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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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작가이자 ‘러시아의 양심’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비정한 현실을 버텨 오다 상처 입고 병들어 버린 사람들, 죽음에 직면한 그들에게서 발견하는 웃음과 삶에 대한 희망을 그린 대작 ▶ 최고 수준의 문학적 사건. -《타임》 ▶ 『암 병동』은 스탈린 사망 직후 시기를 그리면서, 국가라는 병동에서는 희생자나 집행인이나 모두 갇힌 신세이며 똑같이 불구가 되어 버렸다고 선언한다. -《뉴욕 타임스》 1970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장편 소설 『암 병동』(전 2권)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7?338번으로 출간되었다. 솔제니친은 1945년 포병 대위로 복무 중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탈린과 스탈린 체제를 비판한 것이 문제되어 체포되었고 이후 수용소 생활과 수용소 병원 생활은 그의 작품에서 주요 모티프가 되었다. 특히 악성 종양으로 사망 선고까지 받았던 그는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암 병동』을 썼고, 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 펼쳐졌던 소련 내부의 혼란과 비극, 나아가 복잡다단한 인간 사회의 자화상을 병원이라는 폐쇄된 공간을 배경으로 그려 냈다. 『암 병동』은 미출간 원고 상태에서 소련 문단에 커다란 논쟁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그의 작품들은 출판 금지 처분을 받게 되었다. 결국 이 작품은 1990년에야 러시아에서 정식으로 출간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소비에트 시대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직접 경험하고 그 시대를 증언한 ‘러시아의 양심’ 솔제니친, 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대작이다. ■ 거대한 ‘공포의 하늘’ 아래서 질식당한 비극적인 존재들 1955년 중앙아시아 어느 암 병동. 노인부터 십 대 소년, 유형수부터 고위 공무원까지, 모두 암이라는 병으로 인해 이전에 살아온 삶과는 완전히 단절된 채 같은 병실에 머물고 있다. 환자복을 입는 순간 각자의 사회적 지위와 배경은 사라져 버리고 병과 싸우는 환자로서의 생활을 공유하게 된다. 병과 죽음이라는 공포 앞에서 지난 삶을 반추하며 회한과 슬픔을 느끼고, 누군가는 절망과 분노에 휩싸이고 누군가는 욕망과 의지를 불태운다. 스탈린 체제하에서 동료를 배반하며 높은 자리에 오른 이가 있는가 하면, 수용소와 유형지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야 했던 이가 있고, 가족을 모두 잃고도 눈앞의 현실에 고개 숙여 온 이가 있다. 그리고 스탈린이 사망한 지 2년, 그 체제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곪아 가던 고름은 모두에게 암과 같은 커다란 아픔이 되어 있다. 여학생 꽁무니를 따라다니기 바쁘던 대학생 시절, 사소한 말 한마디로 체포되어 감옥과 수용소를 떠돌아야 했던 코스토글로토프. 그는 사회에 대한 냉철한 비판 의식도 없지만 권력에 영합해 출세할 만한 영악함도 없었고, 단지 거짓말을 못했던 탓에 핍박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의 운명 역시 그와 같아서 그는 “한 여자는 자살했고…… 한 사람은 아직 살아 있어요. 남자 셋은 이미 죽었고……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요.”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루사노프는 평생을 체제에 영합해 무고한 사람들을 밀고하고 괴롭혀 부와 지위를 얻은 사람이다. 병동에서조차 뇌물을 주며 특별 대우를 바라지만, 목에 생긴 종양 앞에서, 즉 삶과 죽음의 갈림길 앞에서는 그토록 무시했던 사람들과 같은 운명일 뿐이다. 스탈린 체제하에서 가장 영광을 누리던 그의 현재는 오래전 희생시킨 이웃이 찾아와 복수를 할까 봐 두려움에 떠는 것이며, 스탈린 사망 2주기에도 그에 대한 추모 기사 한 줄 실리지 않은 신문을 보며 충격에 휩싸이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증오합니다.” 그녀에게서 얼굴을 돌린 그의 시선은 날카로웠고 턱은 불쾌한 감정을 나타내며 떨고 있었다. “그들은 탐욕스러운 짐승이자 다른 사람에게 기생하며 살아가는 악당이에요. 우리 나라에서는 그들이 갱생했다느니, 그들이 ‘사회적 동포’라느니 하면서, 삼십 년 동안이나 떠들어 댔지요. 그들의 원칙이란 ‘너를 ……하진 않아.’라는 것일 뿐이에요. 이것은 그들이 쓰는 은어지만 아주 악랄한 것이죠. 예를 들어 ‘너를 때리진 않아! 그러니까 너는 가만히 앉아 있어, 네 차례를 기다리란 말이야!’ 혹은 ‘네 이웃의 옷을 벗기는 중이야, 너는 가만히 앉아 있어, 네 차례를 기다리란 말이야.’ 같은 것이죠. 놈들은 이미 쓰러진 사람을 짓밟는 짓을 즐기는 자들이죠. 그런데도 낭만적인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그자들이 전설을 만들도록 거들어 주고, 영화를 보고 그자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어요.”(본문 중에서) 학창 시절, 풋풋한 첫사랑을 나누었던 남자가 전사한 후 오랜 시간 그를 그리며 살아온 베라. 투옥되었던 오빠마저 어느 날 소식이 끊어지고, 반송된 소포를 유골함처럼 품에 안고 돌아오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난 후 그녀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죽고 싶다는 욕망이 실현되지 않”아 그녀는 의사가 되었지만, 매일 밤 어둡고 좁은 방으로 돌아갈 때마다 “우리에게는 슬픔을 견디는 능력이나 정절의 능력이 없다. 우리는 세월에 항복할 수밖에 없다.”라고 되뇌인다. 그러나 혼자가 된 것은 그녀 혼자만이 아니었다. 거칠어지고 멍든 손으로 프랑스 책을 읽는 청소부 옐리자베타. 레닌그라드 봉쇄 당시 오케스트라의 플루트 연주자였던 남편과 함께 추방되어 딸은 유형지에서 죽고 수용소로 끌려갔던 남편의 소재를 알 수 없어 홀로 어린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아이가 자라면서 묻는 질문에 숨 막히는 진실을 가르쳐야 할지 숨겨야 할지를 고민하며 고통스러워한다. 황금빛 천사 같은 열일곱 살 아샤, 대학에서 공부할 꿈으로 가득한 열여섯 살 죠마. 머릿속엔 운동과 춤, 이성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다. 그러나 죠마는 한쪽 다리를 잘라 내야 했고, 아샤 역시 유방에 생긴 종양 때문에 한쪽 가슴을 절단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는다. 아직 인생을 제대로 시작해 보지도 못한 채 가혹한 운명을 맞게 된 둘은 서로에게서 위안을 찾기 시작한다. 서로 다른 인생을 살다 암 병동에 모여든 이들. 누군가는 병이 나아 두 발로 병실을 나가고 누군가는 죽음을 맞아 병원을 떠난다. 그리고 아직 앞으로의 운명이 정해지지 않은 환자들과 그들을 치료하는 의사와 간호사, 청소부 들도 각자 삶의 짐과 슬픔, 병을 가진 채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의문 속에 삶은 계속되고, 웃음과 사랑도 싹트기 시작한다. 암 병동이라는 공간 역시 단순히 암 환자들의 치료가 이루어지는 공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암 병동의 공간적 의미는 작품에서 훨씬 확대된다. 솔제니친의 언급대로 어떤 병인이 사람의 몸에 암을 발생시킨다면, 암을 발생시키는 병인을 품고 있는 사회는 결국 암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거짓과 기만, 가공할 악행, 그리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필연적으로 만들어 내야 했던 수많은 감옥과 수용소와 유형지는 소비에트 체제에 암을 발생시키는 병인이었다.(「작품 해설」 중에서) ■ 비운의 역사를 직시한 목격자, 그리고 ‘진실을 말하는’ 임무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1956년까지 11년 동안 강제 노동 수용소와 유형지에서 스탈린 공포 정치 심연을 직접 경험했다. 그리고 1974년에는 국가 배반죄로 시민권을 박탈당한 채 국외 추방되었다. 그 후에는 스위스를 거쳐 미국에서 20여 년간 칩거하였다. 삶의 터전이자 문학적 토양이었던 조국을 떠나 살아가는 것은 그에게는 또 한 번의 유형이었다. 스물여섯 살에 체포되어 서른일곱 살까지를 수용소와 유형지에서 보내야 했던 그는 악성 종양으로 사망 선고까지 받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 돌아온 그는 “덤으로 주어진” 앞으로의 삶은 자신의 임무를 다하며 살기로 결심한다. 그 임무란 자신이 목격한 그대로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소비에트 체제라는 오염된 토양에서 자라난 비극의 씨앗과 소비에트 체제의 폭력에 짓밟혀 온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여겼다. 1970년 스웨덴 한림원이 “러시아 문학의 전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