 장악 | 로마와의 조약 체결 페르시아 전쟁 전야 | 1차 시칠리아 전쟁 | 동맹의 종말 | 농업대국 카르타고 한노의 대항해 | 히밀코의 항해 | 카르타고의 사하라 진출 2차 시칠리아 전쟁 | 3차 시칠리아 전쟁 | 카르타고와 그리스가 서로에게 미친 영향 휴전과 카르타고 공화국 | 4, 5차 시칠리아 전쟁과 디오니시우스의 죽음 20년의 평화와 티몰레온의 등장 | 6차 시칠리아 전쟁 | 카르타고의 두 번째 참패 7차 시칠리아 전쟁 | 시칠리아와 이탈리아의 전란 | 피로스 전쟁 카르타고의 마지막 시라쿠사 포위 | 카르타고-로마 동맹과 피로스의 몰락 6장 1차 포에니 전쟁 전야 정치제도 비교 | 군사력 비교 | 카르타고의 경제력 7장 1차 포에니 전쟁 어이없는 시작 | 아크라가스의 혈투 | 로마 해군의 탄생 | 밀라이 해전 넓어지는 전장 | 에크노무스 해전과 로마군의 아프리카 침공 바그라다스 전투와 대해난 사고 | 늪으로 빠져드는 두 강대국 코끼리부대의 궤멸 | 릴리바이움 공방전 | 드레파눔 해전 카르타고의 태만과 하밀카르의 등장 | 카르타고의 효웅, 하밀카르 바르카 전쟁의 승패를 가른 두 나라의 재정정책 | 로마 함대의 부활과 혁신 로마와 카르타고 함대의 재등장 | 아이가테스 해전과 강화조약 1차 포에니 전쟁 총평 8장 두 전쟁의 막간 용병 전쟁과 하밀카르의 와신상담 | 스페인의 바르카 가문 로마와의 조약과 한니발의 등장 | 한니발의 데뷔전 9장 2차 포에니 전쟁 사군툼 그리고 개전 | 대원정 준비 | 전설적인 대원정의 시작 알프스를 넘다 | 북이탈리아의 갈리아인 | 티키누스 전투 | 트레비아 전투 아르노 습지 횡단 | 트라시메노 전투 | 마케도니아의 접근 굼벵이 파비우스의 등장 | 칸나이 전투 | 한니발의 딜레마 원로원을 중심으로 뭉친 로마인 | 남부 이탈리아의 ‘지배자’ 한니발 시라쿠사와 사르데냐가 반로마 연합에 가세하다 한니발과 필리포스 5세의 동맹 | 캄파니아의 한니발 | 시라쿠사 함락 타렌툼 함락 | 한니발 대 로마 | 여전한 한니발의 위력 성문에 한니발이 있다 | 빛을 잃은 한니발 | 한니발과 마르켈루스의 용쟁호투 마르켈루스의 어이없는 전사 | 바르카 대 스키피오 | 스키피오의 등장 카르타헤나 함락 | 바이쿨라 전투 | 메타우루스 전투 | 일리파 전투 너무 젊은 집정관 | 스키피오의 아프리카 상륙 | 누미디아의 상실 한니발, 이탈리아를 떠나다! | 자마 전투 10장 마지막 번영 수페트 한니발 | 한니발의 망명 | 시리아의 대패 한니발의 2차 망명 | 스키피오의 재판과 죽음 한니발의 최후 | 카르타고는 멸망해야 한다! 11장 포에니의 바다가 사라지다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고대 지중해를 주름잡던 항해와 상업의 민족 페니키아-카르타고의 3천 년 역사 알파벳과 갤리선의 발명자들, 그들은 왜 역사에서 지워져버렸는가? 고대 지중해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피라미드로 상징되는 이집트 문명, 그리스 신화와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아테네를 위시한 그리스의 폴리스들과 페르시아 제국의 대전쟁, 그리고 지중해를 자신의 호수로 만든 끝판왕 로마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들 못지않게 활약했고, 몇 세기 동안 그리스와 로마를 압도하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페니키아인들이다. 세계 최초의 항구도시와 해군을 건설한 사람들이 바로 페니키아인들이었고, 그리스인들이 지중해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훨씬 전부터 스페인과 시칠리아 등 여러 식민도시를 건설한 사람들도 페니키아의 후손인 카르타고인들이었다. 고대 지중해의 상업과 바다를 장악했지만 결국 그들은 그리스-로마 세계에 패배하여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다. 알파벳의 발명자임에도 자신들의 기록을 거의 남기지 못했다는 아이러니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서양 고대사의 조연으로만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정치·경제적으로는 그리스-로마 문명의 라이벌이자 종교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최대 강적이었던 페니키아-카르타고 문명의 전반적인 역사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페니키아 문명을 일으킨 백향목과 자줏빛 염료 고대 페니키아인들은 지금의 시리아-레바논 해안, 이스라엘 북부에 여러 도시를 건설하여 살았다. 비록 한 번도 정치적 통일을 이루지 못했지만, 시돈, 티레, 비블로스, 아라두스, 베리투스 등 페니키아의 항구도시들은 기원전 1200~800년에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페니키아의 라이벌이던 그리스인들 역시 정치적 통일을 이루지 못했지만, 단 한 번 힘을 모아 대제국 페르시아에 대항해 싸운 역사가 있다. 반면 페니키아인들은 아시아 대륙의 대제국들(아시리아, 신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제국)에 복속되어야 했다. 그리스-로마가 주도권을 잡은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페니키아인들은 상업의 민족, 악명 높은 ‘이코노믹 애니멀’로 폄훼되고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명예로운 전사 민족으로 여겨졌다. 고고학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도시 비블로스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을 기원전 8800년까지로 보고 있다. 기원전 2900년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 도시도 발굴되었다. 비블로스 유적지에는 망루, 도로, 배수시설 등이 있었고 성벽의 두께는 25미터에 달했다. 그러나 비블로스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이후 페니키아는 시돈과 티레, 두 도시를 투톱으로 지중해 해상무역을 통해 큰 번영을 구가했다. 페니키아의 주요 수출품은 2,000년 동안 지중해 최고의 목재였던 백향목(레바논 삼나무)이었다. 페니키아는 주요 고객인 이집트와의 교역에서 백향목을 수출하고 파피루스를 수입했는데 비블로스라는 이름이 여기서 파생되었다(바이블Bible의 어원도 뿌리가 같다). 백향목과 함께 페니키아에 막대한 부를 가져온 것은 바다달팽이에서 추출한 자주색 염료였다. 매우 짙은 자주색을 띠는 이 염료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고가의 사치재로 그리스인들은 이 색을 포이닉스phonix라고 불렀으며 페니키아phoenicia와 포에니poeni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백향목과 자줏빛 염료, 이 두 교역품은 페니키아 문명을 말 그대로 일으켜 세웠다. 해상무역이 촉발한 알파벳 발명 해상무역에 나선 페니키아인들은 여러 민족의 언어를 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메소포타미아의 기존 설형문자나 이집트 상형문자로는 표기가 너무 번거로워 장부나 문서를 쓰기 어려웠다. 당연히 쉽고 빠르게 표기할 수 있는 문자의 필요성이 증가했다. 결국 기원전 11세기 중반 페니키아인들은 우가리트 문자를 개량하여 22개의 알파벳으로 구성되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페니키아 문자 체계를 만들었다. 이는 획기적인 발명이었으므로 그리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중해 문화권에 전파되었다. 심지어 종교적으로 완전히 대척점에 있던 이스라엘인들조차 이를 받아들여 히브리 문자를 만들 정도였다. 특히 기원전 10세기 히람 1세 치하의 티레는 그 유명한 솔로몬 왕 치하의 이스라엘과 긴밀한 경제협력 관계를 맺기도 했다. 일례로 이스라엘의 성전을 페니키아의 백향목과 자재들로 페니키아 기술자들이 건설했다. 그 대가로 솔로몬은 대량의 밀과 양질의 올리브유를 티레에 보냈다. 이스라엘은 내륙 교역로와 군사적 안정을 제공하고 페니키아는 선박, 상업, 기술 노하우를 제공했다. 고대 세계의 막강한 종교적 라이벌 간의 협력이었다(성서에 나오는 악명 높은 ‘바알’ 신은 페니키아의 최고신이다. 한니발[바알의 은총], 하스드루발[바알의 도움] 등 카르타고 남성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그러나 큰 그림으로 보면 페니키아인들은 알파벳을 창조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의 기록을 후세에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서구 문화의 양대 축을 이룬 그리스-로마 세계와 일신교의 기초가 된 헤브라이즘 세계는 강력한 라이벌인 포에니 세계를 일생일대의 적으로 간주하고 그들의 역사를 곡해하고 철저히 말살해버린 것이다. 활발한 식민지 건설과 갤리선의 탄생 그리스인들은 지중해 각지에 식민도시를 건설했다. 나폴리, 이스탄불, 마르세유, 타란토, 시라쿠사 등이 그리스인들이 건설해 아직도 남아있는 도시들이다. 그러나 지중해 세계에서 그리스인들의 활약은 역사의 절반에 불과했다. 페니키아인들은 그리스인들보다 먼저 해외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들이 세운 스페인의 카디스, 카르타헤나, 바르셀로나, 말라가, 리스본, 탕헤르, 리비아의 트리폴리, 사르데냐의 칼리아리,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등은 지금도 건재하다. 그리스인들의 도시가 대부분 동지중해와 흑해에 있었던 것과 달리 페니키아인들이 건설한 도시는 대부분 서지중해와 대서양 연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면 그들의 항해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이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고 불렀던 오늘날 지브롤터해협의 원조 명칭은 페니키아인들이 칭한 ‘멜카르트의 기둥’이었다(멜카르트는 페니키아의 신이다). 백향목이라는 최고의 선박용 자재를 가진 페니키아인들은 타고난 엔지니어이기도 했다. 페니키아인들은 사람으로 치면 척추에 해당하는 용골과 갈비뼈에 해당하는 빔과 프레임으로 선체의 뼈대를 만들어 원양항해에 적합한 배를 만들었다. 이미 기원전 9세기부터 노를 이층으로 배치하는 바이렘식 갤리선을 건조했고 선수에는 충각을 달아 전투에 사용했다. 고대 지중해를 주름잡던 갤리선의 탄생이었다. 갤리선은 점점 대형화되어 훗날 카르타고는 5단노선까지 보유했다. 페니키아인들은 이 최첨단 선박으로 지중해를 사실상 ‘페니키아의 바다’로 만들었다. 페니키아인들이 계속해서 서쪽으로 진출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찾고자 한 것은 바로 금속이었다. 특히 스페인은 금속의 보고였고 틴토강 유역에 유명한 은광이 있었다. 『박물지』로 유명한 플리니우스는 “이집트인은 왕조를 만들었고, 그리스인은 민주주의를 만들었으며, 페니키아인은 상업을 만들었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페니키아 본토의 몰락과 카르타고의 부상 오리엔트에 아시리아, 신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등의 대제국이 들어서면서 페니키아의 처지는 저항과 복속이 반복되는 역사였다. 페르시아 제국의 관대한 지배 아래에서 페니키아는 다소 자율성을 회복하고 번영을 누렸지만 그리스라는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으로 점차 해상에서 패권을 상실하게 되었다. 페니키아는 두 차례의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 해군력으로 참전했지만 대패했고, 이후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오리엔트를 통일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티레가 정복당해 파괴되었다(기원전 332년). 페니키아 본토의 몰락으로 새롭게 지중해의 여왕이 된 것은 티레의 주민들이 이주해 건설한 카르타고였다. 카르타고 건설 시기는 기원전 814년으로 보는데, 이는 로마가 건국되었던 753년보다 약 반세기 이상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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