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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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환상동화의 진수 어린 시절 텔레비전 시리즈 ‘환상특급’에 열광했던 엄마 아빠라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반가워할 환상동화집이 나왔다. 게다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걸리버 여행기』 같은 고전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거나, ‘해리포터’ 시리즈로 판타지의 맛을 들였다면 타이완 동화작가 장자화의 『하라바라 괴물의 날』에 충분히 열광할 것이다. 장자화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판타지에 비견될 만큼 동양적이고, 신비스러운 판타지를 잘 그려내면서 동시에 꿈, 희망, 상상력, 웃음 등을 잃지 말아야 하는 인간 본연의 화두도 일깨워준다. 「하라바라 괴물의 날」이라는 단편 외에도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끔 하는 단편 4편이 실려 있다. 과장과 황당함이 유쾌하게 춤을 추는 ‘하라바라 여행’ 「하라바라 괴물의 날」의 제리는 공장에서 하마 인형의 웃음을 검사하는 일을 한다. 오랫동안 하마의 웃음을 철저하게 검사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어떻게 웃어야 할지를 잊어버린 병’에 걸렸다. 의사의 처방은 여행을 떠나라는 것. 그래서 제리는 ‘신기한 나무 빌딩’에 있는 호텔에 가서 푹 쉬고 오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청개구리들 때문에 작은 시골 마을 간이역에 혼자 남겨지고 만다. 별수 없이 제리는 그 마을 여관에 묵어야 했다. 여관 주인 말로는 그날 밤 마을에서 ‘하라바라 괴물의 날’ 축제를 한단다. 반드시 12시 전에 들어와야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자정 정각 제리는 또 화장실에 가는 일로 여관 주인의 말을 따르지 못한다. 결국 제리는 하라바라 괴물의 날 주인공이 되어 당나귀 아줌마와 당나귀 아이에게 실컷 ‘하라바라’를 당하며 온갖 고생을 다한다. 「하라바라 괴물의 날」은 ‘하라바라’하고 얼토당토 않은 환상동화이다. 게다가 다 읽고 나면 중요한 삶의 메시지까지 얻게 된다. 초현실적인 세계에서 개성 강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컨베이어벨트처럼 돌아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웃음을 잃어가는 현대인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꼬집는다. 제리처럼 현대인들은 타인의 웃음에 인색하거나 획일화된 웃음을 강요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당나귀 아줌마와 당나귀 아이가 벌이는 처방전은 황당하기 그지 없다. 코전도 반응 검사를 한답시고 두 손가락으로 코를 푹 쑤시질 않나, 얼굴을 뜨거운 물에 한번 차가운 물에 한번씩 담그는 ‘물 치료법’을 쓰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런 엉뚱한 방법이 효과가 있다. 제리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그만 푸하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어쨌든 병을 고친 것이다. 제 시간에 출근해서 정해진 규율에 맞게 인형 웃음을 검사하고, 매일매일 같은 일을 하는 제리에겐 일상을 벗어나 말도 안 되게 엉뚱한 사건에 휘말렸던 것이 오히려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 준 셈이다. 이렇듯 작가는 삶에서 우연히 맞닥뜨리는 사건으로 삶의 전환점을 가지거나 깨달음을 얻는 것을 여행에서 찾는다. 과장과 황당함이 유쾌하게 춤을 추는 ‘하라바라 여행’ 말고도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칠 수 있는 ‘여행’ 이야기가 더 있다. 건물을 둘러보는 여행, 상상 속 세계를 체험하는 여행,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한 여행 등등, 작가가 풀어놓는 모든 여행 이야기가 삶의 여정과 맥이 닿아 있다. 그럼 과연 ‘하라바라’는 무슨 뜻일까? 읽으면서 독자들 나름대로 여러 단어들을 대입해 보면 읽는 재미가 더할 것이다. 멍청한, 엉뚱한, 황당무계한, 얼토당토 않은 등등의 단어들을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끼워 넣어보면 어떨까. 환상 열차를 타고 떠나는 여러 종류의 여행 「꿈을 주는 이삭」에서 꼬마 요정은 특별한 이삭을 찾아나선다. 요정 마을에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꿈의 술로 축복을 빌어주는데 축복을 받지 못하면 다 자란 뒤에 꿈을 갖지 못하게 된단다. 며칠 전 지하 창고에 보관해 두었던 꿈의 술을 생쥐들이 엎어 버려서 꿈을 주는 이삭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요정은 시인의 도움을 얻어 잠든 시와 같은 냄새를 풍기는 이삭을 찾는 데 성공한다. 그에 반면 「눈을 감은 다음에」의 개구리 인간은 자신의 바람을 이루지 못한다. 개구리 인간의 나라에서 국가 전체의 생명을 유지하는 나무가 죽어가고 있다. 인간의 몽상을 빨아들여 살아가는 나무는 인간의 두뇌가 오염되어 빨아들일 몽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나무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곱 빛깔 눈물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개구리 인간은 그 눈물을 구하지 못한다. 인간의 두뇌가 오염되었다는 말이 심상치 않게 들린다. 몽상을 할 여유가 없는 요즘 시대에 어쩌면 우리의 몽상으로 살아가는 머릿속 한 부분이 소멸해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눈동자 빌딩」은 인간이 자신의 눈으로 무엇을 보고 살아가야 옳은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만든다. 이스터는 어려서부터 사람들 관찰하는 것이 취미이다. 커서 부자 부모에게 물려받은 돈으로 백화점을 지어 실컷 사람들 관찰을 한다. 결국 건물 내부 곳곳에 눈동자을 달아놓고 ‘관음’을 즐기다가 사람들에게 들켜 혼쭐이 난다. 폐허처럼 버려져 있던 ‘눈동자 빌딩’을 일반 관광객에게 공개하면서 이스터 노인은 평생 자신이 깨달은 바를 이렇게 표현한다. “보십시오. 나는 이렇게 많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지만 일생 동안 제대로 본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눈이라는 매개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 눈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깨닫는가가 중요하다. 짧은 단편이지만 묵직하게 다가온다. 이스터 노인이 안타까운 삶을 살았다면 「신기한 나무 빌딩」의 거어 씨는 신성한 나무를 찾아 어떻게 정성을 기울이고 마음을 다해야 하는지, 어떠한 삶의 가치에 자신의 열정을 쏟아야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평생 책과 나무를 사랑했던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나무로 된 도서관을 지으려고 백방으로 알아보다 신기한 나무를 알게 되고 그 나무를 베어와 신비로운 건물을 짓게 된다. 130층이나 되는 대형 건축물을 훌륭하게 축조해낼 수 있었던 것은 거어 씨의 올곧은 정신이 신기한 나무에 깃들어 나무들이 스스로 자라났기 때문이다. ‘기적’을 가능케 했던 거어 씨는 「눈을 감은 다음에」의 개구리 인간이 애타게 찾던 ‘일곱 빛깔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라바라 괴물의 날』을 다 읽고 나면 5편의 단편이 각각의 독립성을 가지면서 서로 씨줄과 날줄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마치 장자화가 그리는 여러 칸의 환상 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첫 번째 칸이 하라바라 괴물의 축제를 구경하는 거라면 마지막 칸은 제리가 가려고 했던 ‘신기한 나무 빌딩’을 쭉 둘러볼 수 있는 여행이 되는 것이다. 각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품고 있는 꿈과 희망이 작품 전체에 하나의 줄기로 이어져 있고, 바쁜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릴 만한 의미 있는 주제들도 빛을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