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광장’은 왜 세상을 바꾸지 못했는가? ‘아랍의 봄’부터 박근혜 퇴진 촛불까지, 대규모 시위의 시대를 돌아보며 ‘빛의 혁명’을 건너고 있는 한국 사회에 던지는 뜨거운 질문들! 지난 겨울과 봄의 광장은 뜨거웠다. 2024년 12월 3일 느닷없는 내란 사태에 맞서 시민들은 한 손에 응원봉, 한 손에 피켓을 들고 모였다. ‘내가 지닌 가장 빛나는 것’을 들고 나온 이들이 만들어낸 이 광경을, 사람들은 ‘빛의 혁명’이라고 불렀다.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빈민 등 한국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차별과 혐오를 일상적으로 겪는 소수자들도 광장에서만큼은 서로 연결돼 있음을 확인하고, 광장 이후의 새로운 세계를 함께 꿈꿨다. 4월 4일 윤석열 탄핵으로 ‘빛의 혁명’은 마침내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 지금, 우리는 과연 ‘빛의 혁명’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권교체를 넘어 ‘사회대개혁’을 이루자며 광장에서 외친 수많은 요구 중 얼마나 많은 것이 실현될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광장의 역설』은 거대한 사회운동이 실제로 사회를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돌아봐야 하는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다. 《워싱턴포스트》, 《타이낸셜타임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에서 일하며 2010년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를 취재한 저자 빈센트 베빈스는 12개 나라에서 200명이 넘는 활동가, 시위 참여자, 정치인 등을 인터뷰하고 관련 문헌을 조사해 ‘겉보기에 별개인 세계적 사건들을 현재의 놀라운 역사로 엮어낸다.’(그렉 그랜딘, 『The End of the Myth: From the Frontier to the Border Wall in the Mind of America』 저자) 그는 방대한 취재와 조사를 통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전 세계에서 벌어진 수많은 대규모 시위가 어떻게 해서 시위대의 요구와 정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했는가”(17쪽)라는 까다로운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한다. 《뉴리퍼블릭The New Republic》과 버소Verso 출판사는 이 책을 2023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다. 역자 박윤주 계명대학교 교수는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을 내부 역량, 특히 전략과 담론을 중심으로 분석해온 연구자로 브라질과 칠레 등 이 책이 비중 있게 다루는 나라들의 사회운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세계 사회운동의 전개와 결과를 정확하고 섬세하게 번역했다. 특히 130여 개의 역주로 우리에게 생소할 수 있는 각국의 정치적 상황과 구호, 문화적 배경 등을 친절하게 풀어냈다. 뜨거웠던 광장의 열기가 환멸로 변하지 않도록, 사회운동의 요구가 실패로 끝나지 않고 현실이 되도록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광장의 역설』은 생생한 시위 참여자들의 증언과 치밀한 분석을 통해 ‘단순한 봉기를 진정한 혁명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대담한 비전’(머브 엠레, 《뉴요커》 평론가)을 제시한다. 브라질 역사상 가장 큰 시위가 ‘열대의 트럼프’를 낳다 2010년대는 거대한 사회운동의 물결이 세계를 휩쓴 시기였다. ‘아랍의 봄’, 칠레의 사회폭발, 홍콩의 ‘황색운동’ 등 “세계는 10년 동안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대규모 시위를 경험했다. 그 빈도는 1960년대에 전 세계에서 일어난 일련의 시위가 세운 기록을 넘어섰다.”(18쪽) 그러나 사회운동이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진 사례는 흔치 않다. 오히려 운동이 의도했던 것과 정반대 결과를 낳은 일이 더 많다. “대규모 시위대의 요구 사항이라는 관점에서 시위의 결과를 본다면 …… 열 개 국가 중 일곱 개 국가는 실패보다 더 나쁜 결과를 경험했다.”(384쪽) ‘광장의 역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브라질이다. 2003년 「노동자당」이 집권한 브라질은 글로벌 사우스 역사상 가장 유의미한 사회민주주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다. “제1세계의 부유한 국가가 아닌 지역에서 좌파 성향의 정부가 자본주의 체제의 범위 안에서 경제 성장과 빈곤을 의미 있게 완화하는 사회정책을 결합했고, 이는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16쪽) 빈곤층 가정을 위한 복지정책 ‘보우사 파밀리아’ 덕에 아이들은 예방접종과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수천만 명이 빈곤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2013년 6월, 상파울루 시의 버스요금 인상 철회를 요구하며 벌인 대규모 시위가 브라질의 운명을 바꿨다. 시위를 주도한 「무상대중교통운동」은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시청을 압박하려면, 이 도시에 약간의 혼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177쪽) 혼란을 불러오기 위해 그들은 다양한 세력을 시위에 끌어들였다. 100개 이상 도시에서 20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브라질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고, 마침내 정부를 굴복시켜 원래 목표였던 버스요금 인상을 저지했다. 그러나 너무나 커진 시위는 「무상대중교통운동」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났다. 그들은 버스요금 인상을 저지한 이후를 전혀 계획하지 않았고, 이후 상황은 「무상대중교통운동」을 비롯한 시위대의 핵심 참가자들이 원했던 것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대규모 시위 후 지지율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자 정부에 반대하는 이들을 하나둘 체포하고, 신자유주의자를 재무부장관에 임명했다. 좌파가 사라진 거리를 「자유브라질운동」, 「거리로나오자」 등의 우파 단체가 채웠다. 그들은 2013년 거리를 달궜던 저항의 언어와 태도, 방식을 차용해 지우마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다. 지우마가 탄핵당하자 우파 정당 소속 대통령이 연이어 집권했고, 특히 ‘열대의 트럼프’라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사회운동의 요구와 「노동자당」의 개혁을 철저하게 무산시켰다. 독재와 집단학살에 동조하는, 세계에서 가장 극렬한 우파 지도자가 선출돼 브라질을 통치하게 됐다. 빈곤은 심해졌고 공공 서비스의 질은 추락했으며, 관료들은 국가가 시민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한마디로, 브라질 국민은 2013년 6월에 요구한 것과 정반대 의 결과를 얻었다.(16쪽) 실패로 끝난 홍콩 ‘황색운동’과 ‘아랍의 봄’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수많은 나라에서 비슷한 일이 생겼다. 중국이 추진하는 범죄인인도법안에 반대하며 벌인 2019년 ‘황색운동’ 이후 홍콩의 상황은 더 나빠졌다. 중국이 국가보안법을 도입하면서 민주인사들이 대거 체포되고 젊은이들이 망명했으며, 언론은 탄압받았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대통령 퇴진을 이끌어낸 ‘아랍의 봄’ 역시 실패했다. “무바라크 정권을 대신해 더 잔인한 독재정권이 들어선 이집트에서는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실패한 국가가 된 리비아의 상황은 확실히 더 나빠졌다. 「국제연합」에 따르면 2010년 리비아는 아프리카에서 인간개발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였다. 2017년에는 아프리카의 노예무역이 충격적으로 부활하면서 인간이 수백 달러에 매매됐다.”(380쪽) 당국의 탄압에 맞서며 분신자살해 ‘아랍의 봄’에 기폭제 역할을 했던 모하메드 부아지지를, 튀니지 시민들은 이렇게 회상한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이 혁명은 튀니지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튀니지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죠. 오히려 퇴보했습니다.” “모하메드 부아지지, 명복을 빌어요. 하지만 다들 그를 싫어해요.”(389쪽) 수평주의, 조직을 부정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 책은 수평적 구조를 지니고 자발적이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2010년대 시위의 조직 방식, 특히 ‘수평주의’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1960년대를 휩쓴 신좌파 운동의 유산인 이 이념은 완전하게 수평적인 조직을 지향한다. “수평적 운동이란 모두 지도자가 되거나 지도자가 존재하지 않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라