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아프지만 간절하고 쓸쓸하지만 다정한 시편들 장승리가 구축한 세계는 아프고 쓸쓸하지만 그 통증과 고독은 기꺼이 떠맡을 만한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어떤 일그러짐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 일그러짐의 미분과 적분이 아름다움이다. 실로 미학이 감성학의 다른 이름임을, 미란 무엇보다도 먼저 강렬함의 표현이라는 것을 장승리의 시는 웅변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고쳐 말해야 한다. 장승리의 시는 아프지만(아파서) 간절하고 쓸쓸하지만(쓸쓸해서) 다정하다. ―권혁웅·시인 자기의 수상한 면모들과 맞닥뜨리면서, 수상한 자기를 학대해서라도 달콤한 거짓말보다는 고통스러운 진실에 생을 내맡기려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진지한 고행. 여기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장밋빛 안경을 벗어던지고 날카로운 날빛과 명확한 어둠을 맨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즐길 만한 경미한 우울과 교양을 원하는 오만하고 심약한 속물 따위는 개나 물어가라. 자기 안의 악마를 두려워하는 겸손한 영혼만이 이 책을 펼칠 자격이 있다. ―정한아·시인 장승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무표정』이 문예중앙시선(023)으로 출간되었다. 첫 시집 『습관성 겨울』(2008)에서 날카로운 시어로도 치유의 힘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던 장승리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한결 더 깊어진 시 세계를 펼쳐 보인다. 한 겹 더 안쪽의 것을 ‘정확하게’ 탐색하려는 노력(“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부족한 알몸이 부끄러웠어” ―「말」), 고독과 아픔의 근원을 담담하게 맨눈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들(“끝끝내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네가 너무 그립지만/영영 닳지 않는 지옥 속에서 난/더럽게 깨끗하다” ―「모르고 하는 슬픈 일」)이, 어느 틈에 다정한 위로의 말이 되어 곁으로 다가온다. 때때로 ‘나’이기도 한 ‘너’와 ‘당신’에게 건네는 말들, 그 아래 켜켜이 겹쳐진 수많은 표정들이 ‘무표정’ 속에 오롯이 하나로 겹쳐진다. 그렇게 떠오른, 무표정 아닌 무표정을 가만히 응시하게 만드는 시집이다. ‘나와 너 사이의 거리’ 그리고 그 거리에서 불어오는 실존적 바람과 추위 구름장이 흰자위까지 몰려왔다 유턴을 하면서 내게 묻는다 너는 몇 번째 너니 눈을 깜박이는 사이 방문이 저 혼자 삐거덕거리고 네 옷장 속에 내 눈물이 차곡차곡 개켜져 있다 눈물로 마지막 눈동자를 만들 순 없을까 나는 너를 볼 수 있지만 나는 너를 엿볼 수 없다 ―「(1974~ )」 부분 ‘실존과 이미지의 푸가’로 이번 시집에 대한 해설을 붙인 조강석 문학평론가는 ‘너’를 부르는 목소리에 대해 말한다. “이 시집에 실린 시의 상당수가 그야말로 엿듣는 청중을 등지고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들이다. 그리고 그 방백은 다정하며 아프다. 이 시집에서 중심적으로 말 건넴의 대상으로 상정되는 것은 ‘너’라는 인칭대명사로 지칭되는 누군가이다. 어쩌면 이 시집의 제목은 사회화된 해석을 덜어내고 글자 그대로 ‘너를 부르마’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시집에는 ‘너’를 부르는 목소리가 가득하다.”(조강석 해설, 「실존과 이미지의 푸가」) 네 꿈속에서 나는 옷이 참 많았지 옷을 껴입을수록 앙상해지는 널 보며 너무 추웠지 옷이 부족했지 꿈이 더 필요했지 ―「다른 시간」부분 첫 시집 『습관성 겨울』에 이어 겨울의 이미지, ‘추위’로 나타나는 ‘나’의 아픔들, 그것은 ‘거리감’에서 연유한다. “눈이 내리는 까닭, 다시 ‘습관성 겨울’이 찾아오는 까닭은 ‘너와 나 사이의 거리’ 때문이다. 그러니 이 추위는 습관성일뿐더러 실존적이다. ‘너’가 환기되는 시간의 온도가 간극의 바로비터이다. (…) ‘너’는 추위의 표상이자 꿈의 표상이다. “너와 나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더 두꺼워야 이 추위가 끝나나” 하고 묻지만 ‘너’와의 거리는 꿈이 파놓은 심연의 깊이에 비견된다. “내가 너의 가장 차가운 피부”라는 구절이 서늘한 까닭은 ‘너’를 호출함으로써만 마음이 차갑게 풀리는 ‘나’의 실존적 추위가 대번 실감되면서 동시에 아름답기 때문이다.”(조강석 해설, 「실존과 이미지의 푸가」) 죄의식도 놀이가 되는 곳 마음과 인연이 분리되는 곳 위로 다시 눈이 내린다 pardon pardon 눈 위를 걷는 내 발자국 소리에 잠이 깬다 벌떡 일어나 외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당나귀 귀 당나귀 귀 베어내지 못하는 되새김질 지축이 흔들린다 계속 누설되는데 왜 너는 무너지지 않는가 ?「밸런스」부분 이 거리감 속에서 균형에 대한 갈망이 솟아나고 이는 “밸런스”를 외침으로써 간절해진다. 나와 너, 두 개의 혀, 왼쪽과 오른쪽……. 나뉘고 갈라지고 떨어져 있는 둘, 나와 너는 서로의 자리를 끊임없이 치환해가며 영점의 균형을 향해 간다. 되풀이되는 이 무한 회전, 그것이 하나의 삶의 동력임을 변주하고 있는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