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노블로 만나는 로보칼립스(Robocalypes)와 로보토피아(Robotopia)의 갈림길
‘로봇(Robots)’, 한 작가의 천재적인 상상력과 20세기 과학의 합작품
우리는 지금 ‘AI의 시대’라는 것을 체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AI의 시대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로봇’이라는 단어가 인류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작품이 《R. U. R.》이다. 그리고 ‘로봇’을 처음으로 선보인 장소는 ‘실험실’이 아니라 체코의 한 시골 극장이었으며, 최초의 ‘로봇’을 탄생시킨 사람 역시 ‘과학자’가 아니라 작가였다. 1920년 당시 체코의 젊은 작가 카렐 차페크가 그 주인공이다. 《R. U. R.》이라는 작품으로 카렐 차페크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입센, 체홉, 버나드 쇼와 같은 수준의 최고의 극작가로 대우받았으며 당시에는 ‘로봇’은 일종의 유행어가 되었다고 한다.
차페크는 ‘로봇’(robot)이라는 단어가 체코어로 노동을 뜻하는 단어 ‘로보타(robota)’에서 따온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차페크 이전에도 ‘기계인간’이나 ‘인조인간’은 신화나 역사적 기록 속에 등장했다.(《노자》, 《장자》와 함께 도가의 3대 경전으로 꼽히는 《열자》나 오비디우스의 《변신》과 같은 아주 오래된 기록은 물론 현대의 《오즈의 마법사》나 《매트릭스》와 같은 작품에도 ‘로봇’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연구자들의 지적처럼 “카렐 차페크의 ‘로봇’은 신이나 자연에 의해 탄생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이며, 돌연변이와 같은 특이한 존재가 아니라 과학기술에 의해 ‘대량생산’이 가능한 존재였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로봇의 탄생에서 ‘로보 사피엔스’까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첨단 테크놀로지 시대의 고민과 악몽을 예측하고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는《R. U. R.》은 ‘로봇’의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20세기 수많은 명작 애니메이션과 SF 문학에 나타나는 로봇의 발전 과정 대부분을 포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100년 전 체코의 한 연극무대 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로봇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일부는 과학적 현실로, 그리고 일부는 여전히 상상 속에서 수용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인 김초엽은 《R. U. R.》과 관련된 글에서 “타자와의 적대에서 공생으로, 드러난 자리에서 숨겨진 자리로, 인간성의 모방에서 비인간됨의 가치를 찾아내기로 이행하는 로봇들은 이제 인간성을 넘어서는 ‘로봇성’을 탐구해 나가겠다는 선언을 완수한 것 같다. 그러나 로봇 이야기를 읽으며 인간 독자들이 인간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은, 사실 이야기 속 로봇들이 펼쳐 나갈 무한한 가능성에 비하면 단지 부수적인 효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현대의 과학자들이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들이라고 말하는 ‘로보 사피엔스’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 역시 《R. U. R.》의 ‘열린 결말’에서 뻗어나간 이야기가 될 것이다.
로보칼립스(Robocalypes)와 로보토피아(Robotopia)의 갈림길에서
차페크는 《R. U. R.》을 통해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로보토피아(Robot + Utopia)’의 세계와 함께 인간의 발명품인 로봇의 반란으로 인류가 멸망하는 ‘로보칼립스(Robot + Apocalypse)’의 절망까지 아우르는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있다. 작품 속에서 로보토피아는 로봇이 모든 일을 하고, 사람들은 무한히 여가생활을 누리는 세상으로, 로보칼립스는 로봇들에 의해 인류가 종말을 맞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로보토피아는 우리가 맞게 될 미래의 긍정적 잠재력을 의미한다면 로보칼립스의 잠재적 위험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R. U. R.》은 작품이 발표되었던 1920년 당시에도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제4 차 산업혁명과 ‘A.I.의 시대’를 맞고 있는 이 시대에 《R. U. R.》이 다시 재조명 받는 이유는 우리가 마주한 첨단 테크놀로지 시대의 고민을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만든 로봇이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가 되어 인간을 말살하는 ‘킬러 로봇’이 되는 스토리는 오늘날 《터미네이터》시리즈 등 다수의 SF 작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재이다. 이처럼 《R. U. R.》은 로보토피아와 로보칼립스, 인간과 노동, 기계와 인조인간, 그리고 생명과 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당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로봇의 활용이 현실화된 지금, 즉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자칫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AI의 시대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 작품에서 작가인 카렐 차페크는 ‘로봇은 어떻게 인간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작품은 인간에게서 쓸모없는 것들을 모두 제거한 ‘노동 로봇’을 만드는데 성공한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 노동 로봇들이 인간의 ‘자아 개발’을 위해 인간의 모든 노동을 대신하던 과정에서 고통과 분노를 겪고, 그 고통과 분노를 감내하면서 조금씩 ‘인간적’으로 변해간다. 그 과정에서 인간과 유사한 로봇을 만들려는 과학자의 욕구와 로봇의 진화 과정이 맞물리면서 일종의 ‘안드로이드’가 만들어진다. 인간이 되고자 하는 로봇들의 욕망은 결국 인간처럼 살육하고, 이기고, 정복하려는 욕구로 이어진다. 인간에게 배운 방법으로 인간을 멸종시킨 로봇들 중에서 실제로 생식기능을 갖게 된 한 쌍의 안드로이드는 마침내 인류의 후예가 된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안드로이드 ‘로봇’인 헬레나가 프리무스가 서로 사랑하는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태도를 보여주는데 독자들은 이를 통해 ‘로봇’인 헬레나가 프리무스가 생식이 가능한 생명체로 바뀌었음을 알게 된다.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인 알퀴스트는 이들이 그들만의 공간으로 갈 수 있도록 한다.
카렐 차페크가 제시하는 ‘로봇은 어떻게 인간이 될 수 있는가?’를 통해 독자들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은 체코 학술원 체코문학연구소의 파벨 야노우세크의 지적처럼 “차페크는 기계장치로서 로봇을 세상에 내보내려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삶보다 기계를 더 믿고 삶의 기적보다 기술적인 놀라움에 더 매료되는 세상을 비판하려 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카렐 차페크 《R. U. R.》 발표 100주년에 만들어진 최고의 그래픽노블!!
카렐 차페크는 오늘날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프란츠 카프카나 밀란 쿤데라와 비교했을 때에도 실험정신이나 독창성은 물론 문학성과 대중성에 있어서도 조금도 뒤쳐지지 않는 작가일 뿐만 아니라, 동시대 체코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작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에 출간되는 카렐 차페크의 대표작 《R. U. R.》의 그래픽노블은 한국의 독자들이 작가 카렐 차페크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떠오르신 신예 일러스트레이터 카테르지나 추포바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체코의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작가 특유의 색채감을 통해 100년 전 작품인 카렐 차페크의 《R. U. R.》을 재탄생시켰다. 그녀는 원작의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만화적 서술방식이나 주요장면의 선택에 있어서도 텍스트의 가독성과 함께 원작의 구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신중을 기했다. 이를 통해 카렐 차페크의 원작을 보다 생동감 있는 그래픽노블로 되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