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대의 마음에도 꽃이 피는가.
읽는 이의 마음속에 한 송이 꽃을 피워 내는
법정 스님의 맑고 깊은 영혼의 세계
<무소유>가 법정 스님의 초기 사상을 대표하는 저서라면 <산에는 꽃이 피네>는 그 이후, 특히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들어가 홀로 생활한 다음부터의 사상을 투명하게 담고 있는 또 다른 대표 명상집이다. 이 책에서 스님은 자유롭고 충만한 삶을 위해,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피어나기 위해, 묵은 나를 벗고 새로워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1970년대 후반 모든 것을 떨치고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을 지어 홀로 수행하며 살았던 법정 스님은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지자,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전기도 수도도 없는 강원도 산중의 화전민이 일구던 오두막을 빌려 그곳에서 침묵과 청빈의 삶을 실천한다. 이 책에는 그 이후의 깊고 순수한 스님의 세계가 고요히 담겨 있다.
내가 사는 곳에는 눈이 많이 쌓이면 짐승들이 먹이를 찾아서 내려온다. 그래서 내가 콩이나 빵 부스러기 같은 걸 놓아 준다. 박새가 더러 오는데, 박새한테는 좁쌀이 필요하니까 장에서 사다가 주고 있다.
고구마도 짐승들과 같이 먹는다. 나도 먹고 그놈들도 먹는다. 밤에 잘 때는 이 아이들이 물 찾아 개울로 내려온다. 눈 쌓인 데 보면 개울가에 발자국이 있다. 토끼 발자국도 있고, 노루 발자국도 있고, 멧돼지 발자국도 있다. 물을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 아이들을 위해 해 질 녘에 도끼로 얼음을 깨고 물구멍을 만들어 둔다. 물구멍을 하나만 두면 그냥 얼어 버리기 때문에 숨구멍을 서너 군데 만들어 놓으면 공기가 통해 잘 얼지 않는다.
그것도 굳이 말하자면 내게는 나눠 갖는 큰 기쁨이다. 나눔이란 누군가에게 끝없는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 (28쪽)
나 자신이 몹시 초라하고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 앞에 섰을 때는 결코 아니다. 나보다 훨씬 적게 가졌어도 그 단순과 간소함 속에서 여전히 삶의 기쁨과 순수성을 잃지 않는 사람 앞에 섰을 때이다. 그때 나는 나 자신이 몹시 초라하고 가난하게 되돌아보인다. (44쪽)
보다 본질적인 것에 이르는 삶의 방식과 삶의 주체인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는 지혜를 담고 있는 이 명상집은 소유의 비좁은 골방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길을 보여 준다.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은 어떻게 채울 것인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알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같은 물음을 던지면서 이 책과 함께 스님의 오두막을 거닐다 보면 보다 충만한 삶에 이르는 지혜로운 선택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다.
2
종교를 초월해 모든 이들에게 길을 제시해 주는
이 시대의 영적 스승 법정 스님의 대표 명상집
<산에는 꽃이 피네>는 여러 곳에서 이루어진 법정 스님의 법문과 강연, 말씀을 류시화 시인이 가려 뽑은 것이다. 명동성당 1백 주년 기념 강연에서 하신 말씀도 있고, 수녀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도 있으며, 작은 모임에서의 법문과 서너 사람이 모인 사석에서의 말씀도 엮은이가 꼼꼼히 챙겨 모았다. 각 장의 서두에는 글을 엮은 시인의 경험과 감상이 때로는 일화로, 때로는 인상으로, 때로는 경구들로 담담하고 아름답게 펼쳐진다. 엮은이의 서정적인 필치에 덧붙여진 소박하고 정갈한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은 어렴풋이나마 스님의 맑고 투명한 세계를 접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본문의 말씀과 말씀 사이에 자리한 문양과 그 여백을 메우는 침묵은 우리를 더없는 충만의 세계로 이끌어 준다. 스님의 말씀을 책으로 엮은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도 그렇고, 이 책을 엮으면서도 여러 차례 스님을 뵙는 자리에서 나는 사실 그분으로부터 어떤 삶의 지혜로운 경구나 깨달음의 설교를 장황하게 들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오히려 그분이 들고 다니는 오래된 가방, 겨울이면 쓰시는 낡은 털모자, 정구화처럼 생긴 검은색의 단순한 신발로부터 더 많은 걸 느낀다. (52쪽)
무소유한 삶, 자신을 늘 되짚어 보고 자연의 질서에 따르는 삶, 고구마 하나까지도 오두막 근처에 내려오는 산짐승들과 나눠 먹는 삶, 그리고 저녁이면 문득 등불을 마주하고 앉는 여유로운 삶,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스님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오늘 내가 머리 깎고 출가해서 스님의 제자가 되지도 않았고, 그분으로부터 어떤 이름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나 스스로 그분의 속가제자인 양 그 삶을 바라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71쪽)
내가 그동안 법정 스님에게서 배운 중요한 한 가지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능하면 무엇이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소유하지 말고, 남 앞에 나타나지 말고, 일을 벌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 대신 지금 이 순간 자기 존재를 소중히 느끼라는 것이다. (121쪽)
그동안 스님을 만나 오면서 내가 받은 인상은 그분이 자신의 감정과 느낌에 매우 충실하다는 것이다. 많은 것으로부터 훌쩍 벗어나 있고, 그토록 이름이 나 있으면서도 명성이나 명예 따위를 썩은 감자처럼 여기시지만, 한순간 스스로에게 다가오는 작은 느낌들을 모른 체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139쪽)
3
순간순간 맑은 정신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라,
가장 나다운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
스님은 가치 있는 삶이란 의미를 채우는 삶이라며, 자신의 삶에서 중심을 잃지 말고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자기 자신답게 살라고 말한다.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다른 의지에 삶이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소음과 먼지에 둘러싸여 본연의 모습을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스님의 말씀은 한 줄기 구원의 빛으로 다가온다. 세상과 타협하는 일보다 더 경계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과 타협하는 일이라는 스님의 일침은 지금 순간의 삶에 충실하지 못한 오늘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스님은 말한다. 순간순간 새롭게 피어나야 살아 있는 사람이며, 꽃처럼 거듭거듭 피어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라고. 누군가를 기쁘게 해 주면 나 자신이 기뻐지고, 누군가를 언짢게 하거나 괴롭히면 나 자신이 괴로워지는 법이다. 삶의 질은 바로 따뜻한 가슴에 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내일 일을 누가 아는가. 이다음 순간을 누가 아는가. 순간순간을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매 순간을 자기 영혼을 가꾸는 일에, 자기 영혼을 맑히는 일에 쓸 수 있어야 한다. (150쪽)
자료 1. 행복의 척도
텅 비워야 그 안에서 영혼의 메아리가 울린다. 텅 비어야 거기 새로운 것이 들어찬다. 우리는 비울 줄을 모르고 가진 것에 집착한다. 텅 비어야 새것이 들어찬다.
모든 것을 포기할 때, 한 생각을 버리고 모든 것을 포기할 때 진정으로 거기서 영혼의 메아리가 울린다. 다 텅 비었을 때 그 단순한 충만감, 그것이 바로 하늘나라이다. 텅 비어 있을 때,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텅 비었을 때 그 단순한 충만감, 그것이 바로 극락이다. (42쪽)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에 있지 않다.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에 있다. 홀가분한 마음, 여기에 행복의 척도가 있다. 남보다 적게 갖고 있으면서도 그 단순과 간소함 속에서 삶의 기쁨과 순수성을 잃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을 거듭 새겨 두기 바란다. (79쪽)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