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단편소설 「전망 좋은 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중견 작가 박석근의 두 번째 단편집 『인어를 보았다』가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됐다. 이 소설집에 실린 일곱 편의 소설 중 다섯 편은 ‘아우라 없는 복제들의 세상’의 다름 아니다. 이 다섯 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애초 없던 아우라를 만들거나, 잃어버린 아우라를 되찾거나,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흉내 내는 원곡 가수를 살해하려 한 모창 가수의 파란만장한 일대기인 「이미테이션」에서 원본과 똑같아지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그’가 그러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에서 이사를 한 뒤 전에 살던 집에 숨겨놓은 연서(戀書)를 한사코 찾으려는 ‘그녀’가 그러하고, 표제작 「인어를 보았다」에서 인어를 봤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주인공 ‘창수’가 그러하고, 「삼가 명복을 빌다」에서 잘나가던 대기업 사원이 폐인이 된 이유가 그러하며, 아우라 없는 복제품이 원본보다 더 중히 여겨지는 시뮬라크르 세계에서 서서히 도태되고 있는 예술가들을 그린 「풍도기행(風島紀行)」의 가난한 예술가들 또한 ‘아우라 없는 복제들의 세상’에 겨우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다소 주제가 모호한 이 단편집의 소설 중에서 「단식 시민」은 강력한 주제를 가진 특별한 소설이다. 2114년의 미래의 세계에서, 소설 속의 주인공은 홀로 ‘인간의 미각을 보장하라’ 즉, ‘음식 맛을 보장하라’며 생명을 건 단식을 한다. 음식 대신 고농축 영양제를 복용하는 미래 시대의 가상 소설이지만, 식당을 강제 폐쇄당하고 음식의 맛을 잃은 채 살아가는 인류의 미래가 유토피아 세상이 아닌 디스토피아 세상임을 작가는 익살스런 문체로 풍자하고 있다. 이 밖에 에세이적 소설인 「밤으로의 여행」이 수록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