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홋카이도부터 러시아 사할린까지,
65년 전 그곳, 조선인 강제동원의 현장으로!
일제의 침략전쟁에 동원된 조선인 노무자 연인원 600~700만 명. 1939~1945년, 그 6년 사이 식민지 조선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나? 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올해, 한일 과거사 문제의 최대 쟁점 중의 하나인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책이 출간됐다. 일본 본토는 물론 사할린, 남양군도까지 일본 전범기업이 조선인 노무자들을 강제 동원했던 작업장을 중심으로 취재한 르포이다. 일제가 조선인 강제동원을 시행하게 된 전후 배경부터 강제동원이 본격화된 1939년 이후의 상황을 피해자의 증언과 관련 연구 기록을 토대로 새롭게 복원했다.
이 책의 필자는 현직 기자들이다. 2009년 말 미쓰비시에 강제 동원됐던 근로 정신대 할머니들에게 후생연금 탈퇴 수당금 명목으로 99엔 지불을 판결한 일명 ‘99엔 사건’에 충격을 받아 이 문제에 뛰어들게 됐다고 한다. 필자들은 현장 취재를 중심으로 하되, 이와 병행하여 자료조사에도 많은 공력을 들였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이하 강제동원조사위)와 같은 정부 기관과 국내외 연구 기관들의 방대한 자료를 치밀하게 검토하는 한편,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일본 내 사회운동가들이 제공한 각종 문서와 사진자료 등을 취합하고 기존 연구자료와 꼼꼼히 대조해나갔다. 역사적 진실을 다루는 문제인 만큼 작은 통계 수치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2010년 초부터 9월까지 「잊혀진 만행, 일본 전범기업을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연재됐다. 이 책은 그 기획기사를 골격으로 하여, 연재 당시 지면의 한계로 빠진 부분과 취재 때 미진했던 부분들을 대폭 보완하여 엮어낸 것이다.
이 책은 총론과 본론 4부로 이뤄졌다. 총론에서는 이 책에서 다룰 주제들을 전반적으로 개괄하고 있다. 일제 강제동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독자들을 위해, 조선인 강제동원의 방식과 유형, 과정을 실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사례를 짚어가며 알기 쉽게 설명한다. 또한 강제동원의 한 축으로 작동한 일본 기업들의 숨겨진 역할에 대한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1부에서 2부까지는 일본 본토의 강제동원지를 취재한 글을 각 기업별로 묶었다. 우리 사회에도 잘 알려진 미쓰비시나 미쓰이 등 일본의 굵직굵직한 대기업은 물론 국내에 비교적 덜 알려진 일본 기업들의 조선인 노무자 작업장을 취재했다. 필자들이 찾아간 대부분의 작업장은 폐광됐거나 관광지로 탈바꿈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역사의 흔적을 찾으려는 필자들의 힘겨운 취재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3부는 일본 본토를 제외한 강제동원지인 남양군도, 사할린 등에 대한 현장 취재와 국내 동원, 유골 반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특히 국내 동원의 경우 일제가 조선인들을 석탄을 캐는 일보다 금을 캐는 일에 집중적으로 동원시킨 사례가 눈에 띈다. 마지막으로 4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일본 정부와 기업 간의 피해 배상, 미불임금 보상에 대한 소송 투쟁의 역사를 보여준다. 반복되는 패소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멈추지 않는 피해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그들을 돕는 한일 양국 시민운동가들의 뜨거운 열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강제동원 기간 6년은 ‘전 민족적 수난’
일본 전범기업은 조선인 강제동원에 어떤 역할을 했나?
이 책은 기존 국내에 출간된 강제동원 자료집과 피해자들의 증언록과는 뚜렷이 차별되는 내용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먼저 이 책은 일제시대 강제동원 분야 중 징병과 군 위안부 부분은 거의 다루지 않고 징용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징병과 군 위안부 피해 사실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인지도가 상당히 높은 반면, 피해자 규모 면에서는 훨씬 압도적인 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일반적 관심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실제 필자들이 학계의 연구 결과를 검토한 바에 따르면, 1939년부터 해방 전까지 6년 동안 매년 조선 인구의 30%나 되는 600~700만 명이 일제의 강제동원 현장에 투입됐다. 그리고 이렇게 동원된 노무자 중 적게는 10~20만 명, 많게는 50만 명이 작업장에서 죽음을 맞았다. 필자들이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전 민족적 수난’이었다고 기술하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다음으로 이 책은 기존 국내 연구들이 간과해온 강제동원의 주요 축인 일본 기업들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39년경 일본 대기업들은 일제의 침략전쟁에 조달할 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군수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당시 대기업들은 생산 인력에 필요한 인원을 모집하기 위해 식민지에 눈을 돌렸다. 대기업들이 고용한 브로커들이 조선 현지로 찾아가 모집 활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노무자 인솔부터 작업장 관리까지 기업의 손이 미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필자들은 조선인 강제동원지로 알려진 나가사키 조선소, 미쓰이 탄광 등의 당시 강제동원 작업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일본 기업들이 강제동원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실증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증언과 자료를 찾는 데 주력했다.
셋째, 이 책에는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한 필자들의 다각적인 노력과 고민의 과정이 담겨 있다. 전문가 집단의 자문, 외국 사례의 검토, 중국인 동원 피해자들이 일본기업 배상 청구 소송으로부터 화해를 이끌어낸 사례를 점검한다. 이를 통해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문제는 결코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아님을 역설한다. 특히 필자들은 독일의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EVZ)의 사례를 주목하면서, 전범기업들이 전후 일본 정부에 맡긴 미불임금에 대한 공탁금 등을 토대로 일본 정부와 함께 기금을 창설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중국인 강제연행 피해자들이 니시마츠건설과 화해를 이끌어내어 보상금을 받아낸 데에는 중국 정부의 노력과 중국 국민의 여론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일본 전범기업의 국내 투자·영업 활동에 제약을 줄 수 있는 압박 수단들을 강구할 수 있다면, 전범기업들이 지금처럼 강제동원 문제를 미온적으로 대응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적을 포기한 사람들…… 피해자 보상 문제 그렇게 어려운가?
소수자의 문제로 방치된 과거사!
2010년 11월 2일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대정부질문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9대 정책을 제안했다. 이 의원은 “해방된 지 65년이 지났지만 일제 강점기 아래 강제 동원된 근로자 문제에 대해 양국 간 과거사 청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제안의 취지를 밝혔다. 이 의원이 제시한 9대 정책은 일본 전범기업들의 기금 마련이나 포스코와 같은 한일협정 대일청구권자금의 수혜 기업들의 기금 조성 등, 이 책의 필자들이 제시한 해법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문제와 관련한 해법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많이 논의되어왔다. 그중에 몇몇 제안들은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 문제의 해결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왜일까? 필자들은 그 주된 이유가 우리 정부의 의지 부족에 있다고 본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대일청구권 문제는 끝났다는 입장이고, 과거 정부와 기업들이 행한 범죄 사실을 먼저 나서서 밝힐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필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에 도의적 책임을 묻기 전에 우리 정부가 강제동원 문제를 보다 치밀하게 조사하고 피해자들의 보상 해법을 강구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현황 조사는 물론이고 미불임금 규모, 일본 내 미귀환 유골 파악 등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수적인 사전조사조차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배상 문제에 있어서는 일본 정부와 기업들을 제대로 압박하지도 못했다. 2004년 특별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보상 문제도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럼 그동안 정부는 이 문제에 왜 이렇게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