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미국 등 세계 대다수 나라는 팔레스타인인의 ‘자살 폭탄 공격’을 ‘테러’라고 규정한다. 하마스는 자살 폭탄 테러를 주도하는 악랄한 조직이고, 이스라엘이 자살 폭탄 공격에 대비해 팔레스타인을 선제공격하거나 고립 장벽을 건설하는 것은 생존권에 해당하므로 지탄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은 자살 폭탄 테러를 ‘순교’라고 칭한다. 그리고 하마스 지도자 야신은, 이러한 순교는 모든 나라의 역사에서 등장했으며 대한민국 역사에도 그런 희생적인 저항이 있지 않았느냐고 되묻는다. 만화 속 팔레스타인인들은 활동가들에게 “당신의 나라에 가서 우리의 진실을 알려주세요”라고 이야기한다. 이 만화를 한국적 시각에서 읽는 것은 곧 팔레스타인인의 호소에 답하는 작은 시작이 될 것이며, 비로소 역사 현장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오슬로 협정의 불편한 진실
- 자치 정부를 수립한 후에도 왜 인티파다가 일어났을까?
1993년 체결된 오슬로 협정은 대외적으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PLO를 합법적 정부로 인정,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의 공존 인정이라는 평화 협정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듬해 협정을 주도했던 PLO의 아라파트 의장과,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 및 시몬 페레스 외무 장관이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오슬로 협정이 체결된 지 7년 후 팔레스타인 민중은 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인의 반이스라엘 저항 운동)를 일으켰다. 이 책 전체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라미 부자 사건도 바로 2차 인티파다 기간에 일어났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스라엘군이 전면 철수하면서 빼앗은 권력을 이양했고,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도 해결하기로 했는데 어째서 팔레스타인인은 또 인티파다를 일으켰을까? 역시 팔레스타인은 공존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내쫓고 싶었던 걸까?
책은 1장에 등장하는 에드워드 사이드라는 미국 영문학자의 말을 빌려 그 이유를 설명한다. “오슬로 협정의 본질은 점령 상황이 지속되도록 팔레스타인이 공식적으로 동의해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오슬로 협정에는 팔레스타인의 자결권과 관련해서 단 한마디도 없습니다. 협정에 따르면 ‘안보’라는 명분으로 이스라엘은 어디든, 어떤 팔레스타인인이든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반면 팔레스타인 경찰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인을 체포하거나 잡아 가둘 수 없습니다.” 협정 내용을 샅샅이 살펴보면 서안과 가자 지구 영토 가운데 2퍼센트에서만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행정권과 경찰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다. 그 외 지역에서는 부분적 권리만 인정될 뿐이다. 행정권과 경찰권을 극소 지역에서만 행사할 수 있는 국가가 과연 엄연한 독립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화자 진이 평화 협정을 가리켜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말한 데에는 이런 숨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하마스가 오슬로 협정은 물론 자치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에도 강력히 반대했다. 평화 협정이란 말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 실상은 지배 협정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치 정부가 들어섰다고는 하나 이스라엘이 정치 경제 사회를 장악한 환경에서 팔레스타인 국민은 저임금, 고물가, 부실한 의료 체계에 시달리는가 하면, 이스라엘이 세운 검문소 탓에 가자와 서안 지구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도 없고, 이스라엘의 점령촌은 갈수록 증가했다. 팔레스타인 국민은 뒤늦게 현실을 자각하고 “오슬로 협정 파기”를 주장했으나 사태를 돌이키기에는 늦었다.
결국 팔레스타인 민중이 선택한 길은 2차 인티파다였다. 평화 협정에 품었던 기대를 짓밟히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사라지자 젊은이들을 주축으로 한 시위가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최첨단 미제 군사 무기로 공동 주택 단지와 민간인을 공격했다. 화염병과 돌멩이 대 최첨단 무기는 결과가 너무도 뻔한 싸움이었고, 팔레스타인 민중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다. 바로 악명 높은 ‘자살 폭탄 테러’다.
자살 폭탄 공격은 테러인가, 순교인가
- 팔레스타인 문제의 핵심은 ‘점령’이다
이스라엘, 미국 등 세계 대다수 나라는 팔레스타인인의 ‘자살 폭탄 공격’을 ‘테러’라고 규정한다. 하마스는 자살 폭탄 테러를 주도하는 악랄한 조직이고, 이스라엘이 자살 폭탄 공격에 대비해 팔레스타인을 선제공격하거나 고립 장벽을 건설하는 것은 생존권에 해당하므로 지탄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입장이 달라도 이렇게나 다를까. 팔레스타인인은 자살 폭탄 테러를 ‘순교’라고 칭한다. 2장을 보면, 하마스 지도자 야신은 이슬람은 자살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순교다, 이러한 순교는 모든 나라의 역사에서 등장했으며 대한민국 역사에도 그런 희생적인 저항이 있지 않았느냐고 되묻는다. 작가가 1, 2권에 걸쳐 여러 차례 강조하는 요지도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김구, 윤봉길, 안중근을 테러리스트가 아닌 열사라 부른다. 일제 압제하에 우리가 벌였던 항일운동을 생각하면 끔찍하고 야만적이라 생각하는 자살 폭탄 공격과 그 공격의 주체인 팔레스타인인을 납득하기가 그리 어렵지만도 않다. 또 아이러니한 점은 2004년 가자 지구를 무력으로 장악할 마음이 없으니 공존과 평화의 길을 모색하자고 제안한 사람이 바로 하마스의 지도자 야신이며, 2006년 자살 폭탄 테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조직 역시 바로 하마스라는 것이다.
하마스는 한국의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처럼 선거를 통해 집권한 여러 세력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도 팔레스타인 투쟁을 지나치게 대표하고 있는 이유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테러 집단으로 지정하고 이러한 사실을 미디어를 통해 끝없이 반복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유독 하마스를 집중 공략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하마스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인 탓이다. 자신들의 점령과 침략을 합리화하는 데에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만큼 좋은 거리도 없는 것이다.
물론, 화자인 케이트도 말했듯 무고한 민간인까지 희생시키는 자살 폭탄 공격은 정당화될 수 없다. 감수자 덩야핑의 글에서도 이 생각을 정확히 읽을 수 있다. “투쟁하는 세력들이 대의를 갖는다 해서 오류를 범하지 않거나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어떤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 이런 행위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뒤를 이은 말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만 문제의 핵심에는 1967년 이래 반세기간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식민화가 놓여 있다. 이것을 빼놓고는 어떤 문제도 얘기할 수 없다. (…) 로켓, 박격포 등에 의해 이스라엘인 50여 명이 사망한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이스라엘의 점령과 침공이 없었다면 하마스의 로켓 발사도, 연대하러 온 활동가가 살해당하는 일도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현상’에 집중한 나머지 그 현상이 나타나기까지의 원인을 간과하는 실수를 범하곤 한다. 팔레스타인인의 자살 폭탄 공격은 옳지 않다. 결코 옳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러한 비극적 공격을 감행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무력 점령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제의 시작은 바로 ‘점령’에 있는 것이다. 평화와 공존을 이루자는 팔레스타인 지도자의 제안에 최첨단 군사 무기로 답한 쪽은 오히려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을 안 후에야 팔레스타인의 폭력적 투쟁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테다.
이 만화는 과연 객관성을 상실했는가
- 어느 공군 조종사의 고백 “이스라엘 공군이라는 사실이 이제는 부끄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가 과연 공정한가, 객관적인가 하는 물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이 책을 통해 팔레스타인 문제를 처음 접하는 이들 가운데 혹자는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사태를 살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1권 전면에 등장한 라미 부자와 같은 팔레스타인 희생자 사례만 내세워 독자들을 감정놀음에 빠뜨리고, 그 결과 팔레스타인 상황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저해한다는 문제 제기는 일견 일리 있어 보이기도 한다.
이에 저자는 2권에 비팔레스타인인의 의견도 담았다. 2장을 보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