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대표하는 지성의 산실, 주르캄프 출판인이 전하는
위대한 작가들의 곁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창의적인 출판 철학”
책은 상품일까요, 작품일까요? 그리 간단히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겁니다. 책은 상품이기도 하고 작품이기도 할 테니까요. 책은 팔려야 하는 ‘상품’이지만, 작가의 창의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작품’입니다. 이러한 책의 특성을 극작가 브레히트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책은 “신성한 상품”이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출판은 “정신과 사업”이라는 얼핏 상반된 듯 보이는 두 방향을 하나로 결합하는 일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 책 만드는 이들의 오랜 고민거리가 있습니다. 소위 팔리는 책과 의미 있는 책 사이에서 출판인은 종종 길을 잃게 되니까요.
독일 출판사 주르캄프는 그런 면에서 출판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등대와 같은 출판사입니다. 1950년 설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시대정신을 고스란히 담은 위대한 책을 숱하게 출판하며 독일 지성사에 깊은 영향을 끼쳐온 출판사이지요. 헤르만 헤세부터 브레히트, 아도르노와 베냐민 같은 사상가, 최근에는 하버마스와 페터 한트케의 저서까지 출간 작가와 작품 목록만 보아도 어째서 이 출판사가 ‘독일 지성의 광장’이라고 불리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작가를 출판합니다』는 바로 주르캄프의 2대 출판인 지크프리트 운젤트가 주르캄프 특유의 출판 철학을, 세계문학 작가들과 편집자의 관계 등을 통해 녹여낸 책입니다.
지금의 주르캄프를 반석에 올린 장본인, 저자 운젤트 역시 늘 출판의 역할을 고민했습니다. 이익을 창출해야만 하는 기업을 운영하는 일과 사회적인 의미를 제시하는 책의 역할 사이에서 “거의 견디기 힘든” 출판인의 역할 갈등을 고백하기도 했고요. 이런 갈등을 이겨내고 꾸준히 양서를 낼 수 있던 동력은, 다름 아닌 ‘작가’였습니다. 저자 운젤트는 “작가들의 창조적인 가능성과 출판사의 실현 가능성”을 동시에 살피며, 위대한 작가들의 곁을 지켜냈습니다. “작가와 작품의 새로운 점을 수용하고, 그들이 영향을 미치도록 같이 돕는 일”이 운젤트가 말하는 출판사의 변치 않는 과제이자 가장 기본적이면서 창의적인 출판 철학이었던 셈입니다.
헤세, 브레히트, 릴케, 로베르트 발저
예민하고 별난 세계문학 대가들과 살을 맞대며 경험한, 생생한 출판·편집 비화
오늘날 고전으로 꾸준히 읽히는 책들도, 분명 처음 탄생한 순간이 있습니다. 대가들의 책이 처음 세상에 선보이던 순간 그 곁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키던 편집자들도 있을 것이고요. 『우리는 작가를 출판합니다』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에 남은 책들이 출간된 이야기를 편집자의 시선에서 기록했습니다. 헤세부터 로베르트 발저까지 독문학에 큰 족적을 남긴 4명의 작가들이 편집자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었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책이 출판되었는지, 출판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망라했습니다. 단순히 주르캄프 출판사와 운젤트 본인의 이야기를 넘어, 로볼트와 인젤 출판사 등 20세기 독일 출판계를 주름 잡았던 출판인들과 작가들의 관계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민하고도 별난 대가들과 출판인 사이의 이야기에는 책만으로는 알 수 없던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일화들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능수능란하게 출판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쭉 유지했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결코 고집을 꺾지 않으며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던 헤세, 방대한 양의 편지를 작성하며 자신의 생활고를 고백하기도 했던 릴케, 이미 출간된 작품을 끝없이 수정하고 또 수정해서 편집자들의 골치를 아프게 했던 브레히트, 출판인들에게 종종 선택받았지만 결국에는 외면당해 상심하고 글쓰기를 그만두기도 했던 로베르트 발저.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세계문학 대가들과 살을 맞대며 경험한 편집자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높고도 멀게만 느껴졌던 작가들이 가까이 다가올 겁니다.
바로 그 작가의 책이 무사히 출간되어 독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작가의 인생과 작품의 탄생을 고스란히 지켜본 존재가 바로 당대의 출판인들입니다. 창작에 대한 깊은 존중과 작가에 대한 너른 신의를 끈질기게 지켰던 출판인들이 있기에, 지금의 위대한 책들이 있을 수 있던 것이지요. 바로 이 지점에 출판의 의미가 놓여 있습니다. 저자 운젤트의 말대로 “작가는 출판사와 출판인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그런 면에서 출판은 다름 아닌 “작가를 출판”하는 것이 됩니다. 시간이 지나도 결코 변치 않을 출판의 근본적인 역할과 의미부터 대가들의 생생한 출판·편집 비화까지, 진심으로 책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