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 서기실의 암호

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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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이미지는 더 할 수 없이 미화되었다. 여론조사에서 77.5%가 김정은에게 신뢰가 간다고 답했다 한다. 과연 그럴까? 김정은은 누구이며 북한은 어떤 사회인가? 온 세계의 이목이 북한과 그 지도자 김정은에게 쏠리고 있는 지금,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가 밝히는 평양 심장부 이야기는 북한의 정확한 실상을 보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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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次

머리말 -- 10 프롤로그 -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 14 1장 | 핵으로 가는 길 김일성, “교황을 평양에 초청하라” -- 18 남북 유엔 동시가입 막전막후 -- 24 주중 이탈리아 대사의 방북에 들뜬 김씨 부자 -- 29 모택동, 김일성에게 “조선은 핵무기 꿈도 꾸지 말라” -- 40 제네바 핵합의는 시간 끌기 기만극 -- 52 북한 농촌 현실 보고 외국대표단 ‘경악’ -- 55 영국의 비밀접촉 제의에 김정일 흥분 -- 57 실세 리수용은 왜 힘이 센가 -- 61 김정일의 저팔계식 실용외교 -- 64 “동무들은 나처럼 살지 마시오” -- 66 북한외교가 강해 보이는 이유 -- 69 김용순을 제친 강석주 -- 71 잘 나가던 장인 숙청, 내 앞길에도 암운 -- 79 강명도 탈북이 열어준 나의 첫 해외 발령 -- 84 2장 | 고난의 행군 외교 북한외교관 담배 밀수 사진, 세계에 공개돼 -- 88 노르웨이에서 위조여권으로 체포된 장성택 -- 93 식량원조 받으러 동분서주, 덴마크 지원 약속에 눈물 -- 98 황장엽 탈북, “남조선 납치” 주장하다 “비겁한 자여”로 돌변 -- 103 스위스에 북한 우표 120톤 팔고, 덴마크에 또 팔았다가 -- 105 덴마크TV서 본 영화 <태백산맥>, 한국 와서 임권택 감독 만나 -- 108 북한을 뒤흔든 ‘심화조 사건’, 숙청 주도자도 처형 당해 -- 110 병원도 못 가는 외교관들, 친구 김춘국 대사의 죽음 -- 113 독일이 건넨 동독 유학생 명단, 보위부가 간첩단으로 조작 -- 115 치즈 원조 받으면서 “싣고 갈 배도 제공해 달라” -- 117 김정일, “태영호가 원하는 것 다 해주라” -- 118 ‘김대중 선생’의 대통령 당선, 환영과 당혹 사이 -- 128 이스라엘과 스웨덴서 미사일 극비 협상 -- 131 연평해전 후 남북 외교관 사우나서 조우, ‘멀뚱’ -- 136 남북정상회담, 김정일 덕분이라고 주재국에 선전 -- 139 귀국선물로 양초가 인기, 극심한 전력난 때문 -- 142 3장 | 한국이 살린 북한 장성택 도움으로 복귀한 장인 -- 145 6·15 선언 후 활기 찾은 평양 -- 147 석 달간 해외생활 샅샅이 조사받고 북유럽과장 부임 -- 149 북송 장기수들, 한국서 번 돈 당에 바치고 때늦은 후회 -- 151 김대중 정부, 유럽국가들에 북한과 수교 요청 -- 155 “굴욕 감수해도 빨리 수교하라, 미 부시 정부 들어서기 전에” -- 162 수교 거부한 프랑스, 북한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 165 런던 대영박물관 한국관서 북한 미술 전시회 열어 -- 169 스웨덴 총리, 김정일 면전서 북한 인권 지적 -- 172 북한 최초의 인권 ‘접촉’, ‘대화’나 ‘회담’은 안 돼 -- 181 이라크전쟁에 떠는 김정일, “런던에 대사관 열어라” -- 185 임신한 평양 주재 영국외교관 부인에게 ‘기적’을 선물 -- 192 영국월드컵 8강 <천리마 축구단> 영화 제작 비화 -- 196 서방 언론사 첫 평양지국 개설 추진 -- 200 김정일, 고이즈미 강공에 일본인 납치 직접 사과 -- 208 영국 비행사 유족에게는 짐승 뼈 보내 망신 -- 212 유럽에 내다판 북한 돈의 역류, 재정상 처형 -- 214 룡천역 폭발사건 후 금지된 휴대폰, 리수용 건의로 재개 -- 218 4장 | 영국 통해 미국 견제 해외 발령 때마다 아이 데려가기 전쟁 -- 221 실세 리용호가 영국대사로 간 까닭은 -- 225 “남조선 괴뢰에게 골프를 배운다고?” 김정일의 격노 -- 228 ‘모르는 게 없는 지도자’ 만들어내는 ‘3층 서기실’ -- 233 나도 감탄한 김정일의 핵전략 “배짱 튕기면서 다 챙겨” -- 236 영국학교의 아들 담임, “너희 나라가 잘못한 거야” -- 243 백승주 의원이 준 한국 손톱깎이와 10년 -- 249 북한 핵외교의 한 축 “영국 통해 미국을 견제하라” -- 252 에릭 클랩튼, “북한 인권 때문에 평양 공연 어렵다” -- 253 5장 |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1차 핵실험 후 “외교관 자녀 한 명 빼고 모두 귀국시켜라” -- 256 실권 쥔 제1부상, 하루 종일 김정일 전화 대기해야 -- 263 갑자기 내려오지 않는 김정일 결재, 알고 보니 뇌졸중 -- 269 후계자 김정은 ‘대장동지’ 이름으로 부상 -- 277 김정은 등장 직후 화폐개혁으로 후계 공고화 시도 -- 280 연평도 포격으로 날아간 벨기에 주재 북한대사관 개설 -- 284 영국과 관계 개선 위해 런던 장애인올림픽 참가 -- 288 김정일 사망, 김정은 지시로 이틀 후 발표 -- 294 김정은 집권 초 “개성공단 14곳 만들라”, 개혁조짐 보여 -- 297 외무성 대변인 맡겠다는 사람 없어, 문서로만 언론 발표 -- 304 모란봉악단 미국노래 연주, 리설주 등장, 개방 시동인가 -- 306 금세 돌아온 공포정치, 인민군 총참모장 처형 -- 307 ‘내부의 적’ 경고로 장성택 처형 암시 -- 309 6장 | 망명 전야 다시 영국으로, 맏이와 생이별에 눈물바다 -- 315 김정은 공포정치엔 ‘어머니 콤플렉스’도 한몫 -- 317 장성택 처형을 런던서 인터넷판 <노동신문> 보고 알아 -- 319 숙청을 부른 또 다른 사연들 -- 322 어릴 때부터 고모부에 원한 쌓여 -- 326 장성택 측근 1만여 명 쑥대밭 숙청 -- 332 외무성 성원이 숙청을 피하는 법 -- 339 영국공산당의 북한 세습 비판에 곤혹, “논쟁에 말려들지 말라” -- 343 나를 ‘혁명의 배신자’라고 한 영국인 허드슨의 ‘순정’ -- 349 장애인청소년 예술단 영국 공연 추진 -- 352 김영철 정찰총국장, 영국 대리대사 불러 테러 협박 -- 360 김정은 헤어스타일 조롱한 미용실 찾아가 테러 위협 -- 365 김정은과 로드맨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무자비한 독재자인 게 틀림없는데, 떠들썩한 하루 동안의 환영 이벤트로 김정은의 이미지는 더 할 수 없이 미화되었다. 여론조사에서 77.5%가 김정은에게 신뢰가 간다고 답했다 한다. 과연 그럴까? 김정은은 누구이며 북한은 어떤 사회인가? 온 세계의 이목이 북한과 그 지도자 김정은에게 쏠리고 있는 지금,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가 밝히는 평양 심장부 이야기는 한국만이 아니라 온 세계 사람들에게 북한의 정확한 실상을 보여 줄 것이다. 우선 한반도 비핵화 문제. 북한 핵폐기냐, 한반도 비핵화냐 라는 용어 중 이번 남북정상 합의문은 한반도 비핵화를 택했다. 이것은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것으로 결국 주한 미군을 몰아내겠다는 전략에 다름 아니다. 김정은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태공사의 다음과 같은 증언이 그것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 김정일은 "조선반도 비핵화란 북한만이 아니라 남조선까지 포함한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뜻한다. 미국은 조선반도에서 핵전쟁 훈련을 계속하고 있고, 언제라도 핵무기를 끌어들일 수 있다. 오직 우리의 핵으로 미국의 핵을 몰아내고 미국으로부터 핵 불사용 담보를 받아낼 때만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김정일의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p.241~242) - 1차 핵실험 직후 중국 외교부장 리조성과 북한 외무 차관 강석주가 나눈 다음의 대화에서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가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 - 북한의 핵실험에 가장 분노한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1차 핵실험 사흘 후인 2006년 10월 12일, 중국 선양에서 외무성 1부상 강석주와 중국 외교부장 리조성(李肇星·리자오싱)이 비밀리에 만났다. 북한 외무성 회담기록문에 따르면 리조성은 강석주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 인민은 조선 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대단히 존경하고 있다. 김일성 동지는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매우 전략적인 유산을 남겼다. 그러나 지금 조선 동지들은 그의 사상과 유산을 어기고 있다. 김일성 동지께서 조선반도 비핵화 사상을 제시하신 것은 조선과 같이 작은 나라가 핵 경쟁에 말려들 경우 과중한 경제적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붕괴될 수 있음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소련과 같은 큰 나라도 미국과의 과도한 군비경쟁에 말려들었다가 결국 붕괴되었다. 조선은 이번에 핵실험이라는 넘지 말아야 할 산을 넘었다. 이제라도 핵개발을 중지하고 경제건설에 전념하기 바란다. 핵개발을 중지한다면 중국은 조선에 대한 경제군사적 지원을 늘릴 것이다 핵으로는 조선의 체제를 지킬 수 없다. 경제부터 조속히 회생시켜야 한다.” 그러자 강석주는 이렇게 되받아쳤다. “내가 지금 중국 외교부장 리조성과 담화하는 것인지, 아니면 청나라 사절 이홍장과 회담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소련의 사례를 들었지만 중국 외교부장이 소련의 붕괴 원인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지경이다. 소련이 붕괴된 것은 미국과의 군비경쟁 때문이 아니다. 당이 인민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게을리 했고 당 자체가 부패하고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소련이 우리처럼 당을 강화하고 사상 사업을 중시했다면 아무리 많은 군비를 쏟아 부었다고 하더라도 붕괴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또한 김일성 수령님의 탁월하고 위대한 조선반도 비핵화 사상을 언급했다. 조선반도 비핵화란 우리만의 비핵화가 아니라 남조선까지 포함한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뜻한다. 미국은 조선반도에서 핵전쟁 훈련을 계속하고 있고, 언제라도 핵무기를 끌어들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반도는 결코 비핵화되지 않는다. 오직 우리의 핵으로 미국의 핵을 몰아내고 미국으로부터 핵 불사용 담보를 받아낼 때만이 가능하다. 수령님의 조선반도 비핵화 사상이 실현될 수 있도록 중국이 조선과 미국의 관계를 중재해 주기 바란다.” 강석주가 사용한 이 논리는 이후 북한의 일관된 핵 논리이기도 하다. (p.240~242) ----------------------- 김일성 3대의 핵 집착 -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과는 다른 방식으로 신과 같은 존재가 되고자 했고, 그 방식이 핵과 ICBM, 공포정치였다. 신격화는커녕 지도자로서의 정통성과 명분마저 부족한 김정은이 결국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그리고 공포정치다. 이것으로 카리스마를 형성하고 신적인 존재가 되지 않으면 체제는 물론 김정은 자체가 무너진다. 김정은이 그토록 핵과 ICBM에 집착하고 장성택 숙청으로 대표되는 공포정치를 휘두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518) - 핵은 체제 보장을 위해 90년대에 갑자기 개발된 것이 아니다. 6. 25 와중에 피란민의 핵 공포를 확인하고 이때부터 김일성은 핵개발을 시작했다. 50년대에 이미 원자폭탄 개발 핵 연구소를 설립했고, 70년대 중반 이후 조선반도 비핵지대화(핵무기 개발 전략)를 주장하며, 핵 불사용 정책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이 북한에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것에 불과했다. (p.40~48) 태영호의 간절한 바램 - 2016년 12월 나는 한국에서 공식 활동을 시작하면서 통일부 출입 기자단과 회견을 가졌다. 이때 나는 북한의 핵개발 완성 계획을 공개하고 이를 ‘핵 질주 계획’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2017년에 감행한 북한의 핵실험과 ICBM 발사는 나로서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18년은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평화적 환경조성의 시기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전후해 북한이 적극적인 화해 제스처를 보인 것은 이런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이 다른 것은 몰라도 핵 문제만큼은 결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절감했으면 좋겠다. (p.404~405) 철도 건설 문제. 이번 판문점 선언에는 철도 건설도 포함되어 있다. 6.15 공동 성명 이후 두 번째다. 그러나 태공사의 다음과 같은 증언은 그것이 공허한 선언임을 보여준다. ----------------------- - 김정일은 6·15 공동선언 직후 러시아와도 협력의 제스처를 취했다. 2000년 7월 19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1박 2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구소련을 포함해 러시아의 지도자로서는 사상 최초의 방북이었다. 김정일은 이듬해 7월 26일부터 8월 18일까지 러시아를 답방했다. 김정일과 푸틴은 평양과 모스크바에서 각각 「조러 모스크바 선언」을 발표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 러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한다는 부분이었다. 남북 경제협력에 이어 한반도 종단철도가 연결된다면 북한에 엄청난 경제적 혜택이 들어올 것이 확실했다. 김정일도 이 계획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러시아 답방 1년 만인 2002년 8월 러시아 극동 지역을 다시 방문해 조러 모스크바 선언의 이행 문제를 협상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떠먹여 줘도 못 먹는’ 북한 체제의 한계 때문에 한반도 종단철도 건설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러시아는 건설 의지가 확실했고, 한국은 언제라도 지원할 의사가 있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국 철도를 연결하는 수송로를 열고 컨테이너나 석탄과 같은 중량 화물을 수송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철도를 어느 정도 직선화하고 터널과 교량도 많이 건설할 계획이었다. 문제는 북한의 동해안 방어부대 대부분이 철도를 따라 배치돼 있다는 점이었다. 한반도 종단철도가 건설되어 철도 현대화가 진행되면 대대적인 부대 이전이 불가피했다. 북한 군부는 6·25전쟁에서 전세가 역전된 원인을 인천상륙작전 때문이라고 보고 수십 년에 걸쳐 동해안 철도를 따라 방대한 해안방어선을 구축했다. 철도 현대화 사업이 벌어지면 해안방어선을 다시 구축해야 한다. 북한 군부는 이미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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