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에겐 내가 악인일 수 있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피로 이어진 가족,
모든 비밀을 공유한 친구도 예외는 아니다.
‘서로에 대한 온전한 집중’을 콘셉트로 내세운 이탈리안 레스토랑. 1인 사업장인 뱅상 식탁은 삼면이 막힌 구조에 전자기기 반입을 허용하지 않는 엄격한 규칙을 가진 식당이다. 런치와 디너에 4테이블, 한 테이블당 2명만 이용할 수 있는데, 연인과 밀어를 속삭이고 싶거나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들에게 인기 높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7월의 어느 토요일 점심, 소설가를 꿈꾸는 만학도 대학원 동기, 서로만 의지하고 살아온 모녀, 20여 년 만에 만난 학창 시절 단짝, 모든 일상을 나누는 동갑내기 직장 동료까지 네 쌍이 이곳을 찾는다. 겉으로는 다정하고 화목해 보이나 알고 보면 저마다 비밀이 있다. 이들이 그동안 숨겨 두었던 마음을 막 고백하려는 찰나, 한 발의 총성이 울린다.
“ 손님을 모두 쏘라고는 듣지 않았어요. (…) 그냥 내보낼 수도 없다는 거예요. 절반은 살아 나갈 테지만 절반은…….”(본문 99쪽)
뱅상 식탁의 오너 빈승은 ‘테이블당 한 명만 살 수 있다’고 말하며, 둘 중 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는 두 사람이 결정하라고 한다. 주어진 시간은 10분. 입버릇처럼 상대를 너무나 사랑하고, 소중히 대한다고 말하던 여덟 명은 마침내 숨겨 두었던 진실을 꺼낸다. 긴 시간 켜켜이 묵히고 삭혀 두었던, 상대를 증오하고 있다는 진심. 내가 살고 싶어서일까, 혹은 상대를 살리고 싶지 않아서일까. 한편 이 모든 일을 지시한 배후와 여덟 명의 관계가 조금씩 드러나며 일은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 나를 스치는, 얽는, 옭아매는 악은 무엇인가.
숱하게 외면하고 회피해 왔더라도
이제는 모르는 척하지 않기 위해
뱅상 식탁에 모인 여덟 명은 평범한 나머지 두어 번 만났대도 기억에 남지 않을 이들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도 사연은 있다. 드러나지 않아서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외도한 아내에 대한 복수심으로 마음에도 없는 상대를 꾀는 것도 부족해 상처했다고 거짓말하는 수창.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엄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몰래 결혼을 계획한 연주. 학창 시절 학교폭력을 당하는 을이었다가 자신의 아이가 학교폭력을 행사하는 갑이 되었어도 여전히 을로 살아야 하는 상아.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조정하려고 드는 직장 후배에게 넌덜머리를 내는 성미. 이들은 총성을 기회로 삼고자 한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다 살려 달라고?”
의외의 물음이었다. ‘다 살려 달라’고?
모두가 살아 나가면 어떻게 될까? 분명 뒷말이 돌 것이다. 이 상황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결말은, 수창에게는 아무 득도 남기지 않을 터였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반드시 필요했다. (본문 194쪽)
연주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마침내 정란으로부터 해방되는 해피엔딩이 필요했다. 최악은 이 일로 평생 엄마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채 원망을 듣는 미래다. (본문 207쪽)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어떤 악은 작은 싹의 형태로 발바닥을 스친다. 가끔 어떤 악은 덩굴이 되어 내 몸을 얽는다. 그 차이를 예상하는 방법을 나는 아직 모른다. 다만 그 가능성과 존재를 모르는 척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은 이제 안다”고 말한다. 이처럼 모든 감정은 한 방향이 아니다. 『뱅상 식탁』은 한 발의 총성으로 시작하나 총기로 인해 해를 입은 사람은 없다. 수창, 연주, 상아, 성미와 함께 온 애진, 정란, 유진, 민경은 정말 악인일까? 고립된 공간에서 위험해 처한 이들을 위협하는 건 상대를 향한 증오다. 상대를 악인으로 지목하지만, 실은 스스로가 악인이었을 수도. 인간 마음의 부조리를 파고드는 작가의 예리한 질문은 다감한 문장과 함께 오래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