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존 쿳시의 2003년 작. <야만인을 기다리며>, <철의 시대>, <마이클 K> 등 인종과 성,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휴머니즘과 폭력을 다루었던 기존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소설이다. 여덟 가지 주제를 담은 강연 내용이 큰 기둥줄거리를 이루며 소설과 강연, 에세이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처리했다.
문학과 철학, 종교와 성, 인간과 동물, 인문학에 대한 고찰 등 자칫 관념으로 흐를 법한 주제들을 노련하게 다룬다. 각 장마다 독립된 주제를 갖고 있는 강연에 맞물려, 강연자와 청취자 사이에 팽팽한 힘겨루기가 펼쳐진다. 작품 곳곳에는 주인공의 심리를 비롯하여 그녀와 관계된 인물들 사이에 얽힌 이야기를 배치해 놓았다.
주인공은 1928년에 태어나 아홉 권의 소설과 두 권의 시집, 새에 관련된 저서 한 권과 상당한 분량의 논픽션을 저술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그녀는 1995년 미국 '스토우'상 수상 연설에서 엉뚱하게 '리얼리즘'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된다. 이 것이 첫 번째 강연이다. 이후 소설의 미래, 동물들의 삶, 아프리카에서의 인문학, 침묵, 공모성, 그리고 죄의식 등을 주제로 여섯 번의 강연을 한다.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강연은 앞의 강연들과는 형식을 달리한다. 일곱 번째 강연 '에로스'는 사랑에 대한 명상이며, 여덟 번째 강연 '문에서'는 시간도 장소도 애매모호한 어느 곳에서, 믿음에 대한 진술서를 써야 한다는 재판관에 대항하면서 믿음과 작가 또는 문학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