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카사사기

국경을 초월한 사랑 당신을 사랑합니다. 영원히 사랑합니다. 새처럼 날개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신께 날아가련만. 당신이 주고 간 까치브로치를 볼 때마다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모코의 편지 '사랑은 국경을 초월한다.'는 말은 사랑의 위대함을 일컫는 수사(修辭)일 뿐이다. 그러나 여기 국경이 두 젊은이의 사랑을 갈라놓은 애절한 사연이 있다. 기파랑에서 출간한 『내 사랑 카사사기는(원제: かささぎ)』는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직후 한 일본 여성과 한국 남성 사이에 싹튼 운명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본이 패망하자, 식민지 조선을 떠나야 했던 도모코는 아버지의 유해를 담은 단지를 안고 일본으로 향한다. 그러나 부산에서 나고 자란 도모코에게 조국 일본은 낯선 땅이나 다름없었다. 패전 후 흉흉한 분위기의 일본에서 도모코는 혈혈단신 온갖 고생을 하지만, 어느 날 그녀를 찾아 대한해협을 건너온 기도 슌지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기도 슌지(木戶俊二)'는 박준인(朴俊仁)'이라는 한국 청년의 일본 이름. 그는 부산에서 만난 도모코에게서 깊은 사랑을 느꼈고, 무작정 찾아간 일본에서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전락한다. 두 사람은 눈물겹도록 가난한 살림을 차리고, 길에서 튀김을 팔면서도 애틋한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결국 박준인은 체포되어 추방당하고, 그들 재회는 기약 없는 약속이 되어버린다. 8년을 하루같이 박준인을 그리며 눈물로 밤을 지새던 도모코는 결국 한국으로 가기 위해 밀항의 모험을 감수하려 하지만,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그녀는 끝내 다른 이의 아내가 되고 만다. 사랑과 그리움이 절절히 배어 있는 도모코의 편지에 답장 한번 하지 못했던 박준인의 사연은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한국을 찾은 도모코에게 밝혀지고,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박준인과 도모코는 그들을 갈라놓은 대한해협을 바라보며 회한에 잠긴다. 국가의 운명, 개인의 운명 우리는 역사의 기록만을 기억할 뿐, 그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개인의 삶까지 기억하지 않는다. 선택된 기억만이 집단의 역사로 남고, 개인의 삶은 그 역사의 이면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이 해방되고, 패망한 일본으로 돌아간 재한 일본인들에게도 삶의 역사가 있었다. 그 격동의 시대에 농락당한 사람들은 한국인만이 아니었다. 소설 『내 사랑 카사사기』는 평범한 시민이었던 남녀가 두 나라의 운명적인 역사에 희생된 쓰라린 사랑의 이야기다.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박준인은 도모코의 손에 작은 까치(카사사기) 브로치를 쥐어준다. 기약 없는 재회를 약속하면서, 박준인은 격앙된 목소리로 외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에 국경이 있습니까? 국적이 있습니까?” 그러나 한반도와 일본을 갈라놓은 대한해협은 양안(兩岸)을 연결하는 다리가 아니라, 두 나라를 떼어놓는 벽이었다. 적대적인 두 조국 사이에서 그들의 사랑은 수없이 가로막히고, 찢기고, 부서지만 국경이 두 사람의 마음까지 갈라놓을 수는 없었다. 한 나라의 역사가 그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라면, 그리고 그 나라의 운명이 그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운명을 대표한다면, 국가 간 관계라는 거대 논리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짓밟는 비극적인 상황을 이 소설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NHK 특집드라마, 「해협」 이 소설의 작가 제임스 미키는 일본의 대표적인 TV드라마로 명성이 자자하다. 이 작품은 「해협(海峽)」이라는 타이틀로 NHK 스페셜 드라마 3부작으로 방영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DVD로도 출시되어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주인공 도모코가 다녔던 것으로 나오는 부산고녀(현재 부산여고)나 경성 제2고녀(현재 수도여고)의 교가를 들으면서 추억에 잠긴 전 세대 일본인이 많았을 것이다. 또한, 이 드라마에 한국 여배우 고두심이 출연한 것은 일본 시청자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내 사랑 카사사기』는 식민시대에 대한 단순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거나 제국 역사의 한 토막을 꺼내보는 계기였다기보다는 두 나라 사이의 비극적 운명을 비판적으로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전후 일본 관료주의에 대해 비판적이고 풍자적인 시선을 던졌던 일본인 작가 제임스 미키의 역량이 돋보이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