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21세기 들어 세계 역사학계, 경제사학계, 중국사학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저작물
최근 건명원에서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가 “대항해 시대와 대분기”라는 주제로 강의하는 것을 TV로 본 일이 있다. 이 ‘대분기’라는 용어가 학자들 사이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케네스 포메란츠의 저서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가 나오고 부터이다. 그리고 이 책을 우리 출판사가 처음 접한 것은 10년도 더 된 일이다. 이 책을 출판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먼저 번역하려면 1000년가량의 동서양 역사적 흐름을 꿰뚫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양의 최근 이론들까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만큼 이 책이 거론하는 범위가 넓고 방대하다.
개관
원래 역사학계에서 경제 발전의 원인과 형태에 대한 논의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주로 ‘자본주의 이행’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도 지리적으로 유럽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영국과 서유럽 그리고 독일을 포함한 동유럽의 자본주의 이행 과정이 판이하게 달랐다는 것에 관한 논쟁이었다. 그뿐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의 비교사도 한때 큰 논쟁의 중심에 있기도 했다. 그것은 “18세기에 과연 영국처럼 프랑스에도 농업자본주의가 존재했는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이러한 논쟁이 잠시 잦아드는가 싶더니 20세기가 끝나기 몇십 년 전부터 본격적인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중국이 부상하면서 전 지구적 관점에서 새로운 논쟁이 활발히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한 세대 전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한 이래, 중국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세계의 공장’으로 떠올랐고 미국에 이은 경제대국이 되었다. 이 역시 진정한 세계화를 알린 신호가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그 이후 역사학계나 경제사학계에서 가장 많은 논쟁이 벌어진 것은 아마도 “서유럽과 동아시아 사이에 경제 발전 수준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라는 좀더 세계사적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려는 시도가 아닐까 싶다. 사실 그동안 유럽 중심의 역사상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려는 시도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그중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포메란츠의 이 책 《대분기》가 아닌가 한다. 이 책이 나온 이후 ‘대분기(大分岐)’라는 용어는 유럽 중심적 역사 해석의 대안으로 떠올라 경제사학계의 새로운 유행어가 되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은 대단하다. 포메란츠는 이 책에서 18세기 서유럽(주로 잉글랜드)과 양쯔 강 삼각주 지역의 경제 발전 및 쇠퇴를 탐색한다. 그리하여 포메란츠가 궁극적으로 밝히려 한 결론을 감수자의 정리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실 포메란츠가 다루는 근대 세계의 형성 과정(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럽에서 공업혁명이 성공한 원인)에 대한 전반적인 서술은 다채로운 지역의 비교 및 그 상호적 또는 세계적 연관성(저자는 이것을 ‘conjuncture’라는 용어로 표현한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워낙 광범위하고도 복잡한, 그리고 아주 다양한 방면에 대한 재검토를 시도하고 있어 그 본문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면서 그의 논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비교와 상호 연관성이라는 시각을 통해 종래의 유럽중심주의적 역사관을 낱낱이 검토하면서 그에 대해 아주 대담한 도전과 결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반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론적 관점을 탈피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의 많은 지역과 그들 사이의 상호 작용을 통해 근대 세계 경제가 형성되는 과정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다.
그의 주장을 요약해보면 아주 간단하다. 오늘날 서유럽의 패권을 결정지은 대분기의 시점은 기껏해야 1750년대 중반 정도라는 것이다. 서유럽의 패권 장악에 결정적이었던 공업혁명의 성공 원인도 근대 초기(15세기 전후)나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내재적인 유럽의 우위나 장점을 찾는 서구 학계의 전통적 시각에 대해 그는 분명하게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그는 1750년 무렵에도 중국의 장난이나 일본, 인도 등의 선진 지역과 비교하면 영국(과 서유럽)의 우위라는 것은 결코 존재한 적이 없다는 점을 누차 강조한다. 아울러 이러한 지역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생태적 위기에 직면해 있었는데, 그럼에도 영국만이 공업혁명을 성취하고 나아가 근대 세계 경제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석탄(노천 탄광)의 존재 덕이라고 그는 누차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석탄의 존재(마찬가지로 경제적 상황이 비슷한 중국의 장난에는 이러한 행운이 없었다)는 그가 여러 차례 강조하는 대분기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지목되는데, 이것이 증기 기관의 발명 및 이용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이른바 공업혁명과 기술 혁신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는 구대륙의 제한된 토지에서는 확보할 수 없는 신대륙 자원―원면, 설탕, 담배, 목재 등과 무엇보다도 은이라는 귀금속―의 확보라는 행운(서유럽의 폭력 또는 무장 교역 및 해외 약탈의 전통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이 절대적 조건이었다는 것이 그의 또 다른 강조점 가운데 하나이다.”
즉 1750년 전후에 연구 대상 지역인 양쯔 강 삼각주 지역과 잉글랜드의 상황은 거의 비슷했지만 그 이후 상황이 급변해 두 지역의 차이가 빠른 속도로 벌여졌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석탄의 존재와 신대륙에서 오는 여러 자원의 이용을 든다. 따라서 저자가 그리고 있는 18세기 두 지역의 상황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저자에 따르면 18세기 중국의 생활수준과 생산 관행은 잉글랜드와 비슷한 상태였다. 농업 생산, 농촌 공업, 시장의 효율성에서부터 공중보건, 열량 섭취, 기대수명에 이르기까지 18세기 두 지역의 상태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비슷했으며, 모두가 원산업화의 막다른 골목에 접근해 있었다.
“실제로 중국의 주요 지역은 의외의 부분에서, 예를 들면 1인당 이용 가능한 연료 공급 같은 측면에서 유럽 쪽보다 앞섰던 것 같다. 게다가 사실상 공업화 시발지인 영국의 경우, 유럽의 다른 많은 지역에서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이 거의 없었다. 나아가 영국은 목재 공급, 토양 고갈 및 그 밖의 중요한 생태적 대책에서 중국 내 일부 비교 지역―양쯔 강 하류 삼각주―보다 나았던 것 같지 않다. 따라서 만약 인구 성장과 생태적 영향으로 중국이 ‘쇠락’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면, 해외 자원과 매장 에너지의 사용에 대한 잉글랜드의 돌파구가 결합함으로써(어느 정도 지리적으로 좋은 여건) 구제된 당시 유럽의 내적 과정도 똑같이 벼랑 끝―‘도약’이 아니라―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유럽이 아직 위기 상황이 아니었다면, 십중팔구 중국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49~50쪽)
그렇다면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어떠했는가? 동아시아는 극심한 생태 환경의 위기에 빠져들었다. 인구 증가 및 에너지 비용의 증가에 따라, 기존의 생산 형태로는 생산자들의 ‘노동 강화’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이것들이 생태 환경의 위기를 가속화했다. 물론 잉글랜드도 인구가 증가하고 노동 강화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동아시아처럼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처럼 영국이 중국과 다른 역사적 경로를 밟은 것은 신대륙의 해외 자원과 값싼 화석 에너지(석탄)를 이용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 덕이었다. 이러한 이점이 없었다면 잉글랜드도 중국과 비슷한 길을 걸었을 것이다. 결국, 서유럽과 중국이 성장과 침체라는 서로 다른 역사적 경로, 즉 ‘대분기’로 나아간 시기는 19세기 이후라는 주장이다. 이 ‘대분기’는 서유럽이 자본집약적 길을 걸은 반면에 동아시아는 계속 노동집약적 방식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뜻한다. 포메란츠는 “양쯔 강 삼각주는 왜 잉글랜드가 아니었나?”라는 질문을 하기보다는 “잉글랜드는 왜 양쯔 강 삼각주가 아니었나?”라는 문제 제기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누차 언급하지만 화석 연료와 신대륙의 자원 이용 덕이다.
그러면 왜 포메란츠는 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