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민중미술』은 1980년대 미술운동으로 시작한 민중미술이 어떤 수식이나 부연설명 없이 ‘민중미술’, ‘Minjung Art’라는 고유명사가 되어 한국 현대미술사에 기록된 과정을 따라간다. 민중미술의 정의는 무엇이고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전개되었는지를 밝히고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풍부한 도판을 곁들여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현대미술의 여정』(2019, 한길사)을 통해 서양미술사를 예술적‧사회적 관점에서 통찰한 김현화 교수는 ‘민중미술’만큼 예술과 사회가 밀접한 관련을 맺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민중미술』도 작가나 연도별이 아닌 예술적‧사회적 관점에서 열 개의 키워드로 구분해 설명한다. 목차에서 볼 수 있듯이 민중미술은 “1980년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분단과 외세 극복을 위한 민족주의 열풍, 사회계급의 평등에 대한 욕구가 만들어낸 시대적 산물이었다”(14쪽-15). 민중이 주체가 되는 세상이 이상향이 아닌 구체적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민중문화운동이 순수한 문화적 유희 속에 빠져들 수만은 없었다. 이데올로기적 권력투쟁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민중미술도 군사정권과 격렬하게 대립하면서 군사정권의 전복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 민중미술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영원히 등장하지 않을 것 같은 대규모 집단 문화정치이자 “미술 하나만으로 시대현실을 변혁하고자 한 이례적인 미술운동이었다”(15쪽). 노동, 휴머니티를 위해 “이 땅의 사람들 하나하나가 주인이라는 민주의식, 억압된 지배와 소외로부터 해방되고 인간다운 삶을 찾으려는 민중의식을 고찰하고자 했다”_86쪽. 낭만적 정취에서 현실비판‧변혁을 위한 투쟁으로 민중미술가들은 민족을 보존하고 민중을 위한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들은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과 연계해 군사정권의 파시즘과 자본주의를 동시에 비판했다. 민중미술에서 노동은 민중성의 획득이었다. “민중미술은 휴머니즘을 불러일으키는 시각적 형상을 통해 현실변혁으로 나아가는 단초를 마련하고자 했다”(86-87쪽). 민중계급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미술가들은 드라마틱한 감성에 젖어 있었다. 그들은 깊은 연민으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에게 낭만적인 영웅성을 부여하는 양상을 보였다. 가령 박건의 〈출근〉(1985)은 민중미술가들의 소시민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애정을 볼 수 있지만 “고발성과 투쟁성보다는 정서적으로 정겨운 느낌을 준다. 민중생활의 소박한 초상화라 할 수 있을 정도다”(89쪽). 〈출근〉과 〈라면 식사〉와 같은 작품들은 척박하고 열악한 현실을 떠올리게 하지만 투쟁성보다는 낭만적인 향수를 먼저 느끼게 한다. “이에 대해 미술가가 노동자적 정서를 직접 체험하지 않고 관념에 근거하여 표현하기 때문이라는 반성도 제기되었다”(92쪽). 홍성담은 초기 작품(〈라면 식사〉)에서 볼 수 있듯 낭만적인 정취를 느끼게 하는 감성을 보여주지만 5‧18민주화운동을 겪은 후 투쟁에 앞장서게 된다. 이처럼 홍성담이 낭만적 정취, 현실비판, 현실변혁을 위한 투쟁으로 발전하는 단계가 바로 “민중미술의 발전단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93쪽). 자본주의 사회와 탈인간화 민중미술가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생산의 극대화만 추구하면서 노동자를 기계 취급하는 것이 인간중심적 사회를 해체하고 탈인간사회로 만든다고 인식했다. 민정기의 〈영화를 보고 만족한 K씨〉(1981)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영화를 보는 장면이다. 민중은 대중소비사회 속에서 창조적인 문화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단지 주입되고 있을 뿐이다. <영화를 보고 만족한 K씨>는 사회라는 거대한 집단 속에서 대중이란 이름으로 매몰되어버린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이들이 일제히 바라보는 노란색 사각형은 영화 스크린을 은유한다. 영화는 일상에 지친 대중이 찾아낸 가장 대중적인 생활 쾌락이다. 〈영화를 보고 만족한 K씨〉는 휴식조차 획일화되어가는 현대인의 삶을 비유한다. 화면 오른편에는 인간 군상들이 거대한 화면을 향해 모여들고 왼편에는 영화를 본 K씨의 만족을 줄자로 재고 있다. 현대인은 휴식조차 그 결과를 자로 측정해서 만족도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대중은 휴식을 통한 만족감조차 주관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자로 쟀을 때 나타나는 수치를 통해 느껴야 하는 대중소비사회의 노예가 되었다. 그들은 어떤 저항감도 없이 무표정하게 사회의 구조 속에 맞춰진 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_101쪽. 반미와 반일 외세 없는 세상을 꿈꾸며 민중미술은 외세 침입에 저항하고 민족의 통일을 추구하기 위해 ‘반미’와 ‘반일’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켰다. 반미와 반일은 미국을 위시한 주변 강대국의 밀착된 이해관계 속에서 민족의 운명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촉발했으며 식민지성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던진다. 손장섭은 〈조선총독부〉(1984)에서 민족수탈의 역사를 다룬다. 그림에는 일장기가 거의 화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그려져 있다. 화면 왼쪽에는 조선총독부 건물이 있고 더 멀리 독립문도 보인다. 화면 전경에 숫자가 적힌 경계선은 남북한의 분단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일장기 안에 있는 붉은 원의 안쪽과 바깥쪽에서 신음하며 죽어가는 민중의 모습은 우리의 역사가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침략과 수탈의 연속이었음을 알린다. “일장기 안에 있는 붉은 원의 안쪽과 바깥쪽에서 신음하며 죽어가는 민중의 모습은 우리의 역사가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침략과 수탈의 연속이었음을 알린다”_194쪽. 민중미술에서 반미와 반일은 주권찬탈이라는 동일한 맥락에서 다루어진다. 임옥상은 〈일월도 I〉(1982)에서는 미국 디즈니 만화 주인공들이 조선왕조의 〈일월곤륜도〉를 유린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는 왕조의 영원한 안녕을 기원하는 병풍화다. 임옥상은 ‘일월곤륜도’를 조선왕조의 세계관이 그대로 투영된 빼어난 병풍장식화로 여겼다. “그것이 디즈니 만화 주인공들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는 것이다”(199-200쪽). 미국 문화에 침수당하는 한국의 전통, 더 나아가 모욕당하는 한국의 자주성과 주체성에 대한 애통함을 시사한다. “여기에 서양만화의 주인공들을 불러들이면서 나는 너무나도 슬펐다. 이 땅이, 이 해 돋는 나라가 서구인들의 유희장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_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